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4.05 09:56
대학로에서 화가 이중섭(1916~1956)을 연기할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박호산(44), 지현준(38)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박호산은 뮤지컬 '러브레터'의 아키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의 김광석, 영화 '족구왕'의 복학생 등을 통해 능청스러움 속에 숨겨진 아픔을 꺼내왔다. 지현준은 연극 '에쿠우스'와 '시련' 등을 통해 폭발적인 에너지에 깃든 상처를 끄집어냈다.
이중섭은 삶의 지난함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살랐다. 그처럼 페이소스가 짙은 실존인물도 드물 것이다. 뮤지컬 '명동로망스'에서 이중섭을 번갈아가며 연기하는 박호산, 지현준은 저마다의 해석으로 그에게 설들력을 부여하고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인 이중섭은 덕분에 무대 위에서 현현한다.
박호산은 "나는 벗어나는 연기는 못한다. 대신 인물에서 나랑 닮지 않는 모습을 뺀다. 만들어서 하는 억지스런 연기는 맞지 않더라. 비워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현준 역시 인물을 연기할 때 "몸에 새겨진 것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내 꼴을 벗어날 수 없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그 꼴이 아직 부끄러워서 넓히고, 자유롭고자 노력 중"이라고 했다.
타입슬림을 차용한 '명동로망스'는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 만을 바라는 9급 공무원 '선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1956년의 서울 명동으로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중섭을 비롯해 시인 박인환(1926~1956), 작가 전혜린(1934~1965) 등 당시를 살아가던 실존인물들을 만난다. 유명인들을 만났다는 설렘도 잠시다. 현실적인 고민 앞에 주저 앉는 예술가들 앞에서 무력한 자신이 고통스럽다.
지난해 초연한 '명동로망스'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예술가들의 죽음을 막으려다 자신의 무기력을 느낀 선호는 2015년 서울로 돌아온다. 뮤지컬은 그가 한 번에 크게 변할 것을 예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보내지 말고, 살아내자는 의지를 얼굴에 드러낸다. '명동로망스'는 선호의 성장담을 판타지 속에서도 과장되지 않게, 덤덤하게 그리며 현실 감각을 잃지 않게 한다. 박호산은 "선호은 객석 관객들의 표본을 샘플링한 주인공"이라며 웃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거울 같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작품에 출연하는 사람이든, 이를 지켜보든 사람이든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작품이다." 지현준도 '명동로망스'를 보는 관객들은 예술가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든다"며 즐거워했다.
'명동로망스'는 예술가들의 이면을 톺아본다. 박인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에 하늘만 쳐다본다. 전혜린의 문학적 고민은 부르주아의 장난으로 취급 받는다. 특히 이중섭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덤덤하게 이북사투리를 쓰며 이중섭의 고뇌를 애절하게 그린 박호산과 지현준의 이중섭이 눈에 밟힌다.
이중섭이 전쟁과 가난으로 이별해야 했던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통해 박호산 스스로 해석한 그에게서 읽은 건 "굉장히 날카롭고 닫혀 있고 춥고 힘든 사람"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애착이 변질됐다"고 느꼈다.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함으로써 겨우 살아가는, 힘든 것을 사랑하는 힘으로 버틴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중섭은 자기 것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목표는 없고 그걸 표현할 방법들만 찾고 있다면 그는 오로지 목표만 바라고 산다. 고집스럽고 앙칼진, 예술가적인 바보다."
지현준 역시 이중섭이 순수한 사람이라며 남들이 보기에 기벽 같은 행동에서 대해서는 "맞이한 그 순간 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앞서 지현준은 2014년 명동예술극장(현재 국립극단에 통합)의 '길 떠나는 가족'(연출 이윤택)에서 이중섭을 연기한 바 있다. 당시 자신에게 이중섭은 너무 크기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저 대단한 예술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근데 점점 그 분과 나의 접점을 찾게 되더라"고 전했다.
박호산은 예술가들을 다루는 '명동로망스'에 출연하면서 "존경하는 선배들보다 지금은 무대 위에서 없어진 내 또래의 수많은 배우들이 생각난다"고 털어놓았다. "카페하는 친구도 있고, 술 장사를 하는 친구가 있고. 잘 안 된 친구들도 있고. '명동로망스'에서 마담이 예술가 친구들을 회상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이 들었다."
지현준은 이중섭, 박인환, 전혜린을 연기하는 '명동로망스' 배우들에 대한 애틋함에 먹먹해했다. "각자 살다가 작품을 위해 예술가로서 모인 사람들이지 않나. 무대 위에서 예술가를 연기하는 모습이 새삼스럽고 좋으면서 짠하더라."
박호산은 또 그림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이중섭에게서 '연극하는 사람의 마음'도 봤다. "계단을 청소하고, 지게차를 운전하며 일용직을 하는 건 정말 공연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공연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돈 못 받는 공연을 위해서 다른 일을 하는 거지. 이중섭의 모습에서 독한 연극인들이 겹쳐지더라."
지현준은 "연간 소득 꼴찌가 연극인이었는데 만족도 높은 직업 1위가 연극인이더라"며 박호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찌들고 고집스런 이중섭을 주변에서 성자 등으로 표현했는지 생각해봤는데 하나의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더라. 그림, 남덕(일본인 아내 마사코), 친구. 바로 지금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 이중섭이었다."
