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7.21 09:50 | 수정 : 2016.07.21 16:22
사진가 양승우(50)를 만났다. 그의 ‘청춘길일(靑春吉日)’ 사진 전시가 열리는 서울 충무로 사진갤러리 브레송에서 15일 오후 우연히 만났다. 여당 비대위원들이 태릉선수촌을 방문하는 사진을 찍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전시장을 들렀다. 흑백으로 프린트된 조폭, 술집, 안마시술소 같은 전시 사진들을 본 후 사진집을 보고 있을 때 짧은 머리의 한 남자가 큰 가방을 들고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앉아서 편하게 보시죠” 한눈에 그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양승우라고 알아봤다.
전시가 연장이 되어 이번 주 작가와의 대화가 이뤄지자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막 귀국한 것이라고 했다. 운이 좋았다. 사전 약속이 없었지만 한국에서 휴대폰도 없이 다니는 그를 언제 또 볼까 싶어서 전시가 열리는 그곳에서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런 사진들을 어떻게 찍었을지 궁금했다.
그의 사진들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들이 많다. 남녀의 애정 표현, 노숙자, 조폭, 안마시술소 아가씨 등등 영화에서 재현해서나 볼 소재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하지만 사진들은 날 것 그 자체였다. 시퍼렇게 날선 칼처럼 사진들은 긴장되고 살아있다.
전시가 연장이 되어 이번 주 작가와의 대화가 이뤄지자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막 귀국한 것이라고 했다. 운이 좋았다. 사전 약속이 없었지만 한국에서 휴대폰도 없이 다니는 그를 언제 또 볼까 싶어서 전시가 열리는 그곳에서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런 사진들을 어떻게 찍었을지 궁금했다.
그의 사진들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들이 많다. 남녀의 애정 표현, 노숙자, 조폭, 안마시술소 아가씨 등등 영화에서 재현해서나 볼 소재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하지만 사진들은 날 것 그 자체였다. 시퍼렇게 날선 칼처럼 사진들은 긴장되고 살아있다.
양승우가 이제껏 만든 전시장의 사진집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된 것 외에도 아직 공개되지 않고 사진가가 직접 묶어서 만든 사진집까지 있었다. 가공이 안 된 보석 원석들처럼 사진들은 단단하면서 빛이 났다. 궁금했다. 어떻게 이런 사진들을 찍을 수 있는가가.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진가의 답은 명확했다. 그는 직접 그 속에 들어가 함께 살면서 촬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을 위해 조폭생활을 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묻자 양승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었다. 그는 일본에서 사진학과 대학원을 마치기까지 8년 동안 사진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진을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양승우는 생활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고 했다.
다음은 양승우와 나눈 일문일답.
Q.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나?
일본 가기 전에 시골에서 삼류 논두렁 깡패처럼 놀았다. 나이가 들다보니 친구들은 진짜 어둠의 세계로 가더라. 나도 가만있으면 그길로 가겠더라. 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 일단 가까운 일본을 놀러갔다. 1996년도쯤 이다. 놀다보니 일본이 재밌는 나라였다. 더 놀고 싶어서 두 번째 일본을 갔을 때 아예 랭귀지스쿨을 등록했다. 그러다가 아예 학교를 다니자는 생각에 시부야에 있는 전문대 사진과를 등록했다. 그때까지도 특별히 사진을 배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사진 강의를 듣다보니 너무 재밌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자는 생각에 2000년 쯤 도쿄공예대학 예술학부 사진학과를 입학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던 중에 친한 고향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가 죽고 2년 쯤 지나니까 주변 사람들도 잊고 나도 잊고 살아가는데 그렇게 친했던 친구의 사진 한 장이 없었다. 나도 갑자기 죽으면 사람들한테 저렇게 잊혀지는구나 싶어 너무 허망하고 안타까웠다. 그때부터 주위 사람들 사진을 미친 듯이 찍었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진가의 답은 명확했다. 그는 직접 그 속에 들어가 함께 살면서 촬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을 위해 조폭생활을 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묻자 양승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었다. 그는 일본에서 사진학과 대학원을 마치기까지 8년 동안 사진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진을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양승우는 생활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고 했다.
다음은 양승우와 나눈 일문일답.
Q.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나?
일본 가기 전에 시골에서 삼류 논두렁 깡패처럼 놀았다. 나이가 들다보니 친구들은 진짜 어둠의 세계로 가더라. 나도 가만있으면 그길로 가겠더라. 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 일단 가까운 일본을 놀러갔다. 1996년도쯤 이다. 놀다보니 일본이 재밌는 나라였다. 더 놀고 싶어서 두 번째 일본을 갔을 때 아예 랭귀지스쿨을 등록했다. 그러다가 아예 학교를 다니자는 생각에 시부야에 있는 전문대 사진과를 등록했다. 그때까지도 특별히 사진을 배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사진 강의를 듣다보니 너무 재밌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자는 생각에 2000년 쯤 도쿄공예대학 예술학부 사진학과를 입학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던 중에 친한 고향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가 죽고 2년 쯤 지나니까 주변 사람들도 잊고 나도 잊고 살아가는데 그렇게 친했던 친구의 사진 한 장이 없었다. 나도 갑자기 죽으면 사람들한테 저렇게 잊혀지는구나 싶어 너무 허망하고 안타까웠다. 그때부터 주위 사람들 사진을 미친 듯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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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시나 사진집으로 발표된 사진들이 좀 쎈 것들인데 어떻게 이런 사진을 하게 됐나?
