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에 웃는 남자… 다 커서도 앤가봐요"

  • 변희원 기자

입력 : 2016.05.10 01:03

[한국 1세대 토이아티스트 쿨레인]

취미로 시작… 나이키 의뢰 받아 세계 첫 NBA피규어 만들며 유명
최근 '아트토이컬처' 展에도 참여 "요 작은 게 누군가에겐 위안 주죠"

90년대 초, 경상북도 안동에서 대학을 다닌 공학도 이찬우(45)씨는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1988)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두 시간짜리 작품이 10분처럼 느껴졌다. 컴퓨터도 제대로 켤 줄 모르고, 그림도 못 그리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아키라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며 무작정 서울에 올라갔다. 1998년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또다시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에 푹 빠졌다. 40번 정도 영화를 보고, 해외에서 만든 캐릭터 피규어(등장인물 등의 모형 장난감)를 사모았다. 좋아하는 조연 캐릭터의 피규어를 구하지 못해서 아쉬웠을 때, 그는 자신이 컴퓨터로 하는 3D 모델링(가상의 공간에서 입체 형상을 만드는 것) 작업을 떠올렸다. '컴퓨터로 그릴 수 있다면 손으로도 만들 수 있을 텐데'. 한국 '아트 토이'의 시작이었다.

아트 토이.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다. 어른들이 감상하고 모으는 예술품이다.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가나아트센터와 아트벤처스가 주최한 '아트 토이 컬처 2016'에는 8만여명이 다녀갔다. 작년과 재작년의 관람객 수를 더한 것과 맞먹는 수치다. 장난감을 수집품이나 예술품으로 보는 이가 그만큼 많아졌단 얘기다. 토이를 만드는 이도 자연스레 예술가 대접을 받는다. 국내 1세대 장난감 예술가인 쿨레인이 올해 전시에 참여했다. '쿨레인'은 그의 이름 '찬우'를 영어식으로 바꿔 부른 별명이다.

지난달 29일 장난감 예술가 쿨레인(본명 이찬우)이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작업실에 앉아 있다. 그의 머리 위 작은 선반에 쭉 늘어선 것이 모두 엄지손가락만 한 나이키 운동화 피규어다. 지금까지 수백 켤레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달 29일 장난감 예술가 쿨레인(본명 이찬우)이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작업실에 앉아 있다. 그의 머리 위 작은 선반에 쭉 늘어선 것이 모두 엄지손가락만 한 나이키 운동화 피규어다. 지금까지 수백 켤레를 만들었다고 한다. /장련성 객원기자

쿨레인은 "피규어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 국내에는 관련 정보나 재료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트 토이가 먼저 발달한 홍콩 아티스트의 작품이나 해외 피규어들을 참고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3년에 걸쳐 블로그에 소개했다. 해외의 피규어, 아트 토이를 사모으던 이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기로 한 쿨레인은 춤추는 한국의 비보이들을 모델로 한 피규어도 만들었다. 2주에 걸쳐 하나 만들어 70만원에 팔면 손에 쥐는 것은 30만~40만원이었다. "이걸로 밥벌이를 할 수 없으니 취미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이키에서 연락이 왔어요. 운동화 피규어 전시를 제안하길래, 원래 하던 3D 애니메이션 작업을 당장 그만뒀죠."

나이키 전시를 위해 그는 4개월 동안 엄지손가락만 한 운동화를 100켤레 넘게 만들었다. 운동화 끈이나 로고까지 정교하게 구현하는 작업이었다. 한 켤레를 만드는 데 적게는 하루, 많게는 사나흘이 걸렸다. 이 작업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세계적인 토이 아티스트로 인정을 받았다. 그후 세계 최초로 NBA(미국프로농구)의 의뢰로 유명 선수들의 피규어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리복과 제작한 농구 선수 앨런 아이버슨의 피규어를 비롯해 레드불, 반스, 컨버스 등 해외 기업들과 협업한 작품들이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독보적인 토이아티스트다.

쿨레인 작품의 가격은 크기나 종류에 따라 3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다양하다. 수십만원짜리는 주문을 받아 생산한다. 해외 주문이 많은 편이고, 구매자 대부분은 30대 이상 직장인이나 다른 장르의 예술가다.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그의 대표적인 캐릭터 '던키즈'. 나이키에 의뢰받은 작업을 하면서 만든 원숭이 캐릭터다. 농구를 좋아해서 농구를 잘할 것 같은 활동적인 동물을 생각했단다. 그는 "예전부터 농구, 운동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 상상하는 것을 손끝으로 만들어낸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게다가 이걸 모으고 감상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쿨레인의 작품을 주문하는 구매자는 다 남성이다. 여성 구매자의 경우는 남자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남자들만 이걸 사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다 커서도 여전히 애라서 그런가요? 장난감이든, 예술품이든, 어른이든, 애든 상관없어요. 요 작은 걸로 잠시 위안이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