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살 맞댄 7년… 그 짧은 행복, 예술의 연료가 되다

  • 김미리 기자

입력 : 2016.06.03 00:31

[이중섭, 백년의 신화] [오늘부터 만나게 될 작품] [中]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95·한국명 이남덕) 여사가 사는 도쿄 세타가야 낡은 집 현관엔 작은 판화가 걸려 있다. 애처롭게 포옹한 채 죽을힘을 다해 입맞춤하는 암탉과 수탉 한 쌍을 그린 그림이다. 남편이 남긴 많은 그림 가운데 아내는 이 그림을 수호신처럼 붙여 놨다. "제가 닭띠예요. 그이 모든 그림이 좋지만…." 아흔다섯 아내가 수줍게 웃는다. 한 쌍의 닭은 이중섭과 아내의 슬픈 초상이다.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이중섭은 쪽방에 홀로 앉아 가족과의 간절한 재회를 그림에 담았다.

이중섭의 대표작은 '소'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평생 그림의 주제이자 동력으로 삼은 건 '가족'이었다. 3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에 나오는 200여 점의 작품에서도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이 가장 많다. 1945년 결혼해 1952년 생이별하기까지 이중섭이 가족과 살 맞대고 산 시간은 고작 7년이다. 그러나 그는 7년의 짧은 행복을 무엇보다 강력한 예술의 연료로 삼았다. 가족이 떠나고 1956년 세상을 뜨기까지 4년간 가족 향한 처절한 그리움을 담아 명작을 토해냈다.

이중섭의 남다른 가족 사랑을 보여주는 건 가족들에게 보낸 200여 통의 편지다. 올망졸망 귀여운 그림 섞어 보낸 그림 편지에선 '아빠 이중섭'의 다정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세계적으로 가족에게 보낸 그림 편지를 이렇게 많이 남긴 화가는 유례가 드물다. 편지지 테두리를 '뽀뽀(ポポ)'라는 깨알 같은 글씨로 휘감아 애틋한 사랑을 전하고, 의지 약해질 때면 아내 향해 굳은 다짐을 한다. "화공 이중섭은 반드시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씨를 행복한 천사로 하여 드높고 아름답고 끝없이 넓게 이 세상을 돋을새김해 보이겠어요." "태현, 태성, 둘이서 사이좋게 아빠를 기다려주세요. 아빠가 가면 자전거 사줄게요." 두 아들에게 약속하지만, 재회의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진다. 왜관에서 얹혀살던 친구 구상 집에서 자전거 타는 구상 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자신을 그린 그림 '시인 구상의 가족'엔 부러움과 그리움이 뒤엉켜 있다.

달구지에 가족 싣고 남쪽 나라로 떠나는 모습을 상상한 '길 떠나는 가족', 가족이 비둘기와 뒤엉켜 행복을 노래하는 '가족과 비둘기', 두 아들과 장난치던 때를 회상하며 그린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 등에서도 이중섭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진다.

ㅡ 2016. 6. 3∼2016. 10. 3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입장료: 성인 7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 4000원

▲문의: (02)522-3342, www.jungseo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