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가 연주합니다, 여러분이 신청한 곡으로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6.09.01 03:00

- 팬 사연으로 독주회 여는 백건우
바흐 등 준비된 곡 연주 후 관객들 소망 담아 신청한 곡 즉석에서 연주하기로
암투병 아들 사연 등 90여 건 쇄도

'올해 음대에 진학한 스무 살 아들이 있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중 1 때 혈액암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았지요. 병실로 바흐의 악보를 가져다줬더니 머리카락 다 빠진 얼굴을 악보에 파묻고 엉엉 울며 하던 말이 잊히질 않습니다. "엄마, 항암 치료를 받으면 음악 감각이 다 사라지는 줄 알았어. 근데 살아 있어!" 평생 음악을 해온 선생님께서 해주실 한마디 말씀이 아들에게는 인생의 가르침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뽑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베토벤 '월광' 소나타 3악장을 신청합니다.'

칠십 평생 중 60여년을 피아노 한 우물만 판 피아니스트 백건우(70).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그가 자신의 음악 인생을 함께해오며 오래 사랑해주고 더불어 성장한 팬들에게 보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오는 29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독주회 '백건우의 선물'이다. 자신을 아껴준 팬들과 음악을 즐기고 벗하는 시간을 가지려는 것이다.

지난 5월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 연습에 한창인 백건우.
백건우는“팬들로부터 신청곡을 받아 연주하는 건 처음이다. 사람들이 어떤 곡을 듣고 싶어하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5월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 연습에 한창인 백건우. /고운호 객원기자
여느 음악회와 다른 점이 있다. 바흐 프랑스 모음곡 5번과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리스트의 '바흐 이름에 따른 판타지와 푸가' 등 몇몇 곡은 준비한 대로 연주한다. 하지만 이날 공연의 진짜 주인공은 '팬들이 백건우에게서 받고 싶은 선물'이다. 신청곡을 미리 받아 2부 연주가 시작될 때 무대 위 스크린을 통해 곡목을 공개하고 즉석에서 들려주기로 했다. 모두 네 작품이다.

지난 7월 1~20일 공연기획사 빈체로는 홈페이지와 SNS에 '백건우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 신청하고,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함께 저녁식사를!'이라는 문구를 띄우고, 관객들이 듣고 싶은 곡을 설문조사했다. '5분 내외의 독립된 작품을 선정해 선곡 이유와 함께 백건우에게 전하고 싶은 멘트를 자유롭게 기재하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열흘 만에 90여 건이 쇄도했다. 라디오에서 읽어주는 청취자 사연처럼 신청곡이 날아들었다.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엄마를 검사실 앞에서 기다리며 벌벌 떨고 있을 때 무심코 들은 선생님의 쇼팽 녹턴…. 백 마디 말보다 이 곡 하나가 제겐 더 큰 위로였습니다.' '피아노를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인데 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고생하는 아내에게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선생님이 연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힘들면 계단이나 주차장에 숨어서 선생님의 포레 '로망스' 음반을 닳도록 들었어요. 울다가도 힘이 됐어요….' 미소 짓게 만드는 사연도 있었다. '클래식도 좋지만 저는 선생님이 연주하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쓸쓸하지만 가을에 들으면 마음에 와 닿을 좋은 노래일 것 같아요.'

3년 전 백건우는 경북 울릉군의 외딴 섬을 찾아가 당시 그 섬의 유일한 거주민이던 한 사람을 위해 연주회를 연 적이 있다. 공연장은 그 집 마루, 피아노는 거기에 놓여 있던 낡은 가정용 피아노였다. 5년 전엔 인천 옹진군의 작은 섬 연평도에서 북한의 갑작스러운 포격으로 몸살을 앓은 주민들을 위해 섬마을 콘서트를 열었다. 연주가 끝나면, 온 마음을 다해 손 흔들고 배웅해주는 그들을 차곡차곡 가슴에 새겨온 백건우는 "팬들이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모험을 꿈꾼다"고 말했다.

백건우의 선물=29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