'명동로망스' 24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박호산, 지현준, 김준원, 김호섭, 안유진, 원종환, 홍륜희, 윤석원, 정민, 박범정, 고상호, 배두훈, 전성민. 프로듀서 장재용 오득영, 연출 김민정, 작·작사 조민형, 작곡 최슬기. 러닝타임 110분(인터미션 없음), 4만~6만원. 극단 장인. 02-511-4676
박호산은 뮤지컬 '러브레터'의 아키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의 김광석, 영화 '족구왕'의 복학생 등을 통해 능청스러움 속에 숨겨진 아픔을 꺼내왔다. 지현준은 연극 '에쿠우스'와 '시련' 등을 통해 폭발적인 에너지에 깃든 상처를 끄집어냈다.
이중섭은 삶의 지난함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살랐다. 그처럼 페이소스가 짙은 실존인물도 드물 것이다. 뮤지컬 '명동로망스'에서 이중섭을 번갈아가며 연기하는 박호산, 지현준은 저마다의 해석으로 그에게 설들력을 부여하고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인 이중섭은 덕분에 무대 위에서 현현한다.
박호산은 "나는 벗어나는 연기는 못한다. 대신 인물에서 나랑 닮지 않는 모습을 뺀다. 만들어서 하는 억지스런 연기는 맞지 않더라. 비워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현준 역시 인물을 연기할 때 "몸에 새겨진 것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내 꼴을 벗어날 수 없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그 꼴이 아직 부끄러워서 넓히고, 자유롭고자 노력 중"이라고 했다.
타입슬림을 차용한 '명동로망스'는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 만을 바라는 9급 공무원 '선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1956년의 서울 명동으로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중섭을 비롯해 시인 박인환(1926~1956), 작가 전혜린(1934~1965) 등 당시를 살아가던 실존인물들을 만난다. 유명인들을 만났다는 설렘도 잠시다. 현실적인 고민 앞에 주저 앉는 예술가들 앞에서 무력한 자신이 고통스럽다.
지난해 초연한 '명동로망스'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예술가들의 죽음을 막으려다 자신의 무기력을 느낀 선호는 2015년 서울로 돌아온다. 뮤지컬은 그가 한 번에 크게 변할 것을 예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보내지 말고, 살아내자는 의지를 얼굴에 드러낸다. '명동로망스'는 선호의 성장담을 판타지 속에서도 과장되지 않게, 덤덤하게 그리며 현실 감각을 잃지 않게 한다. 박호산은 "선호은 객석 관객들의 표본을 샘플링한 주인공"이라며 웃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거울 같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작품에 출연하는 사람이든, 이를 지켜보든 사람이든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작품이다." 지현준도 '명동로망스'를 보는 관객들은 예술가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든다"며 즐거워했다.
'명동로망스'는 예술가들의 이면을 톺아본다. 박인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에 하늘만 쳐다본다. 전혜린의 문학적 고민은 부르주아의 장난으로 취급 받는다. 특히 이중섭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덤덤하게 이북사투리를 쓰며 이중섭의 고뇌를 애절하게 그린 박호산과 지현준의 이중섭이 눈에 밟힌다.
이중섭이 전쟁과 가난으로 이별해야 했던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통해 박호산 스스로 해석한 그에게서 읽은 건 "굉장히 날카롭고 닫혀 있고 춥고 힘든 사람"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애착이 변질됐다"고 느꼈다.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함으로써 겨우 살아가는, 힘든 것을 사랑하는 힘으로 버틴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중섭은 자기 것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목표는 없고 그걸 표현할 방법들만 찾고 있다면 그는 오로지 목표만 바라고 산다. 고집스럽고 앙칼진, 예술가적인 바보다."
지현준 역시 이중섭이 순수한 사람이라며 남들이 보기에 기벽 같은 행동에서 대해서는 "맞이한 그 순간 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앞서 지현준은 2014년 명동예술극장(현재 국립극단에 통합)의 '길 떠나는 가족'(연출 이윤택)에서 이중섭을 연기한 바 있다. 당시 자신에게 이중섭은 너무 크기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저 대단한 예술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근데 점점 그 분과 나의 접점을 찾게 되더라"고 전했다.
박호산은 예술가들을 다루는 '명동로망스'에 출연하면서 "존경하는 선배들보다 지금은 무대 위에서 없어진 내 또래의 수많은 배우들이 생각난다"고 털어놓았다. "카페하는 친구도 있고, 술 장사를 하는 친구가 있고. 잘 안 된 친구들도 있고. '명동로망스'에서 마담이 예술가 친구들을 회상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이 들었다."
지현준은 이중섭, 박인환, 전혜린을 연기하는 '명동로망스' 배우들에 대한 애틋함에 먹먹해했다. "각자 살다가 작품을 위해 예술가로서 모인 사람들이지 않나. 무대 위에서 예술가를 연기하는 모습이 새삼스럽고 좋으면서 짠하더라."
박호산은 또 그림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이중섭에게서 '연극하는 사람의 마음'도 봤다. "계단을 청소하고, 지게차를 운전하며 일용직을 하는 건 정말 공연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공연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돈 못 받는 공연을 위해서 다른 일을 하는 거지. 이중섭의 모습에서 독한 연극인들이 겹쳐지더라."
지현준은 "연간 소득 꼴찌가 연극인이었는데 만족도 높은 직업 1위가 연극인이더라"며 박호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찌들고 고집스런 이중섭을 주변에서 성자 등으로 표현했는지 생각해봤는데 하나의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더라. 그림, 남덕(일본인 아내 마사코), 친구. 바로 지금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 이중섭이었다."
'명동로망스' 24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박호산, 지현준, 김준원, 김호섭, 안유진, 원종환, 홍륜희, 윤석원, 정민, 박범정, 고상호, 배두훈, 전성민. 프로듀서 장재용 오득영, 연출 김민정, 작·작사 조민형, 작곡 최슬기. 러닝타임 110분(인터미션 없음), 4만~6만원. 극단 장인. 02-511-4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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