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土種' 취지는 좋았으나… 뒷맛 아쉬운 체코판 인어공주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6.05.02 01:28

오페라 '루살카'

언제나 처음은 어렵다. 지난 28일부터 나흘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오페라 '루살카'는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운 무대였다.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처음 선보인 신작. 연출을 맡은 김학민 단장을 비롯해 성악가들과 안무 김용걸, 무대 박동우, 의상 조문수, 조명 구윤영까지 국내 제작진만으로 차려낸 무대의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토종'을 고집하다 뛰어난 품질의 공연을 볼 관객의 권리를 방해한다면, 이건 또 다른 문제다.

호숫가로 놀러 온 인간 왕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물의 요정 루살카(소프라노 서선영)는 달을 보며 노래한다. “꿈속에서나마 나를 기억해달라”고.
호숫가로 놀러 온 인간 왕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물의 요정 루살카(소프라노 서선영)는 달을 보며 노래한다. “꿈속에서나마 나를 기억해달라”고. /국립오페라단 제공
물의 정령 루살카 역의 소프라노 서선영은 탁월했다. 낮고 조용한 읊조림으로 왕자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그이에게 말해 주세요, 은빛 달님. 내 두 팔이 그를 안고 있으니, 잠시 잠깐이라도 꿈속에서나마 나를 기억해달라고요"라며 노래하는 데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순수한 설렘부터 사랑이 깨지는 슬픔, 왕자를 죽음의 키스로 용서하는 대목까지 서선영은 복잡다단한 감정을 풍성한 성량에 담아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며 낯선 오페라를 주도해갔다.

마녀 예지바바(메조 소프라노 양송미)는 카리스마를 뿜어냈지만, 테너 권재희가 노래한 왕자는 존재감이 약했다. 미성(美聲)이지만 오케스트라 반주에도 묻히는 성량이 아쉬웠다. 욕정이 난무하는 인간 세상을 그린다며 반라의 무용수들이 파티를 펼친 2막은 민망했다. 예술과 외설은 한끝 차이라지만, '국립(國立)'다운 품격이 그리웠다.

3막이 좋았다. 잿빛 조명 아래 말라비틀어진 나무만 덩그러니 남은 무대가 오히려 시원했다. 루살카가 왕자를 용서하며 그에게 키스하는 장면에서 실제 물줄기가 쏟아졌다. 텁텁하던 입맛이 촉촉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체코판 인어공주'에 너무 많은 걸 단박에 담으려 한 점이 안타까웠다. 좀 더 단순했어도, 좀 더 간단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