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7.11 09:47

99년 평양국제음악회 기획후 북한문화에 눈떠
치매 앓던 재일 조선인 미술가 타계후 사명감
750만 동포예술가 네트워크 소장품 기증 이어
'민족미술로 연구·담론화 할것"현재 부지확보중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때 누구보다 더 숨죽인 사람이 있다. '남북한 문화교류는 정말 물건너 갔구나'하는 안타까움에 막막해졌다.
2007년 평양조선미술박물관 내한 전시를 합의까지 이끌어냈던 문화기획자 이철주씨(54)다. "결국 성사되지 못했죠. 연평해전 사건이 터지면서 그 전시는 무기한 잠정연기도 없이 사그라들고 말았습니다."
IT세상이 되면서 전 세계는 국경이 없어졌지만 남북한은 예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문화교류를 추진하는 일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북한의 문화'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북한의 설맞이 음악공연이 유튜브에 뜨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문화를 파악할뿐이지 직접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가 북한문화에 눈을 뜬 건 1999년 평양국제음악회를 기획하면서다. 지휘자 금난새가 이끄는 유라시안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 조수미,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방북해 펼칠 예정이었던 이 음악회는 무산되고 말았지만 이씨는 남북문화교류 사업을 시작하는 단초가됐다.
2005년 북한 유일의 해외예술단인 '금강산 가극단'내한공연을 제작했다.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호연을 펼쳤던 이 공연은 북의 음악과 춤을 남측이 제작, 유통해 남북문화교류 동제작의 시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북한문화교류사업은 쉽지않았다. 엎어지기 일쑤였다.
2007년 평양조선미술박물관 내한전시 합의와 '북녘의 명무-조선무용 50년'의 공연을 제작했지만 모두 열리지는 못했다. "평양조선미술박물관 내한전시는 수장고지원사업과 공동 연구의 결과물을 만들기로 했던 사업입니다. 대동강에서 남측의 화가 50명과 북측화가 50명이 사생하며 교환 전시를 하자고 합의했었는데…."
한쪽문이 닫히면 한쪽 문이 열린다. 공연과 전시는 무산됐지만 자연스럽게 재외동포들과 인연의 끈은 두껍게 쌓였다. 특히 지난해 재일조선인미술가인 허훈 화백이 치매를 앓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재외동포들의 염원을 풀어줘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그는 "재외동포들의 그림을 모은 평화미술관 건립"을 추진중이다. 올초 'K-art 유한회사'를 창립,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7년 건립이 목표다.
최근 만난 이철주 대표는 "남북한 정세로 좌지우지 되는 상황속에서 정작 우리는 동포예술가들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재외동포들은 고향의 그리움속에서 가장 소원이 고국에 돌아가 전시를 하고 싶다는 것인데, 1세대 동포작가들이 한을 안은채 세상을 뜨고 있다"는게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북한미술은 조선화라는 양식을 만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모조와 가필로 저평가되고 있다"며 "이벤트성이 아닌 이젠 북한미술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각오를 보였다.
"재외동포의 경우 체계적인 연구나 작품의 보존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거주 국가의 국공립미술관에 소장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것과는 별개로 우리 재외동포미술가들의 국내 전시와 작품 소장을 주로 하는 국제적 수준의 전문 미술관의 건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평화미술관 개관을 내년 목표로 잡은 이유가 있다. 2017년은 서양미술 도입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재일 조선인 미술가들의 최초의 공식 단체인 '재일조선인미술가협회' 창립 70주년이 되는 해다.
그간 사회주의 국가의 동포미술가 특히 총련계 미술가들은 이념적 문제 등으로 연구와 교류에서 비껴나 있었다. 이들이 알려지게 된 것은 1999년 광주시립미술관에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의 작품 기증이 계기가 되었다.
