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부츠 죽을 맛… 그래도 춤이 절로 나오죠"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6.08.18 03:00 | 수정 : 2016.08.18 10:18

[브로드웨이産 뮤지컬 '킹키부츠 '두 주연 배우 정성화·이지훈]

정 "서 있기도 힘든데 춤까지…"
이 "대사량이 어마어마해"

실력파 되기까지 닮은 점 많은 둘
90년대 데뷔, 이른 나이에 뜬 뒤 침체기 거쳐 뮤지컬로 정상 올라

굽 높이 15㎝,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80㎝ 길이의 부츠를 신어야 하는 육중한 몸집의 정성화(41)는 죽을 맛이다. "발레하듯 발가락만 땅에 대고 발목을 세워야 됩니다. 그냥 서 있기도 힘든데 요염한 자세를 하고, 무대를 뛰어다니며 춤을 춰야 하니…." 호리호리한 체격의 이지훈(37)이라면 부츠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사실 전 마지막 장면에서만 신어요. 대신 대사가 어마어마합니다. 대본에서 제 대사 없는 페이지가 없더라고요, 아이고."

두 사람이 출연하는 작품은 다음 달 2일 개막하는 브로드웨이산(産) 라이선스 뮤지컬 '킹키부츠'다. 2013년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쓸었던 화제작으로, 팝스타 신디 로퍼가 작사·작곡한 신나는 음악이 펼쳐진다. 국내 공연은 2014년 초연 이후 두 번째다. 이지훈은 망해가는 구두 공장을 물려받은 뒤 '드랙퀸(여장 남자 가수)을 위한 튼튼한 부츠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 재기에 성공하는 찰리 역, 정성화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드랙퀸 롤라 역이다.

뮤지컬‘킹키부츠’에 출연하는 이지훈(위·찰리 역)과 정성화(롤라 역)가 80㎝ 높이의 여장 남자용 부츠를 앞에 두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뮤지컬‘킹키부츠’에 출연하는 이지훈(위·찰리 역)과 정성화(롤라 역)가 80㎝ 높이의 여장 남자용 부츠를 앞에 두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김지호 기자
두 사람은 국내 뮤지컬계에서 '실력파'로 인정받는 남성 배우들이다. '연기와 노래가 어려운 작품에 계속 출연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쉬운 작품은 좀 시시해서…."(정성화) "도전하는 맛이 있잖아요."(이지훈) 최근 정성화는 '영웅' '레미제라블'의 중후한 주인공 역할을 잇달아 맡아 굵직한 가창력을 과시했고, 이지훈은 '벽을 뚫는 남자' '모차르트!'에서 자유분방하면서도 고뇌하는 역할을 섬세하게 소화했다는 평을 들었다. 클래식 창법이 많은 다른 뮤지컬과 달리 흑인 음악인 솔(soul)에 가까운 창법을 구사해야 하는 '킹키부츠' 역시 어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작품이다.

'새로운 꿈을 지니고 편견에 맞서 성공의 길을 걷는다'는 '킹키부츠'의 롤라와 찰리처럼, 정성화와 이지훈도 지금껏 그런 길을 걸어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둘 다 스무 살 무렵인 1990년대에 연예계에 데뷔해 이른 나이에 성공의 단맛을 봤다. 1994년 SBS 공채로 개그맨 활동을 시작했던 정성화는 "그땐 참 많이 노느라고 자기 계발에 소홀했다"고 회상했다. 1996년 히트곡 '왜 하늘은'을 내놓아 스타 반열에 올랐던 이지훈은 "정말 철이 없었을 때"라고 털어놨다.

침체기를 거친 뒤 서른 살을 전후한 시기에 뮤지컬 무대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는 것도 비슷한 점이다. 정성화는 2004년 '아이러브유', 이지훈은 2006년 '알타보이즈'로 뮤지컬에 데뷔한 뒤 밑바닥부터 다시 실력을 쌓아 차곡차곡 올라갔다. '쟤가 무슨 뮤지컬을 한다고 저러느냐'는 편견과도 정면으로 맞섰다. "무조건 연습실에 30분 일찍 나가서 한 시간 늦게 나왔습니다. 이를 악물고 했죠."(정성화) "가수 데뷔 15년이 되던 해에 연출가한테 '너 뭐 하는 놈이냐'는 질책을 들었어요. 아직 길이 멀었다고 생각하고 버텼습니다."(이지훈)

다시 10년쯤 지나 마흔 살을 전후한 나이가 된 지금, 두 사람은 이제 뮤지컬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지훈은 정성화가 "나오는 작품마다 정성화가 아닌 극 중 인물을 본다고 느낄 만한 연기를 보여준다"고 했고, 정성화는 이지훈에 대해 "'과연 저걸 할 수 있을까' 걱정되던 배역도 끝내 소화해내고 마는 친구"라고 했다. 두 사람에게 불혹(不惑)이란 '아직도 꿈을 꿀 수 있는 나이'를 뜻하는 것 같았다.

▷뮤지컬 ‘킹키부츠’ 9월 2일~11월 13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