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6.21 01:29
[리움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받은 영상 작가 박경근]
해외생활 중 아버지 권유로 입대… 집단적 남성 문화서 받은 충격, 작품 '군대:60만의 초상'에 녹여
"거친데 쉽게 녹스는 鐵 닮은 한국 남자의 삶, 軍 겪고 이해"
육사 출신 외교관 아버지와 외국에서 자란 아들의 대화는 늘 평행선이었다. 대화하자 해놓고 일장 연설만 하는 아버지를 아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화를 포기하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너는 외교관의 아들이고, 나는 농군의 자식이다.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동생들 학비 벌려고 목숨을 담보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다. 아버지의 삶, 한국 남성의 감정 구조가 궁금해졌다. 그게 나를 아는 길이기에.
지난 13일 올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상 작가 박경근(38)의 얘기다.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은 리움이 2014년부터 국제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신진 작가를 선정해 주는 상으로, 스타 작가의 등용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3일 올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상 작가 박경근(38)의 얘기다.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은 리움이 2014년부터 국제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신진 작가를 선정해 주는 상으로, 스타 작가의 등용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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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때부터 해외에서 지낸 작가는 미국 UCLA에서 디자인과 미디어아트를, 칼아츠(CalArts)에서 영화·비디오를 공부했다. 토박이 한국인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단면을 포착한 영상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NETPAC상과 아시아티카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타기도 했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 '군대: 60만의 초상'(2016)은 "한국 남자라면 반드시 군대는 가야 한다"는 아버지 뜻에 따라 반(半)외국인이었던 그가 입대하면서 겪은 문화 충격을 녹인 작품이다. "1970년대 페미니즘의 중심에 있었던 미국 서부의 진보적 예술학교에 다녔어요. 여학생들이 옷을 훌훌 벗고 캠퍼스 누비는 학교에 다니다가 갑자기 보수적 남성 문화의 최전선이라는 군대에 뚝 떨어졌어요. 어찔했죠." 구타하는 상사 보고 충격받았던 자신이 분대장 됐을 때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부하에게 욕설 퍼붓게 되는 순간, 군대에서 제일 무서운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란 걸 깨달았다. "불편한 경험이었지만 나보다 조직이 앞서는 한국 사회, 가족 위해 목숨 걸었던 아버지의 삶을 군대에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국방부 협조를 받아 논산훈련소, 국방부 의장대대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전투복을 맞추기 위해 하얀 수영모 쓰고 3D로 사진 촬영하는 장면, 예식 치르듯 군복 바짓단에 고무링 끼워 군화 신는 모습, 걸그룹 CCM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장병…. 군대 풍경이 클로즈업돼 히치콕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매혹적인 영상으로 펼쳐진다. 그는 "한때는 나도 저 안에 있었다. 지금 밖에 있다고 점잔 빼고 우스꽝스럽게 바라보는 건 모순이다. 군대 현실 고발이라기보다는, 우리 관점은 주위에 영향받으며 늘 변하기 마련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간 여성,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 부조리를 다룬 예술 작품은 많았지만 '한국 남자'라는 틀에 기댄 작품은 적었다. 작가는 "내가 사는 한국 땅은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투박해졌을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해 추적해 봤더니 전쟁과 근대화·산업화 과정이 있었고, 그 속에서 나라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칠게 길들여진 한국 남성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 남성의 원형을 찾는 여정은 이전 작품부터 이어진다. 청계천 철물 공장의 풍경을 다룬 '청계천 메들리'(2010),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을 조선소의 배와 연결해 산업 현장의 장엄함을 다룬 '철의 꿈'(2014) 등이다. 두 작품에선 남성성을 보여주는 매개로 철(鐵)을 선택했다. "철이라는 게 거칠고 딱딱하고 차가운데 금은동보다 훨씬 잘 녹슬어요. 거친 척하지만 실은 쉽게 상처받는 한국 남자와 닮았어요."
작가는 "이번 수상으로 '도대체 뭐하고 사느냐' 묻는 아버지께 설명해드릴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상 탔다고 말씀드리니 아버지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세요. 신문 귀퉁이에 실린 자그만 기사까지 오려 만든 제 기사 스크랩북이었어요." 철을 닮은 한국 아버지가 거기 있었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 '군대: 60만의 초상'(2016)은 "한국 남자라면 반드시 군대는 가야 한다"는 아버지 뜻에 따라 반(半)외국인이었던 그가 입대하면서 겪은 문화 충격을 녹인 작품이다. "1970년대 페미니즘의 중심에 있었던 미국 서부의 진보적 예술학교에 다녔어요. 여학생들이 옷을 훌훌 벗고 캠퍼스 누비는 학교에 다니다가 갑자기 보수적 남성 문화의 최전선이라는 군대에 뚝 떨어졌어요. 어찔했죠." 구타하는 상사 보고 충격받았던 자신이 분대장 됐을 때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부하에게 욕설 퍼붓게 되는 순간, 군대에서 제일 무서운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란 걸 깨달았다. "불편한 경험이었지만 나보다 조직이 앞서는 한국 사회, 가족 위해 목숨 걸었던 아버지의 삶을 군대에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국방부 협조를 받아 논산훈련소, 국방부 의장대대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전투복을 맞추기 위해 하얀 수영모 쓰고 3D로 사진 촬영하는 장면, 예식 치르듯 군복 바짓단에 고무링 끼워 군화 신는 모습, 걸그룹 CCM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장병…. 군대 풍경이 클로즈업돼 히치콕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매혹적인 영상으로 펼쳐진다. 그는 "한때는 나도 저 안에 있었다. 지금 밖에 있다고 점잔 빼고 우스꽝스럽게 바라보는 건 모순이다. 군대 현실 고발이라기보다는, 우리 관점은 주위에 영향받으며 늘 변하기 마련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간 여성,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 부조리를 다룬 예술 작품은 많았지만 '한국 남자'라는 틀에 기댄 작품은 적었다. 작가는 "내가 사는 한국 땅은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투박해졌을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해 추적해 봤더니 전쟁과 근대화·산업화 과정이 있었고, 그 속에서 나라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칠게 길들여진 한국 남성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 남성의 원형을 찾는 여정은 이전 작품부터 이어진다. 청계천 철물 공장의 풍경을 다룬 '청계천 메들리'(2010),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을 조선소의 배와 연결해 산업 현장의 장엄함을 다룬 '철의 꿈'(2014) 등이다. 두 작품에선 남성성을 보여주는 매개로 철(鐵)을 선택했다. "철이라는 게 거칠고 딱딱하고 차가운데 금은동보다 훨씬 잘 녹슬어요. 거친 척하지만 실은 쉽게 상처받는 한국 남자와 닮았어요."
작가는 "이번 수상으로 '도대체 뭐하고 사느냐' 묻는 아버지께 설명해드릴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상 탔다고 말씀드리니 아버지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세요. 신문 귀퉁이에 실린 자그만 기사까지 오려 만든 제 기사 스크랩북이었어요." 철을 닮은 한국 아버지가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