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연광철, "난 촌놈에 늘 2등인생, 그 덕분에 지금 무대에서 살아"

  • 뉴시스

입력 : 2016.07.28 09:50

충주 시골서 자라 피아노 소리도 고교때 들어
소팔아 유학후 국제 오페라 콩쿠르서 두각
재능문화재단과 '성악 마스터클래스' 첫 개최
"후배들 세계무대 활약위해 조언아끼지 않을터"
"제 경우에는 항상 2등 인생을 살았어요. 시골에서 학교에 다녔고, 좋은 곳도 아니었죠. 유학도 제일 유명한 곳으로 간 곳도 아니었고, 베를린 극장에서 활동했지만 그곳에서는 워낙 유명한 가수들이 많았고. '퍼스트 클래스'의 시간을 보낸 건 아니죠."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51·서울대 교수)은 27일 오전 서울 혜화동 JCC(재능문화센터)에서 열린 '성악 마스터 클래스' 기자간담회에서 "그런 시간을 지내와서 지금 무대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면모가 강한 연광철이지만, 그는 자신을 '촌놈'이라고 했다. 충북 충주의 구석진 촌에서 자라 12세 때까지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피아노 소리도 고등학교 진학해서야 들었다. 충북 청주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음악 선생님이 없어 음악 시간에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어야만 했다. 건축 기능 자격증 2급 시험에 떨어진 뒤 독학으로 3개월 동안 음악을 공부해 청주대 음대에 들어갔다.

부친이 소를 판 돈으로, 당시 막 한국과 수교가 이뤄져 다른 유럽 국가보다 물가가 쌌던 불가리아의 소피아 국립예술학교로 유학을 갔다. 이후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를 거쳐 1993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로 알려진 '오페랄리아, 국제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4~2004년 명문인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전속가수로 활동했다. 특히 1996년부터 바그너의 성지로 통하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단골로 출연하고 있다. 빈 국립오페라극장,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적인 극장을 섭렵 중이다. 즉 '금수저' 없이도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 내 엘리트가 세계에서도 엘리트인가에 대해서는 자문을 해봐야 한다는 연광철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엘리트 코스를 다른 나라에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다' 등의 생각은 빨리 잊어야 합니다. 외국에서 오히려 실망하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자책하게 되죠. 성악은 그 사람의 음성과 재능에 맞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외국인들이 보는 성악가는 '어느 대학을 나왔나' '어느 코스를 밟았나'가 아니에요."

연광철이 재능문화재단과 함께 손잡고 국내에서 처음 여는 성악 마스터 클래스(8월8~10일·JCC) 역시 그의 생각을 반영했다. 상당수 마스터 클래스가 일부 추천이나 출신학교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 반해 학연이나 지연 등의 제한 없이 지원받았다. 대신 사유와 목표, 비전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도록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있는, 오디션을 앞둔 성악가 위주로 10명가량을 선발한다.

연광철은 "현재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많지 않지만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후배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데 좋은 조언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부친인 베이스 강병운 서울대 명예교수 등을 제외하고는 외국에서 한국 성악가의 활약이 거의 없던 1990년대 초반, 본인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서양 문화의 중심이라는 오페라를 공부하면서도 그들의 문화에 쉽게 동화될 수 없었다. 특히 동양사람이 서양사람 역을 맡아 노래해야 한다는 것이 곤혹이었다. 극장 분장사가 동양인을 상대로 한 분장은 처음이라며 코에 고무를 덧대려 하기도 했다. 연광철은 더구나 묵직한 음을 내는 베이스라 왕이나 대제사장 역을 맡아야 했는데 체구가 작다는 핸디캡도 있었다.

결국 "음악적인 노력과 역량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동시에 음악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음악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어서 일차적으로 만족했어요. 베를린에 있을 때만 해도 국제적으로 활동할 거로 생각지도 않았죠. '일인자가 되겠다' '세계 최고다'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습니다."

이번 마스터 클래스를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연광철은 "외국에서 활동하고자 할 때는 해당 문화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춘향전'을 감상할 때 단순히 사랑과 권선징악 이야기보다 그 당시 관기 제도, 암행어사 제도 등을 알아야 더 재미있잖아요. 외국 문화도 마찬가지죠. 음악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왜 나오게 됐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해요. 이번 마스터 클래스에서도 그 부분에 집중하려 합니다."

2014년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유력 후보로 거명되던 그는 이 자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페라단은 오페라하우스가 있어야 하고 기술자도 있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있어야죠. 그런데 지금 오페라단은 공연하기 위해 예술의전당을 대관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문화부 차원에서 여건을 갖출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게 필요합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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