이철주 대표는 "당시 조양규, 송영옥, 전화황 등의 이름이 알려지게됐고, 딱 10년이 지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아리랑꽃씨'특별전으로 재일조선인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재러, 재중, 그리고 독립국가연합의 동포 작가들이 소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외동포,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건 부모가 이산가족이기도 하다. 그는 '피의 끌림'같다고 했다. 그간 만났던 재외동포작가들은 조국에 대한 염원이 강해 그를 사명감으로 이끌고 있다. "해외동포 미술가들의 국내 전시와 작품 소장을 주로 하는 국제적 수준의 전문 미술관으로 건립할겁니다"
"왜 그런 힘든 일을 하려고 하냐고 하는데, 문화는 정치가 할수 없는 일을 합니다. 평화미술관 건립은 제 꿈이었습니다." 공연기획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린시절 꿈은 화가였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재외 동포 작가들의 작품의 특징은 디아스포라 미술이 그렇듯이 조국에 대한 염원이 녹아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작가가 모국에서의 전시와 연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1세대 작가들의 작품 상당수가 전문적으로 보존 및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작품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화미술관 건립을 위해 연초 국내 설계 및 감리회사인 삼우CM과 업무 제휴를 했다. 평화미술관을 건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해외동포 상공인들의 기증 약속과 조성룡, 주명수 등의 러시아 동포작가들, 리용훈, 박일남 등의 재일 동포작가들의 성원이 이어지고 있다.
부지확보가 관건이다. 미술관 건립을 유치하겠다는 지자체의 러브콜도 잇따르지만 진행은 더디다. 최근 박물과 클러스트 사업을 추진중인 성북구에서 부지까지 제공했지만 성곽인근에 위치해 문화재 관련법에 저촉되어 결국 무산됐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진흥을 위해 공원 내 입주 가능시설로 미술관이 규정이 되었지만, 녹지 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추세 때문에 현실적으로 공원 내 입주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서울외 지역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장기 임대로 상설 전시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고 블록버스터 전시의 유치 시 지역 순회전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역 활성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 프로젝트가 있고, 최근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 등의 큰 성공은 평화미술관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는 "문화기획자는 정치적인 논리가 아닌, 예술품을 중간에서 만나게 하는 매개자"라며 " 재외동포들의 미술을 민족미술을 편입 복권시키고 담론화해 , 관객이 찾아올수 있는 전시장으로 키워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평화미술관은 미술을 통해 750만 해외 동포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전진기지가 될겁니다."
치매 앓던 재일 조선인 미술가 타계후 사명감
750만 동포예술가 네트워크 소장품 기증 이어
'민족미술로 연구·담론화 할것"현재 부지확보중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때 누구보다 더 숨죽인 사람이 있다. '남북한 문화교류는 정말 물건너 갔구나'하는 안타까움에 막막해졌다.
2007년 평양조선미술박물관 내한 전시를 합의까지 이끌어냈던 문화기획자 이철주씨(54)다. "결국 성사되지 못했죠. 연평해전 사건이 터지면서 그 전시는 무기한 잠정연기도 없이 사그라들고 말았습니다."
IT세상이 되면서 전 세계는 국경이 없어졌지만 남북한은 예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문화교류를 추진하는 일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북한의 문화'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북한의 설맞이 음악공연이 유튜브에 뜨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문화를 파악할뿐이지 직접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가 북한문화에 눈을 뜬 건 1999년 평양국제음악회를 기획하면서다. 지휘자 금난새가 이끄는 유라시안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 조수미,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방북해 펼칠 예정이었던 이 음악회는 무산되고 말았지만 이씨는 남북문화교류 사업을 시작하는 단초가됐다.
2005년 북한 유일의 해외예술단인 '금강산 가극단'내한공연을 제작했다.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호연을 펼쳤던 이 공연은 북의 음악과 춤을 남측이 제작, 유통해 남북문화교류 동제작의 시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북한문화교류사업은 쉽지않았다. 엎어지기 일쑤였다.
2007년 평양조선미술박물관 내한전시 합의와 '북녘의 명무-조선무용 50년'의 공연을 제작했지만 모두 열리지는 못했다. "평양조선미술박물관 내한전시는 수장고지원사업과 공동 연구의 결과물을 만들기로 했던 사업입니다. 대동강에서 남측의 화가 50명과 북측화가 50명이 사생하며 교환 전시를 하자고 합의했었는데…."
