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난 지 60년… 이중섭은 외롭지 않았네

  • 유석재 기자
  • 서귀포=김미리 기자

입력 : 2016.09.07 03:00

[탄생 100주년·타계 60년 기일 맞아 서귀포서 추모 세미나]

이 화백 예술 세계에 초점
서울에선 연극 '길 떠나는 가족' 시연회 앞서 제사 지내기도

1956년 9월 6일. 이중섭은 서울 적십자병원의 차가운 병실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일본으로 간 부인 이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와 두 아들 태현, 태성을 그리워하며 술로 연명하다 영양실조에 간경화까지 얻었다.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시신은 사흘간 무연고자로 방치됐다.

그로부터 만 60년이 된 날, 이중섭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기일(忌日)인 6일 제주도 서귀포시와 조선일보 공동 주최로 서귀포 KAL호텔에서 열린 '2016 이중섭과 서귀포' 세미나에는 각계각층 인사 150여 명이 찾아 이중섭을 기렸다.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선 이중섭 화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냈다. 화백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길 떠나는 가족'(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 시연회에 앞서 연출가와 배우들이 무대에서 제를 올렸다.

타계 60년 서귀포에서 열린 추모 세미나

서귀포는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원산에서 피란 와 1년간 머문 곳이다. 이중섭이 세 들어 산 초가를 복원한 것을 계기로 서귀포시와 조선일보는 1999년부터 '이중섭과 세미나'를 열어왔다.


올해는 이중섭 화백이 탄생한 지 100주년 되는 해라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회고전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는 17만명이 찾았다.


 

6일 ‘2016 이중섭과 서귀포’ 세미나 참석자들이 이중섭이 살았던 서귀포 집을 찾았다. 왼쪽부터 오원배·김호득·송미숙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이중섭에게 셋집을 내준 김순복 할머니, 김미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이사, 오광수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추진위원장, 김영호 중앙대 교수.
6일 ‘2016 이중섭과 서귀포’ 세미나 참석자들이 이중섭이 살았던 서귀포 집을 찾았다. 왼쪽부터 오원배·김호득·송미숙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이중섭에게 셋집을 내준 김순복 할머니, 김미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이사, 오광수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추진위원장, 김영호 중앙대 교수. /허재성 객원기자
세미나는 '해방과 전쟁, 이산(離散)의 아픔을 겪은 비운의 예술가'라는 수식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중섭의 예술 세계 자체를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사로 나선 미술사가 김영호 중앙대 교수는 "이중섭은 '양식'과 '주제'의 합일(合一)을 이뤄낸 작가"라고 평했다. 그는 "이중섭은 해부학적 특성을 탁월하게 분석했기에 황소를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거친 붓 터치 몇 번으로 역동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중섭의 회화, 재료와 기법의 독창성'을 주제로 발표한 김미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이사는 "이중섭은 독창적이고 분명한 자기 조형언어를 가지고 근현대 한국 미술가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을 성취한 작가"라고 했다.

이날 행사엔 이중환 서귀포시장, 강명언 서귀포시 문화원장, 데라사와 겐이치 제주 일본 총영사관 총영사, 오광수·홍명표 이중섭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 추진위원장, 오광협·김유정·이왈종 이중섭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 송미숙·오원배·김호득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이중섭에게 셋집을 내준 김순복 할머니, 이중섭 화백의 조카 손녀 이지향·지연씨, 김문순 조선일보미디어연구소 이사장 등 각계 인사 150여 명이 참석했다.

서울 대학로에서 올린 이중섭 제사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이중섭 화백의 제사에선 연출가 이윤택이 제문(祭文)을 읽었다. "당신이 살아낸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뛰어넘어 역사가 됩니다. 예술이 예술답게 존재하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세속적인 세상과 맞서 싸운 위대한 개인의 역사 말입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평소 즐기시던 술 드시고 여기 극장 어디에라도 좋으니 당신의 영혼이 편안하게 깃드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어머니 역의 배우 김소희가 영정 앞에 술을 뿌렸다.

6일 이중섭 화백의 60주기를 맞아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출연 배우들이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이 화백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6일 이중섭 화백의 60주기를 맞아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출연 배우들이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이 화백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1991년 초연한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의 그림을 배우들이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등 새로운 기법으로 화제를 모았고, 규모가 큰 작품이라 지금까지 많이 공연되지 못했던 전설적인 작품이다. 지난 3월 콜롬비아 공연에서 전회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중섭 화백의 장례일인 10일 개막해 25일까지 열리며,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 티켓 소지자는 20% 할인 혜택을 받는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는 10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 문의 (02)522-3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