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4.07 13:12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윌리 로먼'의 분신인 오브제가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 연습실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냉혹한 현실의 수렁으로 점차 빠져드는 로먼의 흔들리는 내면을 상징한다. 실제 공연에서 6m짜리 대형 흰색 오브제로 탈바꿈할 이 물체는 로먼이 자동차 사고로 삶을 끝낼 때 함께 떨어지며 산산조각난다.
미리 엿본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인물의 다층적인 욕망과 거기에 대한 연민을 비틀어온 한태숙(65·극단 물리 대표) 연출의 솜씨가 현대 영미희곡의 고전에서도 벼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가 1949년 발표한 작품이다. 퓰리처상·연극비평가상·앙투아네트 페리상 등 연극계 3대상을 휩쓸었다.
30년간 오직 세일즈맨으로 살아오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로 실직하고 목숨까지 잃어버리는 윌리 로먼을 통해 부조리한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았다.
'레이디 맥베스' '단테의 신곡' '서안화차' 등을 통해 이치에 맞지 않는 사회의 모순과 마주한 인물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매만져온 한 연출의 내공이 빛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앞서 영미 희곡의 또 다른 대표작인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명동예술극장(현 국립극단)과 손잡고 선보여 호평 받은 바 있다. 한 연출은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선보인 밀러를 기념하고자 이 작품을 택한 것이 아니다. 매력을 느낀 부분은 "윌리의 필사적으로 살려는 의지"라며 "그 돌진하는 힘에 비루한 면도 있지만 자기 현실을 느껴가는 것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윌리 내면의 분열이 극대화되는 미장센에 신경을 쓴 이유다. "무대 위 공중에 매단 오브제는 윌리의 살덩어리 같기도 하고, 뇌의 부분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무대에 심리적 내면을 담는 박동우 무대미술가가 디자인한 무대는 윌리의 심리적인 고립감도 표현한다. 가로 840㎝ 가량의 벽채가 윌리와 그의 가족이 사는 집으로 밀려오는 구성이 그렇다.
박 무대미술가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내용이 한국의 현실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1930년대 미국이 배경인데 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 이어진 한국의 개발과 닮았다. 주거 환경, 직업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는데 한국적인 정서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단계의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전했다.
한 연출은 기존 '세일즈맨의 죽음'과 예술의전당과 협업한 이번 프로덕션의 차별점에 대해 "미술과 음향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고 했다. "심리의 표출을 시각화했다"는 것이다.
가족의 달 5월에 공연하는 작품이지만 위로보다는 "병든 가족을 방치하는 책임감에 대해 묻고 싶다"는 마음이다. "(윌리의 아내인) 린다와 아들들이 아버지의 내적 분열을 내버려 둔 부분"이다. 특히 "걱정만 하고 그의 아픔을 낫게 만들고자 행동하지 않은 린다의 부분에 대해 질타하고 싶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있었던 2년 전 이 작품을 기획했다는 한 연출은 "당시만 해도 사회극을 표방하는 저의가 있었다. 인물의 내적 분열보다는 실직 등 극이 가지고 있는 고통의 쇼크에 집중하려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극의 내용에 세월호 참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이 없고 연관시키지도 않았다. 다만 "윌리의 고통을 단순히 가정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 비극으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프로덕션의 또 다른 특징은 주역 중 윌리를 맡은 배우 손진환과 둘째 아들 해피 로먼을 연기하는 박용우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라는 점이다. 베테랑 예수정이 린다, 대학로의 핫한 배우 이승주가 첫째아들 비프 로먼을 맡긴 하지만 대형 연극 프로덕션에서는 모험에 가까울 수 있는 캐스팅이다.
손진환은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한 연출과 '아워타워' '안티고네' '리차드 3세' 등을 작업하며 꾸준하게 내공을 쌓아왔다. 한 연출은 그에 대해 "삶에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윌리처럼 그 역을 해내면 연극계에서 스스로 자신이 돼 있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윌리와 해피 역은 처음 보는 분들이 많을 거다. 대신 조역들이 알려졌는데 그 알려진 주변인들이 그들을 떠받들면서 생기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한 연출은 "내가 (기존 생각이나 문법에 어긋난) 반칙을 좋아한다"며 즐거워했다.
중압감이 상당하다는 손진환은 "주인공이 처음은 아닌데 이런 큰 프로덕션에서 엄청난 배역을 맡은 것은 영광"이라며 "윌리를 삶의 끝자락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자 한다. 노쇠함 때문에 삶의 마지막 불꽃을 놓치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인 윌리와 대립하며 삶의 진실을 찾게 되는 비프 역의 이승주는 "왜곡되고 비틀린 가정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색을 맡은 고연옥 작가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치밀한 작품이다. 이를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렸을 때 미국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 상황에 현대적으로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각색이 없이도 현재성이 있는 작품인데, 그런 점을 살려 윤색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드라마터그를 맡은 연극학자 강태경 교수(이화여대 영어영문학) 역시 "당대의 현실과 맞물리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확인했다. "한 연출은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를 할 때도 왜 오늘날 이 작품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진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내면에 초점을 맞춰 과거와 현재, 가상과 실제를 오가는 내면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예술의전당 자체 제작 기획 공연 브랜드인 SAC 큐브(CUBE)의 하나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이형훈, '시련'과 '문제적 인간 연산'의 이문수,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해변의 카프카'의 이남희, '맨 끝줄 소년'의 유승락, '페리클레스'의 이화정이 출연한다.
