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옛날 당구장, 내부는 미술관… 편집숍으로 바뀐 봉제공장

  • 강정미 기자

입력 : 2016.05.31 16:07

한국 아닌 것 같아요, 이색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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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쪽 사진) 목욕탕을 사진 촬영장으로 바꾼 서울 성수동 싸우나 스튜디오. (아랫쪽 사진) 서울 합정동 신발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는 앤트러사이트 합정점의 카운터가 됐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계동 골목길 터줏대감이자 TV드라마 단골 촬영지였던 '중앙탕'은 작년 5월 선글라스 전문 브랜드 '젠틀몬스터 북촌계동 플래그십스토어'(070-4895-1287)로 변신했다. 1969년부터 목욕탕으로 사용돼온 중앙탕 일부분을 보존하면서 'Bathhouse'라는 이름의 쇼룸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목욕탕 간판이 그대로 달린 매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진열된 선글라스를 보고 나서야 이곳의 정체를 알아챈다. 중앙탕 리모델링을 담당한 아티스트그룹 패브리커 김성조(34) 대표는 "탕의 원형은 그대로 놔두고 타일의 흔적을 살려서 이곳이 목욕탕이었다는 것을 최대한 살려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목욕탕을 활용한 사진 스튜디오도 있다. 성수동 '싸우나 스튜디오'(010-8605-6326) 옥상에는 아직도 목욕탕 굴뚝이 남아 있다. 역삼동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김성재(41)씨는 과거 목욕탕이었다가 창고, 구두 공장으로 쓰였던 이 공간을 스튜디오로 꾸미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하에 암실을 만들어 오는 7월부터 흑백사진 강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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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쪽 사진) 선글라스 매장이 된 목욕탕. (아랫쪽 사진) 편집숍이 된 봉제공장, su;py 매장. /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02-3785-0667)은 한남동 골목의 오래된 당구장을 전시장으로 바꾼 미술관이다. 당구장 이름을 그대로 둬 이름만 보면 미술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매년 다양한 분야의 젊은 크리에이터들을 발굴해 전시하는 실험공간이다. 이달 18일부터 8월 7일까지 그래픽 디자인·인쇄·출판스튜디오인 코우너스의 전시가 열린다.

한국 아닌 것 같아요, 이색 문화공간
당구장이 미술관으로. / 구슬모아당구장 제공
성수동 대림창고 맞은편 인쇄공장 2층에 자리 잡은 'su;py'(02-6406-3388)는 오래된 봉제공장을 개성 있는 편집숍으로 꾸민 공간이다. 자체 제작하는 브랜드 'su;py' 제품과 함께 이집트 핸드백 디자이너 브랜드 'ZAAM', 프랑스 액세서리 브랜드 'TARATATA' 등 80여 개 브랜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뉴욕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계창(34) 대표는 기존의 틀과 그걸 깨는 새로움이 공존하는 브랜드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찾던 중 이 봉제공장을 발견했다. "처음엔 여기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막막했는데 천장 구조를 뜯고 보니 옛 공장의 골조가 남아 있어서 그걸 그대로 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묘하다' '재미있다' '런던스럽다' '신주쿠 같다' '브루클린에 온 듯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대학생 이주은(24)씨는 "평범한 외관과 달리 대반전이 있는 곳"이라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씨는 "공장에서 런웨이쇼를 하고 발전소가 박물관이 되며 공중목욕탕이 숍으로 탈바꿈한다는 발상 자체가 기발하다"며 "개성 없고 돈만 들인 공간보다 삶의 흔적과 묘미가 녹아 있는 공간들에 힙스터들이 주목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