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널려 있는 한국은 예술가의 천국"

  • 김미리 기자

입력 : 2016.06.14 03:00

- 아트바젤 참가하는 영상작가 박찬경
南北정상회담 다룬 '비행' 출품
무녀·냉전 등 묵직한 주제로 작업 "兄 박찬욱 감독, 내 작품 첫 고객"

서울 청운동 작업실에서 만난 박찬경이 우리 미술 풍토를 꼬집었다.
“서양 미술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우리 예술에는 주인의식을 갖지 않아요.”서울 청운동 작업실에서 만난 박찬경이 우리 미술 풍토를 꼬집었다. /장련성 객원기자
"한국만큼 예술에 쓸 수 있는 사회적 소재가 널려 있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그런데 미술대학에선 자꾸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만 가르쳐요. 세상에 관심 갖기보단 자신에게만 몰입하게 하지요. 사회 비평적 작업이 기반이 약할 수밖에요."

서울 청운동 청운초등학교 옆 다세대주택 지하 작업실에서 미술가 박찬경(51)이 책 수천 권에 둘러싸인 채 말했다.

박찬경은 분단과 냉전('파워통로', '비행'), 토착 종교('신도안'), 무녀('만신') 등 우리 근현대사와 전통 문화를 다뤄온 대표적 영상 설치 미술가다. 미술논객으로 미술계 내부 비판도 서슴지 않아 젊은 작가들에게 역할 모델로 손꼽히는 작가기도 하다.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미국 칼아츠(CalArts)에서 사진을 배웠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동생이다. 형제는 '파킹 찬스(PARKing CHANce·'박찬'이라는 형제 이름의 겹치는 부분을 활용한 이름. '틈 있으면 주차하듯 기회 나면 함께한다'는 뜻)'란 이름으로 협업한다. 둘이 아이폰으로 만든 첫 단편영화 '파란만장'은 2011년 베를린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황금곰상을 받기도 했다.

무거운 정치적 주제를 다루기에 박찬경은 판매가 목적인 '미술 시장'보다는 전시에 중점 둔 '미술관'에서 사랑받는 작가다. 그런 그가 16~19일(13~15일 사전 공개)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제47회 아트 바젤'의 영화 섹션 '필름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과 윤이상의 곡을 결합해 만든 영상작품 '비행'을 출품한다. 앞서 지난달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티나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국내외 통틀어 상업화랑 두 번째 전시다.

2009년 헤이리 갤러리소소 개인전이 첫 상업화랑 전시였다. 당시 "워낙 안 팔려 응원하는 의미에서 작품을 산" 첫 고객이 형이었다. "나이 오십에 아트 페어 나가는 게 뭐 자랑이겠어요. 나같이 안 팔리는 작업 하는 사람도 화랑과 함께할 수 있고 유명 아트 페어도 나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판매하고는 거리 먼 작가들에게 작은 위안 됐으면 하지요(웃음)."

요즘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 소설을 읽는다. "본격 상업영화를 하고 싶어 구성에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장르 소설과 친해지려 한다"고 했다. "전시는 친구와 친척만 본다는 작가들 우스개가 있어요. 그만큼 일반 관객의 반응이 적다는 얘기죠. 갑갑하죠. 상업영화를 하려는 이유요? 많은 대중의 피드백을 한번 경험하고 싶어요. 형은 되레 흥행 부담 없이 예술 하고 싶다는데." 그는 "'귀신' '무당'을 주제로 한 상업영화를 내년쯤에 개봉하는 게 목표인데 '곡성'에 선수를 뺏겼다"며 웃었다.

박찬경은 천시되어온 전통을 현대 언어로 되살리는 데 관심이 많다. 대표적인 게 무속이다. "'쉬리', 'JSA', '태극기 휘날리며' 등 '분단'이란 주제가 한국 영화 산업의 규모를 확 키웠어요. 금기시되어온 주제였기에 궁금한 얘기가 많았기 때문이죠. '무속'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