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연극 무대서 봤던 한국배우, 내 작품 연출하게 될 줄이야…"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6.07.28 01:49

일본 대표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 연극 '곁에 있어도 혼자'
연출은 신예 이은영이 맡아

'아침에 일어났더니 옆에 웬 여자가 있다. 그런데 문득 나는 그와 결혼한 상태였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일본의 대표적 극작가 중 한 사람인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54) 도쿄예술대 교수가 쓴 연극 '곁에 있어도 혼자'는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 하는 황당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새로 '결혼'한 이 두 남녀의 형과 언니는 이혼하려고 하는 20년 차 부부다. 히라타는 최근 대학로에서 막을 올린 이 작품의 한국 공연을 보러 서울을 방문했다. "누구도 어느 날 갑자기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결혼 아닌가요? 과연 좋은 선택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결혼의 부조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연극‘곁에 있어도 혼자’의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왼쪽)와 연출가 이은영.
연극‘곁에 있어도 혼자’의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왼쪽)와 연출가 이은영. 히라타는 이 연극에 대해“결혼의 부조리성에 관한 작품”이라고 했고 이은영은“인물 사이의 사랑으로 풀어내려 했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연출자는 이 작품이 데뷔작인 신예 이은영(31)이다. 그는 등장인물 네 명이 등장해 갈등을 빚는 이 작품에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 "얼핏 보면 서로 싸우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걱정해 주는 내용이었어요. 사랑으로 감싸 주는 대화로 풀어냈습니다." '대학로가 젊고 유능한 연출가를 얻었다'는 호평도 나온다.

히라타는 2000년 홋카이도 오비히로의 아마추어 극단을 위해 이 작품을 썼고, 이후 일본 각지에서 여러 사투리 버전의 공연이 나왔다. 서울 공연을 본 그는 "원래 다른 관객에게 방해될까 봐 웃음을 참는데, 이번엔 너무 재미있어 웃다가 눈물을 닦느라 안경까지 벗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 연극의 작가와 연출가는 모두 범상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히라타는 낮에 돈을 벌기 위해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16세 때 혼자 세계 일주 자전거 여행을 떠나 26국을 돌았다. 1984년부터 2년 동안 연세대에서 유학하며 한국어를 공부했고, 무대 위에 로봇 배우를 세우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걸그룹 출신의 연극 연출가'라는 기록을 세운 이은영은 가수→뮤지컬 배우→연극배우→연출가라는 역정을 거쳤다. 15세 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뒤 연습생을 거쳐 2004~2006년 여성 3인조 가수 '제이하트'로 활동했다. 중앙대 연극학과에 다니면서 '퀴즈쇼' 등 뮤지컬에 출연했지만 '남을 설득하는 게 더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에 연출 공부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의 세계적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의 눈에 띄어 2013~2015년 스즈키 컴퍼니 객원 단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극단 청우의 연출가 김광보 밑에서 조연출을 맡았다.

히라타는 이은영에 대해 "스즈키 선생의 '리어왕'에서 대단한 존재감을 보인 훌륭한 배우였는데, 이 작품을 연출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연극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웃었다.

▷연극 '곁에 있어도 혼자' 31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02)764-7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