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점잖던 회사원도 가면 쓰고 방방 뛰는 '로큰롤 놀이동산'

  • 정리=김성현 기자

입력 : 2016.07.25 03:00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가보니…]

전통 록부터 펑키한 무대까지 국내외 70여 개 팀 사흘간 향연
이소라 발라드 공연이 더 인기, 모호한 행사 정체성은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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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놀이동산'에 입장한 기분이라고 할까. 22~24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첫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해골바가지 가면을 쓰고 상의를 모두 벗은 채 록 밴드를 상징하는 보디 페인팅을 그린 행렬과 마주쳤다. 록 페스티벌은 물론, 태어나서 록 공연 자체가 처음이라는 30대 양지호 기자는 "평소 회사와 학교에서 점잖게 생활하시던 분들이 저렇게 파격적으로 변신할 수 있다니…"라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올해 지산 페스티벌에는 국내외 70여 개 팀이 사흘간 3개 무대에서 연속 공연을 펼쳤다. 부지런히 발품만 팔면 낮 12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쉼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왕년에 힙합 보이를 자처했지만 오래전 클래식 음악으로 '전향(轉向)'한 40대 김성현 기자는 "한마디로 록 음악의 해방구인 셈"이라고 했다.

기자들의 첫날 동선(動線)은 한국 3인조 그룹인 해리 빅 버튼과 영국의 스테레오포닉스, 가수 이소라와 미국의 록 밴드인 레드 핫 칠리 페퍼스로 이어졌다. 국적이나 장르가 다양한 연주자들의 면면(面面)에 자연스럽게 기자들의 취향도 나뉘었다. 체감온도 35도의 낮 무대에 올라간 해리 빅 버튼은 1970~1980년대 정통 하드록 스타일의 강력한 음악을 선보였다. 김 기자는 "세 명의 멤버만으로 속이 꽉 찬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면서도 연신 그늘만 찾아다녔다. 반면 양 기자는 "노래 하나가 끝날 때마다 로큰롤을 외쳐야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유보적 의견이었다.

록 페스티벌의 한복판에서 '처음 느낌 그대로' '바람이 분다' 같은 정통 발라드를 들려준 가수 이소라의 공연에 기자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나뉘었다. 재즈 보컬 그룹 '낯선 사람들' 시절부터 이소라의 팬이었다는 김 기자는 "편안한 진행에 심금을 울리는 절창(絶唱)까지 방송 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보는 것 같다"면서 자리를 떠나질 못했다. 30대 변희원 기자는 "소극장에 어울리는 가수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팬층이 두꺼운 음악인"이라며 "록 음악으로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주는 한줄기 서늘한 바람 같았다"고 말했다. 반면 양 기자는 "명색이 록 페스티벌인데 정작 이소라의 공연에 관객 반응이 더 뜨겁다는 것이 이 행사의 모호한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면서 "어쩌면 우리 시대의 노래는 배경 음악(back ground music)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22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메인 무대에 선 미국의 록 그룹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사흘간 국내외 70여 개 팀이 공연을 펼쳤다.
22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메인 무대에 선 미국의 록 그룹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사흘간 국내외 70여 개 팀이 공연을 펼쳤다. /CJ E&M

실제 야외 객석에서도 상반된 풍경이 펼쳐졌다. 앞줄에서는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면서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이는 열렬한 록 음악 팬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 뒤편에서는 텐트를 치거나 돗자리를 깔고 흡사 재즈 페스티벌처럼 운치 있고 호젓하게 음악을 즐기는 관객도 많았다. 변 기자는 "요즘에는 야외 페스티벌이나 공연장에 가도 예전처럼 2~3시간 내내 소리 지르는 게 아니라 피크닉에 온 것처럼 느긋하게 즐기는 관객도 많다"며 "어쩌면 록 음악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傍證)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첫날 밤 메인 무대를 장식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1980년대부터 펑키(funky)한 록 음악의 '대부(代父)'로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멤버 4명은 대부분 5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베이스 기타를 치는 플리(Flea)는 앙코르 곡을 들려줄 때 물구나무를 서서 입장하는 등 여전히 악동 같은 면모를 과시했다. 2002년 첫 내한 공연도 관람했던 변 기자는 "기타와 베이스의 호흡이 너무 빼어나서 몇몇 곡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양 기자는 "50대 중반에 접어들었기 때문인지 보컬이 공연 중반부터 다소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여준 점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기자들의 관람 방법도 연령에 따라 달랐다. 30대의 두 기자는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앞줄로 뛰어 나갔다. 반면 40대인 김 기자는 뒷줄에 수건을 깔고 자리에 앉더니 인기 곡이 나올 때만 잠시 일어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김 기자는 "그들도 늙은 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 예전보다는 덜 맵기는(hot) 하지만, 고추(chili pepper)를 맛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자정 무렵 이들의 무대가 막을 내리자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관객들로 페스티벌 주변 도로는 새벽까지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버스 속에서 해리 빅 버튼 보컬 이성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록 음악을 진심으로 즐길 수 없을 때 우리는 늙는 거예요. 그러니 외칩시다. 롸캔롤(Rock'N'Ro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