잔잔하지만 진한 가족愛, 무대 꽉 채우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6.09.22 00:37

부부·父子 등 가족관계 다룬 대학로 소극장 연극 쏟아져

'나홀로 가구'(지난해 통계청 조사 27.2%)가 2인 가구(26.1%)보다 많아진 시대, 연극 무대에선 오히려 가족의 진솔한 이야기를 다룬 신작들이 쏟아지고 있다. 잔잔한 정(情)을 다루는가 하면 서로 뜯어먹다시피 고통을 주는 모습을 냉정하게 그리기도 한다. 불안한 가족 관계의 현실을 조명하면서 역설적으로 '혼자 사는 공포'를 드러내는 셈이다. 모두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젊은 부부―'안녕, 여름'

결혼 6년차 부부인 태민(송용진·김도현·정문성)과 여름(최유하·최주리)에게는 아이가 없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남편에게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자 여름은 이혼을 결심한다. 애잔하면서도 어딘가 신비스러운 전개 끝에 반전(反轉)이 기다리고 있는데, 남성 관객들이 울면서 극장을 나설 정도다. 일본 작가 나카타니 마유미의 원작을 오루피나가 연출했다. 10월 30일까지 유니플렉스 2관, 1577-3363

젊은 부부의 애틋한 이야기를 그린 연극 ‘안녕, 여름’의 송용진(왼쪽)과 최유하.
젊은 부부의 애틋한 이야기를 그린 연극 ‘안녕, 여름’의 송용진(왼쪽)과 최유하. /알앤디웍스

노부부―'웃어요, 덕구씨'

수십 년 동안 고물상 주인으로 살아 온 70대 천덕구(이영석)는 젊은 날 아내(이용이) 속을 무던히도 썩인 한량이었지만, 지금은 병든 아내를 돌보는 데 온 정성을 쏟고 있다. 서울 사는 자식들이 생일 잔치를 열어주기로 한 날 아침, 돌연 아내가 사라진다. 김태수의 극작과 김학재의 연출은 일상의 삶을 숨소리 하나까지 오롯이 담아내는데, 주인공이 혼자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마지막 장면이 관객의 가슴을 친다. 그것이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닥칠 미래라는 생각에 눈물을 삼키는 것이다. 10월 2일까지 여우별씨어터, (02)765-9523

부자(父子)―'무라'

나이 든 아버지 동수(김홍파)는 집을 놔두고 늘 밖에서 술을 마시다 길바닥에 쓰러진다. 어느 날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 수동(서동갑)이 동반 여행을 제안하고, 그들은 동수가 살아온 곳들을 하나하나 밟으며 실타래처럼 꼬인 두 사람의 관계를 복기한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대사 속에서 화석처럼 굳어진 과거의 일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하수민 작·연출, 25일까지 나온씨어터, 070-8719-0737

복합적 가족관계―'환영'

김이설의 소설을 바탕으로 황이선이 연출한 이 작품에서 가족은 위안이 아니라 괴물 같은 존재다. 여동생은 빚을 떠넘긴 채 사라지고, 어머니는 주인공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남편은 무능력하다. 별다른 장치 없는 무대에서 지옥도 같은 밑바닥 삶이 사실주의적인 연기를 통해 펼쳐진다. 극단적인 불행 끝에도 가족은 사라지지 않고, 역설적인 희망이 객석을 뭉클하게 한다. 10월 2일까지 선돌극장, 010-2069-7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