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실린 연주 vs 오차 없는 연주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6.05.17 03:00

인간과 로봇의 피아노 배틀… 성남아트센터에서 20일까지

픽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 월―E를 빼닮은 로봇이 무대로 미끄러져 나왔다. 53개나 되는 손가락으로 클래식 작곡가 143명의 녹턴(야상곡) 827곡을 메모리에 품은 '피아노 치는 로봇' 테오 트로니코였다. 키 1m의 테오는 무대 위에 마주 놓인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 중 한 대 앞에 서서 쇼팽 녹턴 2번을 쳤다.

16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인간 vs(대) 로봇 피아노 배틀'이 펼쳐졌다. 태어난 지 갓 4개월 된 테오와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였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후 AI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테오는 이날 첫 연주를 끝내지 못했다. 프로세다가 "아이, 그만! 음색이 너무 밋밋하잖아" 하면서 연주를 중단시켰기 때문. 2013년 데카에서 멘델스존 피아노 전곡을 녹음하며 런던 필 등과 협연한 그는 맞은편 피아노에 앉아 테오와 전혀 다른 녹턴을 연주해냈다.

16일부터 성남아트센터에서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을 펼치는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왼쪽)와 로봇 피아노 테오 트로니코.
16일부터 성남아트센터에서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을 펼치는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왼쪽)와 로봇 피아노 테오 트로니코. /성남문화재단 제공
손끝으로 부드럽게 강약을 조절하는 그의 연주는 차분하고 우아했다.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과 스카를라티 소나타, 쇼팽 연습곡 2번에서도 둘의 차이는 확연했다. 테오의 연주는 정확했지만 무미건조했다. 반면 프로세다는 역동적이면서 사람의 마음을 건드렸다. 테오가 멘델스존 '물레의 노래'를 프로세다가 친 것과 똑같이 연주해냈지만 어린이 청중들이 "프로세다!"를 외치며 박수를 보낸 건 그 때문이었다.

테오는 아마추어 엔지니어인 마테오 수지가 2007년 처음 개발해 올 초 4탄까지 제작됐다. 전자음악 파일을 로봇에 정교하게 집어넣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다 피아노 로봇을 생각해냈단다. "인간을 이기려고 만든 게 아니라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리게티 등 인간이 연주하기 어려운 곡을 치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5년 전 유튜브에서 테오 시리즈를 처음 보고 '이거다!' 했다는 프로세다는 "기계가 재생하는 전자음악에 익숙해지면 미묘한 것의 차이를 짚어내지 못한다"며 "다이내믹과 강약의 변화 등 클래식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지면 나와 남의 기분을 알 수 있고 나아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주가 아니라 '아팠구나' '슬펐구나' 공감해줄 수 있는 음악이란 얘기다.

성남문화재단은 성남시에 거주하는 초등 6년생들의 음악 호기심을 길러주기 위해 오는 20일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이 음악회를 연다.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20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031)783-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