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絃으로 아픈 과거 전할 수 있다면 내 할 일 다 한 것"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6.07.07 03:00

[유태계 바이올린 巨匠 슐로모 민츠]

美음악회서 유태인 희생자의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며 눈물
경기필하모닉과 협주 위해 방한… 지난달엔 제자 윤동환과 무대

지난해 12월 미국 클리블랜드의 한 음악회. 유태계 바이올린 거장 슐로모 민츠(59)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민츠가 그날 연주한 악기는 특별했다. 2차 대전 당시 히틀러 치하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이 가스실로 끌려가기 직전까지 품에 지니고 있던 바이올린이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태인들의 바이올린을 복원해서 당시 소리를 들려주는 음악회였어요. 사람들이 물어봐요. 왜 음악가 중에는 유독 유태인이 많고, 그중에서도 바이올린 연주자가 많으냐고.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죠. '고달픈 삶에서 음악은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기쁨이었고, 특히 바이올린은 언제든 집어 들고 잽싸게 도망갈 수 있는 악기니까요'라고요(웃음)."


지난주 서울 한양대 음악관에서 만난 민츠는 "우리 가족도 홀로코스트로 희생됐다. 바이올린을 통해 과거의 아픈 유산을 후세에 반면교사로 전해줄 수 있다면 내 할 일은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담백한 연주 스타일처럼 민츠는 군더더기 없이 할 말만 간결하게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슐로모 민츠.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가족인 그에게 바이올린은 과거의 아픈 유산을 후세에 교훈으로 전해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슐로모 민츠.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가족인 그에게 바이올린은 과거의 아픈 유산을 후세에 교훈으로 전해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경기도문화의전당
민츠가 '신동'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68년 열한 살 때였다. 갑작스레 병이 난 이츠하크 펄먼을 대신해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멋지게 연주해내 스타로 떠올랐다. 5년 뒤 아이작 스턴의 지원을 받아 미국 카네기 홀에서 데뷔 무대를 치렀다. 당시 그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 스타 뺨칠 정도였다. 이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세르주 첼리비다케, 유진 오르먼디 같은 세계적 지휘자들과 연주하며 승승장구했다. 1980년 도이체 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하고 발표한 명(名)음반만 한 아름이다. 특히 아이작 스턴, 이츠하크 펄먼, 핀커스 주커만과 함께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는 후배 연주자들 사이에서 전설로 떠돈다.

50년간 한결같이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민츠가 한국에 온 건 오는 9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성시연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다. 올 들어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등 저명 연주자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선보였던 경기도문화의전당이 마련한 자리다.

지난달 26일 인천공항 입국장을 통과하는데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팔방 터졌다. 그의 것이 아니었다. 같은 시각 해외에서 돌아온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을 향한 취재 열기였다. "한땐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지금이 좋아요. 어린 학생들 잘 키우는 데 신경 많이 쓰고 있죠. 식물 기르는 것과 같아서 물 제때 줘야 하고 햇빛도 잘 들어야 해요.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에요."

2009년 스위스 시옹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난 슐로모 민츠와 윤동환은 정식 사제 관계는 아니지만 끈끈한 사이를 이어오고 있다.
2009년 스위스 시옹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난 슐로모 민츠와 윤동환은 정식 사제 관계는 아니지만 끈끈한 사이를 이어오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이번 방한 때 제자와 함께하는 음악회를 추가한 것도 바로 그 때문. 지난달 29~30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와 인천종합문예회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윤동환과 음악회를 연 민츠는 "호기심을 못 참고 계속 질문하는 동환이가 귀엽고, 나는 답해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세 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쥔 민츠는 56년 동안 바이올린을 켰다. 그중 50년은 무대에 올라 남들 앞에서 연주했다. "사람들은 나를 '신동'이라 치켜세웠지만 재능을 키워나가는 건 힘든 일이었어요. 하지만 삶의 모든 순간 나는 무대에 있었고 바이올린을 연주했죠. 음악가에겐 관객의 마음에 불을 지펴 따뜻하게 감싸줄 의무가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는 "말은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기 쉽지 않지만 악기가 토해내는 소리는 모든 이에게 깊이 전달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슐로모 민츠 초청 공연=9일 오후 5시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031)230-3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