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스노바 10년 진은숙 "어려움 있을 것, 정명훈 없으니…"

  • 뉴시스

입력 : 2016.03.25 09:40

진은숙(55)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작곡가는 세계 동시대 음악의 흐름을 국내에 소개해온 주인공이다. 그녀가 서울시향과 함께 이끌어온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는 척박한 현대음악계의 숨통을 터왔다.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이다.

2006년 4월 첫 선을 보인 이래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년 동안 총 40회 공연을 통해 170곡을 한국 초연했다. 아시아 초연과 세계 초연도 포함됐다.

진은숙은 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아무리 작곡가로서 성공하고 내 곡이 각광을 받는다고 해도 '아르스 노바'를 하면서 느낀 자부심이 더 크다"고 말했다.

2004년 '작곡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그라베마이어상을 거머쥔 진은숙은 아널드 쇤베르크상, 피에르 대공 작곡상 등 세계 최고 권위의 작곡상을 잇따라 받았다. 작품도 세계 음악 페스티벌과 콘서트에서 끊임없이 연주되고 있다. 대표작인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지난해 2월 LA 필하모닉의 연주로 미국 서부 초연, 3월 BBC심포니 연주로 영국 초연됐다. 그해 3월에는 정명훈(63) 전 예술감독과 서울시향의 음반 '진은숙 3개 협주곡'이 세계적 권위의 클래식음악상(ICMA) '현대음악 부문'을 받았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최초 수상한 세계적 명성의 국제음반상이다.

진은숙이 서울시향에 공헌한 것 중 하나가 '아르스 노바'다. 우리나라 음악계에 현시점의 경향을 소개하는 현대음악 시리즈로 진은숙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아르스 노바'를 하면서 느끼는 자부심이 크다. 10년 동안 유일한 기쁨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아르스 노바'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서울시향의 인지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존경하는 지휘자가 있는데 2006년 '아르스 노바'를 계획하면서 한국에 와 달라고 했다. 자기 인생에서 한국에 갈 일은 없다며 한 마디로 잘라 거절하더라. 근데 작년 시즌에 와서 콘서트에서 연주했다. 그 만큼 위상이 올라간 것이다.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지휘자에게도 서울시향이라는 단체가 자기 커리어에 한번쯤 연주해야 할 명단에 올라갔다. 그것만으로 자존감을 느낀다." 곧 대만에 '아르스 노바' 프로그램 수출도 앞두고 있다. "잘 알고 가끔 같이 일한 대만 지휘자가 '아르스 노바' 프로그램이 좋다고 그런 식으로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데 역부족이라며 우리의 프로그램을 수입하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단원들 역시 난해하고 어려운 현대음악 프로그램을 접하다 보니 실력이 부쩍 늘었다. "맨 처음에 단원들이 악보를 보면 기절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웬만한 걸 봐도 무섭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며 흡족해했다.

하지만 클래식 환경이 척박한 한국에서 10년을 이어온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우리 오케스트라는 좋은 연주를 청중에게 선사하면서 음악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본 업무이고 이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몇년 동안 외부에서 공격도 많았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것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과정이 있었다. 물론 세금을 낭비하면 안 된다. 당연하다. 근데 그 세금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본 업무에 충실해서 1분이라도 음악이 아닌 것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

프랑스 보르도 아키텐 국립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지휘자 크와메 라이언(46)이 지휘봉을 드는 올 봄 '아르스 노바'는 음악에 충실한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30일 오후 7시30분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아르스 노바 I: 체임버 콘서트'에서는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28)가 리게티의 초기작 '첼로 소나타'를 들려준다. 서울시향은 20세기의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힌데미트의 '실내악 1번'을 함께 선보인다. 그라베마이어상 수상자인 독일 작곡가 횔러의 다섯 연주자들을 위한 '소실점'은 아시아 초연, 세계적인 스타 지휘자 겸 작곡가인 에사페카 살로넨의 첼로와 앙상블을 위한 '마니아'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서울시향이 위촉한 최지연의 '망상'은 세계 초연한다.

4월5일 오후 8시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아르스 노바 I: 관현악 콘서트'에서는 서울시향이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과 공동 위촉한 이반 페델레의 관현악곡 '사전 Ⅱ'가 아시아 초연된다. 프랑스 현대음악계의 전설로 남아있는 작곡가 뒤티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 그의 대표작인 '아득한 전 세계가…'를 이상 엔더스가 첼로 협연한다. 피날레는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적인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모음곡으로 장식한다.

2014년 4월 '아르스 노바'에서 루토스와브스키 '첼로 협주곡'을 한국 초연하기도 한 이상 엔더스는 '아르스 노바'에 대해 "음악적인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곡을 들려줄 수 있는 플랫폼"이라며 "연주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작품을 연주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진은숙은 이와 함께 26일부터 4월4일까지 '상임작곡가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한다. 4월4일 오전 10시 서울시향 연습실에서는 '우수학생 작품 리허설'도 한다. 페델레가 내한, 마스터 클래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도 연다. 내년에는 아르스 노바 10주년 기념 책도 펴낸다.

진은숙은 이날 '아르스 노바'가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며 2014년 말 박현정(54) 전 서울시향 대표의 막말로 촉발된 서울시향 사태에 대해 작심하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정 전 감독이 지난해 말 예술감독직을 내려놓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 "본질적인 입장을 말하지 않고 끝낸다는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그녀는 "서울시향의 내홍이 객관적으로 봐도 전 대표와 직원들의 사안이라고 생각하는데, 확대되면서 공공단체가 많은 곤경에 빠지고 상임지휘자의 사퇴로까지 이어진 것은 대단한 유감"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을 명예 훼손 건으로 고소한 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 등에 대해 유감을 표한 서울시향의 공식적인 입장을 지지한다며 "개인적으로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정 전 감독과 진은숙이 나를 해임하지 않으면 서울시향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도 들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정 전 감독은 해외에서 "한국 음악계를 대변하는 얼굴"이라고 했다. "홍보대사와 같다. 백남준, 윤이상 같은 분들의 이름을 들으면 한국이 떠오르지 않나. 그런 역할을 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정 전 감독이 당한 정당하지 못한 일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 면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외국에서 알아줘도 한국에서는 상관 없다는 입장을 표하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러면 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를 응원하고,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건가.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로 부상했다. 눈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다. 북한처럼 문을 닫고 우리 만의 원칙을 지킬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큰 범위를 바라보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가치에 대해서는 평가를 좋게 내려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르스 노바'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고도 고백했다. 출발 당시부터 정 전 감독이 강한 지지를 보낸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나 현대음악 상황은 힘들다. 강하게 서포트를 하지 않으면 흔들릴 위험이 크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지금부터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게 과제다.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은 하는데 잘 지켜야지." 1만~5만원. 서울시향. 158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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