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폭력·위선·배신… 권력의 본질은 이런 것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6.04.06 01:19

[헨리 4세―왕자와 폴스타프]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史劇, 1·2부를 2시간 50분으로 압축
순식간에 전개되지만 밀도 높아… 폴스타프役 이창직 연기 돋보여

"그럼 이제 끝일까. 젊은 왕이 탄생하였으니, 왕국은 번성하고 백성은 평화로울까. 과연, 과연, 과연."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광대는 셰익스피어 원작에 없는 대사를 읊은 뒤 "혓바닥이 베이기 전에 물러간다"며 퇴장한다.

이 연극은 무력으로 권력을 쟁취한 뒤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옥좌 위에서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군주와 그 아들의 이야기다. 이 권력 수호의 프레임 안에선 잔인한 폭력과 역겨운 위선, 한순간에 등을 돌리는 냉혹한 배신이 모두 합리화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원작 '헨리 4세' 1부와 2부를 2시간 50분 분량으로 압축한 서울시극단의 연극 '헨리 4세―왕자와 폴스타프'(오세혁 각색, 김광보 연출)는 속도감 넘치는 연출로 권력의 본질을 날카롭게 짚는다.

연극 ‘헨리 4세’의 왕자(박정복·앞줄 오른쪽)와 폴스타프(이창직·그 왼쪽). 양녕대군처럼 살던 왕자는 반란이 일어나자 태종처럼 변신해 옥좌에 앉은 뒤 옛 친구들을 내친다.
연극 ‘헨리 4세’의 왕자(박정복·앞줄 오른쪽)와 폴스타프(이창직·그 왼쪽). 양녕대군처럼 살던 왕자는 반란이 일어나자 태종처럼 변신해 옥좌에 앉은 뒤 옛 친구들을 내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리처드 2세를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헨리 4세(강신구)는 계속되는 반란군의 봉기 앞에서 괴로워한다. 야심을 감춘 채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던 왕자(박정복)는 결정적인 순간 부왕을 도와 전장에 나서고, 마침내 왕위에 오르고 나자 그를 돕던 난봉꾼 폴스타프(이창직)를 저버린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순식간에 전개해 때론 비디오리코더의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김광보의 연출은 무대 위 공기 밀도마저 더 높아 보일 정도로 팽팽하게 각을 세웠다. 높은 계단 위에 덩그러니 놓인 옥좌는 황량하고, 왕과 왕자와 귀족들은 그곳에 앉기 위한 음모를 무한 반복한다.

이들의 세계와 대립되는 한쪽에 셰익스피어 작중 인물 중에서도 독특하기로 유명한 폴스타프가 있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이 방탕한 뚱보 주정뱅이는 "너는 형편없는 거짓말쟁이들의 왕자야…. 네놈이 옥좌에 올라도 이 영국 땅에 교수대를 남겨놓을 생각이냐?"라며 권력의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굵직한 발성 속에서 장난기와 익살, 심술과 뻔뻔함을 잘 버무린 이창직의 연기는 폴스타프가 셰익스피어 전집 속에서 걸어나오기라도 한 듯 자연스러웠다.


▷1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02)399-17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