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썰렁한 유머 속 긍정의 反轉 담겼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6.07.08 00:23

곰의 아내

연극‘곰의 아내’의 김호정(오른쪽·곰의 아내 역)과 김성현(산장지기 역).
연극‘곰의 아내’의 김호정(오른쪽·곰의 아내 역)과 김성현(산장지기 역). /서울문화재단
어린 시절 숲에서 길을 잃고 곰을 만난 여자(김호정)는 동굴 속에서 곰과 살며 아이까지 낳는다. 사냥꾼이 여자를 발견해 구출하지만 아이는 죽고 곰 남편과는 생이별하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를 묶은 채 그 앞에서 굿을 벌이는데, 무당은 "넌 꼭 사람이 돼야 한다"며 뭔가를 억지로 여자에게 먹인다. '쑥과 마늘'이다. 돌연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격렬하게 춤을 추는데, 그건 샘 더 샘 & 더 파라오스의 1960년대 팝송 '울리 불리'다.

연극 '곰의 아내'에서 이렇게 일견 황당해 보이는 전개를 천연덕스럽게 무대 위에 구사하는 연출가는 최근 '조씨고아' '한국인의 초상' 등을 내놓았던 스타 연출가 고선웅이다. 이번엔 지난해 벽산희곡상 수상작인 고연옥의 '처(妻)의 감각'을 원작으로 삼아 본인이 많이 고친 대본을 무대에 올렸다.

사회 적응에 실패해 숲에 버려진 남자(안성헌)가 곰의 아내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다시 만난 그들은 가정을 꾸려 평범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남자는 처자식 부양에 지쳐가고 여자는 '곰보다 오히려 짐승 같은' 인간들의 악한 본성에 환멸을 느낀다. 남자는 "인간이 되기 위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 떠난다"며 종적을 감추고, 여자는 숲으로 돌아가려 한다.

고연옥의 추상적이고 우울한 극본은 고선웅의 생동감 넘치는 연출과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작품은 '짐승의 세계―자연―순수'와 '인간의 세계―작위―위선'을 상징적으로 대립시켜 사회를 비판한다. 그러나 은유로선 어딘가 진부하고 풍자로선 생뚱맞으며 신화적 상상력이라기엔 공허해 보이는데, 고선웅 연극으로선 희귀하게도 종종 지루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음 장면을 짐작할 수 없는 돌발적 진행, 썰렁한 유머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 속에 담긴 연민의 감정 등 고선웅 작품 특유의 매력은 여전하다. "도망치지도 않고, 껍데기는 버리겠다"는 주인공의 대사에선 비관이 긍정으로 바뀌는 반전(反轉)이 일어난다. '곰'이 그저 상징이겠거니 생각했던 관객에게 마지막 장면은 꽤 충격적이다.

▷17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공연 시간 85분, (02)758-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