14일부터 5월8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의상 김우성, 분장 백지영, 음악 지미세르, 움직임 금배섭. 4만~6만원. 예술의전당 쌕티켓. 02-580-1300
미리 엿본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인물의 다층적인 욕망과 거기에 대한 연민을 비틀어온 한태숙(65·극단 물리 대표) 연출의 솜씨가 현대 영미희곡의 고전에서도 벼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가 1949년 발표한 작품이다. 퓰리처상·연극비평가상·앙투아네트 페리상 등 연극계 3대상을 휩쓸었다.
30년간 오직 세일즈맨으로 살아오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로 실직하고 목숨까지 잃어버리는 윌리 로먼을 통해 부조리한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았다.
'레이디 맥베스' '단테의 신곡' '서안화차' 등을 통해 이치에 맞지 않는 사회의 모순과 마주한 인물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매만져온 한 연출의 내공이 빛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앞서 영미 희곡의 또 다른 대표작인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명동예술극장(현 국립극단)과 손잡고 선보여 호평 받은 바 있다. 한 연출은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선보인 밀러를 기념하고자 이 작품을 택한 것이 아니다. 매력을 느낀 부분은 "윌리의 필사적으로 살려는 의지"라며 "그 돌진하는 힘에 비루한 면도 있지만 자기 현실을 느껴가는 것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윌리 내면의 분열이 극대화되는 미장센에 신경을 쓴 이유다. "무대 위 공중에 매단 오브제는 윌리의 살덩어리 같기도 하고, 뇌의 부분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무대에 심리적 내면을 담는 박동우 무대미술가가 디자인한 무대는 윌리의 심리적인 고립감도 표현한다. 가로 840㎝ 가량의 벽채가 윌리와 그의 가족이 사는 집으로 밀려오는 구성이 그렇다.
박 무대미술가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내용이 한국의 현실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1930년대 미국이 배경인데 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 이어진 한국의 개발과 닮았다. 주거 환경, 직업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는데 한국적인 정서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단계의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전했다.
한 연출은 기존 '세일즈맨의 죽음'과 예술의전당과 협업한 이번 프로덕션의 차별점에 대해 "미술과 음향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고 했다. "심리의 표출을 시각화했다"는 것이다.
가족의 달 5월에 공연하는 작품이지만 위로보다는 "병든 가족을 방치하는 책임감에 대해 묻고 싶다"는 마음이다. "(윌리의 아내인) 린다와 아들들이 아버지의 내적 분열을 내버려 둔 부분"이다. 특히 "걱정만 하고 그의 아픔을 낫게 만들고자 행동하지 않은 린다의 부분에 대해 질타하고 싶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있었던 2년 전 이 작품을 기획했다는 한 연출은 "당시만 해도 사회극을 표방하는 저의가 있었다. 인물의 내적 분열보다는 실직 등 극이 가지고 있는 고통의 쇼크에 집중하려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극의 내용에 세월호 참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이 없고 연관시키지도 않았다. 다만 "윌리의 고통을 단순히 가정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 비극으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프로덕션의 또 다른 특징은 주역 중 윌리를 맡은 배우 손진환과 둘째 아들 해피 로먼을 연기하는 박용우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라는 점이다. 베테랑 예수정이 린다, 대학로의 핫한 배우 이승주가 첫째아들 비프 로먼을 맡긴 하지만 대형 연극 프로덕션에서는 모험에 가까울 수 있는 캐스팅이다.
손진환은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한 연출과 '아워타워' '안티고네' '리차드 3세' 등을 작업하며 꾸준하게 내공을 쌓아왔다. 한 연출은 그에 대해 "삶에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윌리처럼 그 역을 해내면 연극계에서 스스로 자신이 돼 있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윌리와 해피 역은 처음 보는 분들이 많을 거다. 대신 조역들이 알려졌는데 그 알려진 주변인들이 그들을 떠받들면서 생기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한 연출은 "내가 (기존 생각이나 문법에 어긋난) 반칙을 좋아한다"며 즐거워했다.
중압감이 상당하다는 손진환은 "주인공이 처음은 아닌데 이런 큰 프로덕션에서 엄청난 배역을 맡은 것은 영광"이라며 "윌리를 삶의 끝자락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자 한다. 노쇠함 때문에 삶의 마지막 불꽃을 놓치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인 윌리와 대립하며 삶의 진실을 찾게 되는 비프 역의 이승주는 "왜곡되고 비틀린 가정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색을 맡은 고연옥 작가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치밀한 작품이다. 이를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렸을 때 미국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 상황에 현대적으로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각색이 없이도 현재성이 있는 작품인데, 그런 점을 살려 윤색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드라마터그를 맡은 연극학자 강태경 교수(이화여대 영어영문학) 역시 "당대의 현실과 맞물리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확인했다. "한 연출은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를 할 때도 왜 오늘날 이 작품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진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내면에 초점을 맞춰 과거와 현재, 가상과 실제를 오가는 내면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예술의전당 자체 제작 기획 공연 브랜드인 SAC 큐브(CUBE)의 하나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이형훈, '시련'과 '문제적 인간 연산'의 이문수,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해변의 카프카'의 이남희, '맨 끝줄 소년'의 유승락, '페리클레스'의 이화정이 출연한다.
14일부터 5월8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의상 김우성, 분장 백지영, 음악 지미세르, 움직임 금배섭. 4만~6만원. 예술의전당 쌕티켓.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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