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발레리나 이상은 "내몸을 더 사랑하게 됐다"

  • 뉴시스

입력 : 2016.08.18 09:42

"한국에 있을 때는 '키가 너무 크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외국에서는 좋아하셨다. 장점으로 봐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 입단 6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발레리나 이상은(30)은 국내 여성무용수로서는 보기 드문 181㎝의 장신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발레리나로서 이상적인 키는 168㎝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상은은 이상적인 신체 비율에서 비롯되는 시원한 표현력으로 핸디캡을 이겨왔다.

특히 장신이 많은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에서 활약이 도드라졌다. 현재 이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인 이상은은 키가 큰 무용수임에도 빠른 동작에 누구보다 민첩하다. 이를 위해 필라테스 등을 꾸준히 병행하며 잔 근육을 키웠다. 선화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2007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 2010년 젬퍼오퍼발레단으로 이적했다. 입단 1년 후인 2011년 '라 바야데르' 감자티 역에 발탁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2013년 퍼스트 솔리스트로 승급했다. 다시 3년 만에 수석무용수가 된 것이다.

16일 서울 왕십리에서 만난 이상은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표현력의 장점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더 크게 팔과 다리를 쓰라고 하더라. 예전에는 몸 쓰는 것에 주눅이 들고 정형화된 움직임에 맞추려고 노력을 했는데, 지금은 내 몸이 더 감사하게 느껴지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됐다."

모델 같은 외모의 이상은은 싱그러운 에너지도 겸비했다. 새침한 외모와 달리 털털하고 무엇보다 명랑하며 웃음이 많다. "외국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너스레를 겸한 겸손이다. "처음에는 소심했다. 외국 친구들 사이에 있다 보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더라. 더 이야기하고 더 웃다 보니 밝아졌다."

수석무용수가 됐지만, 이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믿음직한 자세다. "기대를 안 했다. 지난해 빠듯한 일정으로 정신없이 보내면서도 열심히 했는데 그런 모습들을 발레단에서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오히려 초심으로 돌아간 계기가 됐다.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닌, 춤이 좋아서 시작한 그때가 계속 생각났다."

오프 시즌에 맞춰 5주 전 귀국, 17일 출국한 이상은은 앞서 12∼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입상자 출신들이 펼친 '2016 월드갈라' 공연에 출연했다. 같은 발레단 동료인 크리스티안 바우흐와 함께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의 '슬링어랜드', 안무가 크레이그 데이비슨의 '추억'을 각각 한국·세계 초연했다.

2012년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스타 초청 공연' 이후 약 4년 만의 국내 무대로 갈라 공연이었지만, 시원스런 표현력으로 역시 이상은이라는 평을 받았다. "동생이 공연을 잘 안 본다. 근데 이번에 응원하러 와서 재미있다고 하더라.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호호호."

10세 때 발레를 시작한 이상은은 순수 국내파로 외국 발레단에 진출하는 쾌거를 썼다. 최근 활발해지는 국내파 무용수들의 외국 진출에 앞장선 셈이다.

특히 적극적으로 나선 점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2004년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 파이널리스트, 2005년 서울 국제무용콩쿠르 그랑프리, 2008년 바르나 국제발레콩쿠르 시니어부문 동상 등을 차지한 이상은은 "외국 콩쿠르에 열심히 나간 이유는 심사위원으로 오시는 외국 발레단 단장님들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입단 제의는 쉽게 오지 않았다. 이상은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직접 발레단 홈페이지마다 들어가서 정보를 찾고 발품을 팔았다. 그러면서 무용을 보는 안목도 높아지고 세계 발레 흐름도 알게 됐다.

개성 강한 애럿 왓킨 예술감독이 10년째 이끌고 있는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이 마음에 들어온 건 1년 12개 프로그램의 다양성 때문이었다. 클래식, 모던, 창작 등이 고루 섞여 있었다. "힘들지만 다양한 장르가 상호 보완을 하면서 무용수들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이다.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의 첫 내한공연을 함께 해 이 발레단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도 더했다.

한창 정점에 오른 이상은에게 어떤 무용수가 되고 싶은지 묻자 의연하고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지금 무용이 너무 재미있다. 예전에는 관객과 소통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미리 목표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가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것이 지금은 바르다고 본다. 예전에는 앞날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현재(present) 자체가 선물(present)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 Copyrights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