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더리스트 권민석] "악기 자체가 꾸밈이 없어요"

  • 뉴시스

입력 : 2016.08.01 10:27

"자기 안의 원석을 찾아내 오랜 시간 다듬어가는 거지." 바이올린 장인을 꿈꾸는 소년이 등장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숨어 있는 명작 '귀를 기울이면'(감독 곤도 요시후미) 속 대사다.

리코더리스트 권민석(31)이 일반 인문계 고교 1학년에 재학 중에 리코더에 대해 보석 같은 마음을 품게 한 결정적 순간 중 하나다.

"우선 공부에 대해서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는 것이 중요했죠. 고1 때 내신 성적이 좋았어요.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리코더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의지가 굳세다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 3박4일 정도 '살짝' 가출을 했어요. 예술의전당 근처에서 악보를 보며 버텼죠. 하하."

그는 유럽에서는 고(古) 음악 악기로 위상을 인정받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주로 초등학교 학습용 악기로 인식된 리코더를 재인식하게끔 하는 몇 안 되는 연주자다.

무엇보다 성격이 리코더와 닮았다. "악기 자체가 꾸밈이 없다"고 순한 웃음을 선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개량된 악기들보다 단순해요. 곧바로 구멍을 손으로 막아 소리를 낼 수 있죠. 저평가되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울림은 어느 악기보다 순수합니다. 반응이 섬세해 세세한 조절로 여러 다른 음색도 낼 수 있죠."

초등학교 무렵 네덜란드 출신 '리코더의 거장' 프란스 브뤼헨의 바로크 음반을 처음 접한 뒤 이 악기의 위상에 대해 주목했다. "반에서 악기 하나씩 들고나와서 연주할 때 리코더를 당당히 들고 나갔어요. 리코더로 반음계를 내면서 비발디 소나타를 연주하니, 막 신기해했죠. 고등학교 때도 리코더를 한다니까 친구들이 놀랐는데, 연주회를 본 뒤에는 응원도 많이 해줬어요." 그가 연주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또 다른 계기는 2003년 '고음악 스페셜리스트'인 비올리스트 조르디 사발의 내한공연이었다. "당시 세밀한 악기 소리에 끌렸다"고 했다. 이후 조진희와 김수진 씨에게 리코더를 사사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를 거쳐 서울대 음대 재학 중 네덜란드로 헤이그왕립음악원 고음악과에서 렌-마리 베어하겐에게 리코더를 배웠다.

2009년 몬트리올 국제리코더콩쿠르와 런던 국제리코더콩쿠르에 연이어 입상, 유럽에서 차세대 리코더 연주가로 주목받았다. 헤이그왕립음악원의 음악 친구들과 고음악단체 '콩코르디 무지치를 창단', 함께 바로크음반을 내기도 했다.

리코더의 가능성과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데 꾸준히 힘을 쓰고 있다. 루프 스테이션 등 흔히 전자 기타리스트들이 사용하는 전자기기로 즉흥 반주를 들려주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전자음악을 공부한 대중음악 뮤지션이자 '고구마'로 유명한 권병준과 협업하기도 했다.

"병준이 형과는 네덜란드에서 만났는데 고등학교, 대학교가 같더라고요. 그래서 금방 친해졌죠.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등에서 함께 연주하며 많은 걸 배웠어요. 리코더 소리에 디스토션(소리나 신호를 부러 왜곡하는 것)을 걸고 그랬죠. 하하. 다양한 소리를 교감시키는 법을 배웠어요. 큰 공부가 됐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 화려한 전성기를 누린 리코더는 플루트의 등장으로 점차 잊혀 갔다. 20세기 들어 원전악기 연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권민석이 공부한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네덜란드에서도 1950년대까지만 해도 리코더는 박물관에 들어가 있는 악기였어요. 콘서트홀이 커지다 보니 소리 작은 리코더 대신 플루트가 그 자리를 대신했죠. 하지만 1950~60년대 고음악 운동이 일어나 바흐 음악이 다시 돌아오면서 다시 주목 받게 됐어요."

권민석은 국내에서 리코더의 매력을 전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8월7일까지 강원 평창 일대에서 열리는 '제13회 평창 대관령 음악제'에 참여한다. 처음 이 음악제에 나선 그는 29일 저명 연주가 시리즈 2번째 무대에서 첼리스트 박진영, 하프시코드 연주자 아포 하키넨과 함께 바리에르의 트리오 소나타 D 단조를 연주했다.

8월4일에는 역시 같은 연주자들과 바르산티의 리코더와 콘티누오를 위한 소나타 C 장조, op. 1, no. 2를 들려준다. "춤곡이 접목된 곡이거나 비르투오소(화려하고 밝은)적인 면모가 있는 곡들이죠. 리코더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권민석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학사 과정으로 지휘를 공부하고 있다. 최근 지휘자 성시연이 이끄는 경기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작곡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리코더 하나만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서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요. 이처럼 단순한 악기도 말이에요. 다른 악기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바이올린, 타악기 등 다른 악기들 연주가 정말 어렵거든요. 지휘는 솔리스트로서 이런 부분을 더 이해하는데 큰 공부가 되죠."

리코더는 평생 연주할 것이라고 눈을 빛냈다. "제 음악적인 목소리는 리코더로 표현되거든요. 리코더를 통해 음악을 배웠죠. 리코더 없이 지휘만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어요." 리코더를 대중화시키겠다는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제 음악을 만드는 악기이니 감사함이 먼저죠.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만큼 숨은 매력이 많은 악기를 연주해서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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