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 "발레흐름 잘 알때 실질적인 도움주고 싶어요"

  • 뉴시스

입력 : 2016.07.19 09:36

ABT 수석무용수…'한국 발레 꿈나무'발굴
YAGP '한국 마스터 클래스' 개최 화제
"학생들 덕분에 '발레사랑'새삼 깨달아"

"'유스아메리카 그랑프리 한국 마스터 클래스'는 제 은퇴 계획의 하나는 아니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은퇴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제가 현역에서 세계 발레 흐름을 가장 잘 알 때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영국 로열 발레단, 파리오페라발레단과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통하는 미국의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 서희(30)가 한국 발레 꿈나무 발굴을 위해 나선다.

22~24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스튜디오에서 '유스아메리카 그랑프리 한국 마스터 클래스'를 연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발레 콩쿠르인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의 첫 한국 예선이다. 국제적인 발레 유망주를 발굴해온 대회로 유명하다. 그간 한국 학생들은 일본 등 해외로 나가서 예선에 참여해야 했다. 비디오 심사를 걸쳐 지난달 82명의 마스터 클래스 참가자를 선발했다.

서희는 2003년 한국인 처음으로 YAGP 전체 그랑프리를 받으면서 주목 받았고, ABT 입단 기회도 잡았다. 13년 전 대회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느낀 감정들, 떨렸던 것, 상을 받았을 때 기쁨, 상 받았다는 통보를 받은 뒤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던 것이 떠오른다"고 했다.

서희 이후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이자 지난달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2016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의 최고 남성무용수상을 받은 김기민이 2012년 그랑프리를 받았다. 올해 4월에는 영국 로열 발레 학교 재학중인 전준혁이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국제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주어져요. 저도 이 콩쿠르로 인해 더 많은 문이 열렸고요."

서희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기부단체 '서희재단'을 설립한 이후 YAGP 예선을 한국에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설치미술가 강익중 등과 함께 자선 경매 행사를 여는 등 후배 무용수들을 위해 기금을 마련해왔다. "재단 일은 처음 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어려웠어요. 법률, 세무적인 일은 신경써본 적이 없었죠. 법인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니 즐거웠죠."

이번에 선발된 학생은 미국 ABT 부속 학교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스쿨, 독일 베를린 국립발레학교 등에서 공부하게 된다. 학생 수는 정하지 않았다. "재능 있는 한국 학생들이 마음 놓고 꿈을 꾸고 싶어도 그 방법을 몰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이번 마스터 클래스를 오로지 학생들만을 위한 시간으로 꾸미는 이유다. 미디어 현장 취재도 받지 않기로 했다. "부모님, 선생님은 오리엔테이션만 같이 참여해요. 학생들이 집중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자님들이 오시면 홍보에 도움이 되겠지만 학생들이 좀 더 집중하길 바랐죠. 외국에서 선생님들이 오셔서 영어로 진행하는데 외국 학교 분위기나 해외 콩쿠르를 실제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죠."

무용수가 지녀야 할 덕목 중 하나로 상상력을 꼽았다. "한국에서도 물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다른 곳에서 더 많은 걸 경험하면 다른 상상력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는 서희는 학생들에게 기존에 받았던 교육과 다를 수 있으니 좀 더 마음을 열기를 청했다.

이런 교육이 반드시 무용수로 성장할 학생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모든 사람들이 무용수로서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좋은 교육을 받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좋은 교육자가 될 수 있고, 좋은 안무가가 될 수 있고, 또 후배들에게 경험을 돌려줄 수 있지요.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에요."

서희에게서 약 30년 간 ABT에 몸 담았다가 지난해 은퇴 뒤 워싱턴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줄리 켄트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한다.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싶다는 그녀는 "성공이라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필요는 없다"며 "원하는 것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힘들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죠."

서울에서 태어나 남들보다 늦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서희는 선화예술중학교 1학년 때 워싱턴 D.C.의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2003년 세계 권위의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입상했고 2005년 ABT 수습 단원을 거쳐 2010년 주역 무용수, 2012년 마침내 수석 무용수에 올랐다.

탄탄대로만 걸어온 듯하지만 물론 힘들 때도 있었다. "저 역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죠. 그런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어요. 지금은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확실하거든요. 발레를 하면서도, 법인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고 기뻐요. 그러니 그 과정이 힘들어도 당연히 거쳐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죠."

어느덧 만으로 서른. 예전부터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 그녀의 잔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직은 나이 먹는 게 두렵지 않다"고 웃었다. "이 순간을 허비하지 않고자 하니까요. 기본적으로 삶에 만족하고 있고 좋아요. 켄트, 문훈숙·강수진 단장님처럼 우아하게 늙어갔으면 하죠."

켄트 등이 은퇴하면서 ABT 수석무용수 9명 중 3번째 서열이 된 서희는 발레단의 빠듯한 일정도 소화해야 한다. YAGP 코리아가 끝난 다음 날 일본으로 출국, 월드투어를 시작으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BOP) 예술감독 직을 사퇴한 벵자멩 밀피예의 신작, 조지 발라신 작품, 차이콥스키 프로그램, 제시카 랭의 새 작품 등 11월까지 쉴 틈이 없다.

"발레만 해도 시간이 부족해서 잠을 줄였어요. 재단 일로 e-메일 등을 보내는 작업을 할 때는 밤을 새기도 하죠. 물론 힘들고 피곤하죠. 하지만 과정도 중요하죠. 이 시간을 지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거든요. 벌써 내년 YAGP 코리아를 구상하고 있어요. 호호. 올해 행사를 치러보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 지 더 고민해야죠."

발레를 하는 학생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어릴 적 제 모습이 떠오른다"고 미소지었다. "제가 얼마나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했는지 떠오르죠. 그때는 성공에 대한 생각조차 없잖아요. 순수하게 발레를 사랑했죠. 아이들 덕분에 제가 발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삼 깨닫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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