한쪽문이 닫히면 한쪽 문이 열린다. 공연과 전시는 무산됐지만 자연스럽게 재외동포들과 인연의 끈은 두껍게 쌓였다. 특히 지난해 재일조선인미술가인 허훈 화백이 치매를 앓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재외동포들의 염원을 풀어줘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그는 "재외동포들의 그림을 모은 평화미술관 건립"을 추진중이다. 올초 'K-art 유한회사'를 창립,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7년 건립이 목표다.
최근 만난 이철주 대표는 "남북한 정세로 좌지우지 되는 상황속에서 정작 우리는 동포예술가들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재외동포들은 고향의 그리움속에서 가장 소원이 고국에 돌아가 전시를 하고 싶다는 것인데, 1세대 동포작가들이 한을 안은채 세상을 뜨고 있다"는게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북한미술은 조선화라는 양식을 만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모조와 가필로 저평가되고 있다"며 "이벤트성이 아닌 이젠 북한미술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각오를 보였다.
"재외동포의 경우 체계적인 연구나 작품의 보존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거주 국가의 국공립미술관에 소장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것과는 별개로 우리 재외동포미술가들의 국내 전시와 작품 소장을 주로 하는 국제적 수준의 전문 미술관의 건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평화미술관 개관을 내년 목표로 잡은 이유가 있다. 2017년은 서양미술 도입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재일 조선인 미술가들의 최초의 공식 단체인 '재일조선인미술가협회' 창립 70주년이 되는 해다.
그간 사회주의 국가의 동포미술가 특히 총련계 미술가들은 이념적 문제 등으로 연구와 교류에서 비껴나 있었다. 이들이 알려지게 된 것은 1999년 광주시립미술관에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의 작품 기증이 계기가 되었다.
이철주 대표는 "당시 조양규, 송영옥, 전화황 등의 이름이 알려지게됐고, 딱 10년이 지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아리랑꽃씨'특별전으로 재일조선인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재러, 재중, 그리고 독립국가연합의 동포 작가들이 소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외동포,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건 부모가 이산가족이기도 하다. 그는 '피의 끌림'같다고 했다. 그간 만났던 재외동포작가들은 조국에 대한 염원이 강해 그를 사명감으로 이끌고 있다. "해외동포 미술가들의 국내 전시와 작품 소장을 주로 하는 국제적 수준의 전문 미술관으로 건립할겁니다"
"왜 그런 힘든 일을 하려고 하냐고 하는데, 문화는 정치가 할수 없는 일을 합니다. 평화미술관 건립은 제 꿈이었습니다." 공연기획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린시절 꿈은 화가였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재외 동포 작가들의 작품의 특징은 디아스포라 미술이 그렇듯이 조국에 대한 염원이 녹아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작가가 모국에서의 전시와 연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1세대 작가들의 작품 상당수가 전문적으로 보존 및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작품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화미술관 건립을 위해 연초 국내 설계 및 감리회사인 삼우CM과 업무 제휴를 했다. 평화미술관을 건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해외동포 상공인들의 기증 약속과 조성룡, 주명수 등의 러시아 동포작가들, 리용훈, 박일남 등의 재일 동포작가들의 성원이 이어지고 있다.
부지확보가 관건이다. 미술관 건립을 유치하겠다는 지자체의 러브콜도 잇따르지만 진행은 더디다. 최근 박물과 클러스트 사업을 추진중인 성북구에서 부지까지 제공했지만 성곽인근에 위치해 문화재 관련법에 저촉되어 결국 무산됐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진흥을 위해 공원 내 입주 가능시설로 미술관이 규정이 되었지만, 녹지 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추세 때문에 현실적으로 공원 내 입주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서울외 지역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장기 임대로 상설 전시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고 블록버스터 전시의 유치 시 지역 순회전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역 활성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 프로젝트가 있고, 최근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 등의 큰 성공은 평화미술관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는 "문화기획자는 정치적인 논리가 아닌, 예술품을 중간에서 만나게 하는 매개자"라며 " 재외동포들의 미술을 민족미술을 편입 복권시키고 담론화해 , 관객이 찾아올수 있는 전시장으로 키워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평화미술관은 미술을 통해 750만 해외 동포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전진기지가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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