영화로는 이런 세계가 많이 나오는데 사진에는 없지 않았나. 처음부터 내가 찍은 사진으로 어떤 대단한 작품을 만들려고 하진 않았다. 그저 내 주변 사람들을 찍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이 먹고 죽으면 모두 사라지니까. 내가 살아있음의 좋은 날들, 그래서 ‘청춘길일(靑春吉日)’이라 이름 붙였다. 모든 사진은 내 주변 사람들이다. 그 속에서 단순히 지나가면서 툭툭 찍는 식이 아니라 그 사람들과 뒹굴고 놀고 그러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야 재밌으니까.
예를 들어 일본에서 나온 사진집 ‘신주쿠 미아’ 작업은 일본에서 학교 다닐 때부터 계속 찍었다. 아시아 최대 환락가라고 할 정도로 도쿄 신주쿠는 거대한 상업 지역이자 유흥업소들이 몰려 있어서 유학생들에게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는 곳인데, 웬걸 가봤더니 나한테는 너무 편했다. 일본의 다른 어디에도 거리에서 쓰레기 버리는 곳을 찾기 힘든데 거기서는 아무데나 쓰레기가 있고 노숙자, 깡패도 많았다. 나한텐 너무 편했다. 하지만 그 혼돈한 세상에서도 멋이 있었다. 깡패든 노숙자든. 서로 돕고 챙겨주는 정이 있었다. 10여 년 전쯤 도쿄도지사가 그 거리를 너무 깨끗하게 단속하는 바람에 요즘은 재미가 없어졌다.
Q. 이런 모습을 사진 찍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그곳에 늘 있었다. 강의 들으러 학교 갈 때를 빼면 거의 신주쿠에서 노숙하다시피 했다. 그러니 그곳에 있는 야쿠자나 노숙자, 술집아가씨들이 모두 친구가 되어 박스 깔고 앉아 있으면 먼저 다가와 커피도 사주고 그랬다.
‘신주쿠 미아’에서 야쿠자 다섯 명이 자기 구역을 둘러보고 있었다. 폼 잡고 카메라를 보고 있는 사진은 처음에 보고 너무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말 걸었다가 맞을 것 같았다. 며칠 동안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고 못 찍은 게 아쉬웠는데 그들이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차라리 말 걸어서 몇 대 맞을 각오로, 다가가서 솔직하게 말했다. 사진 공부하는 유학생인데 당신들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그랬더니 의외로 그들이 카메라를 보고 폼을 잡고 서 주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돌아와서 바로 프린트해서 갖다 주었더니 “오 멋지네, 다음에 사무실로 놀러와”해서 그들을 계속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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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주로 어떤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나?
대부분 리코(Ricoh) GR1에 흑백필름을 넣어 썼다. 지금은 단종됐지만 한 때 유행했던 똑딱이 카메라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온 후엔 똑딱이 디카를 쓰거나 캐논 6d를 쓴다. 똑딱이는 휴대도 간편하고 사진을 찍으면 사람들이 긴장하지 않아서 좋다. 그렇다고 휴대폰으로는 찍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이거 재밌겠다 싶어서 장기적으로 찍을 사진은 거의 필름으로 찍는다.
Q. 사진들 대부분 접근이 쉽지 않은 곳들인데, 어떻게 그들과 깊이 알게 되나?
처음에 술을 한잔 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을 땐 사진을 찍어서 프린트해서 갖다 주면서 앞으로 이렇게 사진을 찍겠다고 얘기하면서 시작한다. 사진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떨 땐 내가 그곳을 가서 일을 하면서 찍는다. 환락가의 술집 사진은 두 달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딱 한 장을 찍었다.
요코하마 인력시장에서 사진을 찍을 땐 두 달 간 사진 한 장도 안 찍었다. 두 달 정도 지나니까 거기 있는 사람이 나한테 “너는 뭐하는 놈인데 일도 안하고 여기 와서 매일 술만 먹냐?”고 물어보더라. 솔직하게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했더니 그분이 다른 사람들까지 소개시켜주면서 전부 찍을 수 있었다.
몰래 와서 한두 장 툭툭 찍고 잡지에 내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뭘 찍어도 될 정도로 상관없다고 할 정도로 그곳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야 내가 마음이 편하고 사진도 제대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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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렵게 돈을 벌어 사진을 찍는다고 들었다. 어떻게 생활하나?
내 사진은 예쁜 풍경이나 예술 사진도 아니다. 처음부터 내가 벌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래서 계속 노가다에 아르바이트로 전전한다. 봄 되면 차(茶) 공장에 들어가서 번다. 일 년에 두 달 일하는 데 한번 다녀오면 7킬로씩 몸무게가 빠질 정도로 힘들다. 또 귤 밭에서 일하거나 연어알 빼는 일도 한다. 일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사실 요즘 제대로 된 작업을 못하는 것이 나도 안타깝다.
Q.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나?
일본에서도 축제 때 포장마차가 쭉 서는데 그들을 찍고 싶어서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Q. 한국에서 사진을 찍을 마음은 없나?
하고 싶다. 하고 싶은 데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진을 찍기엔 한 달 집세 내기도 힘들다. 그래서 올 때마다 조금씩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