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모타 극장장 " '마담 옹' 예술적 힘 대단, 한국 창극 새 발견"

  • 뉴시스

입력 : 2016.04.18 09:54

프랑스 파리의 시청 인근에 위치한 테아트르 드 라 빌은 유럽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주목하는 공연장이다. 세계의 다양한 공연 장르를 품는 이곳은 가장 뜨겁거나 최신의 공연을 선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14일 밤(현지시간) '마담 옹'이라는 제목으로 현지 초연한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연출 고선웅)의 성공이 주목 받는 이유다. 창극이 개런티를 받고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에서 공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본격적인 유럽 진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테아트르 드 라 빌의 극장장이자 파리예술감독의 에마뉘엘 드마르시 모타(46)의 감각이 확인된 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2012년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는 등 프랑스 공연계의 거물로 자리매김한 그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에너지와 미학에 반해 테아트르 드 라 빌의 '2015~2016' 시즌 프로그램으로 이 작품을 택했다.

첫 날 공연 개막 직전 극장에서 만난 그는 "파리의 관객들이 한국의 창극을 하루 빨리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내심이 부족했다"고 웃었다. 테아트르 드 라 빌은 1862년 개관했다. 오페라 중심의 국립극장으로 운영되다 지난 1968년 내부 리노베이션을 거쳐 파리시립극장이라는 뜻의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됐다. 귀족주의를 대표하는 발코니 등을 없애고 시민 계층들이 볼 수 있는 극장으로 거듭났다.

연간 평균 약 400개 공연이 올라 무려 30만 관객이 찾는다. 현대 공연예술인에게는 꿈의 무대라는 명성에 걸맞은 수준 높은 작품들을 선보여 마니아층이 구축됐다. 피나 바우쉬, 얀 파브르를 비롯한 세계적인 현대무용가들이 초연작품을 선보인, 공연계의 성지로 통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만큼 주로 찾는 관객들의 수준도 높다.

모타 극장장은 "테아트르 드 라 빌은 지난 40년 동안 연극 뿐 아니라 무용, 음악까지 폭 넓게 다양한 장르르 소개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창극을 보러 오는 관객들 모두 열려 있고 호기심이 많다. 새로운 것을 경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실제 이날 1000석이 매진된 객석에서는 소리에 호응하는 추임새인 "얼씨구"가 몇차례 씩 터져나오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나왔다. 17일까지 총 4차례 공연하는데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모타 극장장은 "포르투칼과 독일뿐 아니라 미국 등지의 최고 컴퍼니와 상호 교류를 해온 만큼 오늘 창극 공연은 유럽 관객과 처음 만나는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작품의 에너지와 미학에 끌려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는 그는 김지숙, 이소연 등 배우들의 수준과 함께 "음악과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힘이 대단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이 작품에 대해 무딘 반응을 보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어는 무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언어"라며 "낯설고 이국적인데 그 소리 자체가 주는 느낌에 매료됐다"고 극찬했다.

고전 비틀기에 일가견이 있는 고 연출이 지금은 더 이상 불리지 않는 판소리 일곱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타령'을 희곡으로 탈바꿈시킨 작품이다. 특히 변강쇠가 아닌 옹녀를 내세우며 반전을 꾀한다.

모타 극장장 역시 "여성 주인공이 극의 중심이 되고, 극을 이끌어간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의 딸로 가족의 대참사 속에서도 살아남은 강인한 여성인 안티고네에 비유하며 "옹녀를 성적인 인물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운명 속에서도 자유를 찾아가는 여성이다. 유럽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기 위한 제대로 선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학과 성적인 부분의 조화를 높게 평가했다. "해학적인 것과 성적인 것이 동시에 함께 있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사드 등을 비롯해 문학에서는 성(性)에 대해 늘 다뤄왔다. 하지만 프랑스 3대 극작가로 통하는 몰리에르,코르네이유, 라신느 등 프랑스 3대 극작가로 불리는 이들은 성적인 행위보다 감정적인 상태를 먼저 앞세웠다는 것이 모타의 판단이다. "희곡에서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것이 흔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관객에도 새로운 발견"이라며 "흔히 동양에서 온 작품을 접할 때 유머러스한 부분과 성적인 것을 기대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인데 이런 선입견과 충동하는 지점에서 재미가 발생하는 지점도 있다"고 흥미로워했다.

창극을 파생시킨 판소리는 이미 여러 차례 프랑스에 소개됐다. 칸 영화제 본선 경쟁부문에 진출한 뒤 2000년 파리에서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과 안숙선, 이자람, 정은혜 등의 소리꾼 등을 통해 선보였다. 특히 그녀는 지난해 파리에서 판소리 마스터 클래스를 열기도 한 이자람은 2011년 테아트르 드 라빌의 초청을 받아 이 극장의 4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사천가'를 공연하기도 했다.

테아트르 드 라 빌은 이처럼 한국의 소리를 현지에 알린 곳 중 하나다. 특히 극장을 찾아오는 관객뿐 아니라 판소리 교육에도 힘썼다.

모타 극장장은 "초등학교 만 8세 이상의 어린이들에게 판소리가 무엇인지 배우고 발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주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며 "극장의 프로그램 구성도 중요하지만 후대 관객들을 위해서 다양한 장르에 대한 교육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다양한 장르의 한국 아티스트들도 현지에 소개되고 있다. 이미 입지를 구축한 현대무용 안무가 안은미에 이어 지난해에는 세계 권위의 파리가을축제에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비서구권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초상'(Portrait) 프로그램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녀는 아르스 노바를 통해 키워낸 신동훈, 박정규, 서지훈, 박선영 등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모타 극장장은 "사실 프랑스에서 창극이 됐든 어떤 예술의 장르든 한국인 예술가들의 예술이 덜 알려져 있다. 나 역시 세상의 다양한 예술을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임에도 2, 3년 전만 해도 창극이라는 장르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며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상호교류의 해 등을 통해 한국 문화예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한국은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을 만드는 21세기 테크놀로지 도시의 이미지가 강하다"면서 "'마담 옹'은 한국의 인간적인 측면과 맞닿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줬다. 한 나라의 이미지가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라고 덧붙였다.

한 나라의 정부가 나라끼리의 문화 교류를 돕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모타 극장장은 "파리, 런던, 뉴욕 같은 손꼽히는 대도시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그것이 이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힘이고, 앞으로 어떤 예술 장르를 선보일 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청사진을 던져주기도 한다"고 봤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장르를 어떻게 접하고 발견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국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조금씩 친숙해져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극장에서 다양한 세계적인 프로그램을 초청해서 시즌을 구성하면서 느끼는 중요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 대한 현지 관객들의 호의적인 반응처럼 "예술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고 눈을 반짝였다. "그렇기 때문에 알지 못해도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장르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을 가까이 하는 것이야 말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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