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호산 "능글맞고 징글징글하게 연기하고 싶었다"

  • 뉴시스

입력 : 2016.08.26 13:26

드라마 '원티드'서 악랄한 함태섭 대표로 눈길
데뷔 20년차,'대학로 예술가 전문배우'로 유명
연극 ‘도둑맞은 책’서 시나리오 작가로 또 변신
“자그마한 식당에 갔는데 일하시는 두 아주머니가 저를 알아보신 거예요. 한분이 ‘나 저 사람 싫어’라고 하시더라고요. ‘원티드’의 함태섭 때문이죠.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쁘기도 하고. 묘하더라고요.”

무대 기반의 배우인 박호산(44)은 최근 종영한 SBS TV 사회 고발 드라마 ‘원티드’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악랄한 짓도 서슴지 않은 SG그룹 함태섭 대표를 연기했다.

“주문한 음식에 뭐라도 넣은 게 아닌가 불안했죠. 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더 컸어요. 그렇게 캐릭터를 봐주시는 것 자체가 힘이 되거든요.”

‘원티드’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함태섭에 대한 욕으로 점철됐는데 이 역시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웃음을 보탰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주요 배역을 맡은 건 처음이었던 박호산은 애초 4, 5회 가량 출연 예정이었다. 하지만 호연으로 인해 분량이 계속 늘었다. 정중하고 예의바른 대기업 대표의 이면에 똬리를 튼 검은 욕망이 그로 인해 분출될 때 시청자는 섬뜩함을 느꼈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박호산은 “나와 연기하는 인물의 간극이 떨어질수록 연기하는 맛이 생긴다”고 말했다. 평소 다정함이 그의 본 모습이다.

“드라마는 잘 하지 않아서 긴장이 됐어요. 드라마 제작 여건 상 시간에 좇길 수밖에 없지만 박용순 PD님, 한지완 작가님과 캐릭터를 계속 상의해나갈 수 있어 좋았죠. 연극 작업 하듯이 대사를 만들어나갔어요.”

무엇보다 함태섭의 뻔뻔함이 화제를 모았다. 가습기 피해자에게 마치 사과할 것 같은 눈빛과 몸짓 뒤에 자신을 왜 이렇게 몰아세우는지 모르겠다는 반전이 이어지는 순간에는 묘한 쾌감을 안겼다. “적반하장의 뻔뻔스러움의 극치죠. 능글맞으면서도 징글징글하게 연기하고 싶었어요.”

‘원티드’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생각보다 시청률은 부진했다. “4, 5년 전부터 방송을 하고 싶었어요. 무엇이든 기회가 오면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만난 거예요.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드라마라 정말 만족해요.”

TV 시청자에게 낯서나 박호산은 대학로에서 이미 뮤지컬과 연극을 주름 잡는 배우 중 한명이다. 영화 ‘족구왕’에서 카리스마와 페이소스가 깃든 복학생으로 주목받기도 한 그는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뮤지컬 ‘러브레터’ ‘인 더 하이츠’ ‘명동로망스’와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 ‘프로즌’ ‘얼음’ 등에 나오며 매번 호연했다. 특히 대학로에서 예술가 전문 배우로 유명하다.

뮤지컬 ‘명동로망스’에서 화가 이중섭,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의 뮤지션 김광석,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이영훈을 연상케 하는 작곡가, 뮤지컬 ‘에릭 사티’의 작곡가 에릭 사티 등 수두룩하다.

9월1일 개막하는 연극 ‘도둑맞은 책’(25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연출 변정주)에서도 예술가를 연기한다. 흥행 시나리오 작가 ‘서동윤’이다.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상을 받은 유선동 작가의 영화 시나리오가 원작이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를 대본을 쓴 서동윤이 영화대상 시상식 날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스릴러 심리 드라마다. 지난해 재연에도 출연했던 박호산은 서동윤의 좇기는 마음을 치밀한 연기로 소화하며 관객의 심리를 쥐락펴락했다.

“재연이 힘든 건 이전의 제가 경쟁상대라는 거예요. 더 잘해야 한다는 거죠. 1년이 지나고 그 만큼 쌓인 게 있을 테니 확실히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연기로 매번 호평받는 박호산이지만 힘든 때도 있었다. 2003년 연극 ‘이(爾)’에서 ‘공길’을 연기했을 때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가 연기한 공길은 여성적인 색깔이 깃든 캐릭터였다.

“당시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당시 공길은 제가 가지고 있는 모습 중에서 닮은 게 없었어요. 근데 그걸 찾아내야 하니 힘들었죠. 근데 그 때 깨달았어요. 연기라는 것이 캐릭터와 닮은 내 안에 있는 걸 어떻게든 찾아내고 나머지 모습은 빼야 한다는 걸요.”

박호산은 배역을 새로 만날 때마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 같다고 웃었다. “어떤 사람하고 친해지면 닮게 되잖아요. 새 배역을 만날 때 딱 그런 기분이에요.”

그의 차기작은 장윤현 감독의 영화 ‘대립군’(2017년 개봉 예정)이다. 광해군 시대를 다룬 영화로 광해군의 부친인 선조를 연기한다. 초반에 잠깐 나오지만 영화 전반에 그의 아우라가 깔려 있다. 이정재, 여진구 등이 출연 예정이다.

대학로와 TV, 스크린을 쉬지 않고 오가는 박호산은 “맡겨주실 때 열심히 해야죠. 고된 일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계속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죠”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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