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엄청나게 고전적인, 믿을수없게 모던한…필립 글래스 '미녀와 야수'

  • 뉴시스

입력 : 2016.03.23 16:04

미국 작곡가 필립 글래스(79)의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는 상반된 요소들을 한꺼번에 사로잡는다. 옛 영상의 우아함은 고전미를 발산하고, 반복되고 점층되는 미니멀 현대음악은 모던한 세련미를 선사한다. 20세기 초 '르네상스맨'인 프랑스 작가 장 콕토(1889~1963)의 흑백영화 '미녀와 야수'(1946)라는 동화 판타지를 현대적인 공연예술로 승화시키는 묘를 발휘한다.

22일 밤 LG아트센터에서 한국 초연한 이 필름오페라는 콕토의 원작 영화에서 대사와 음악 등 모든 소리를 완전히 제거하고 글래스가 새롭게 작곡한 음악을 입혔다. '필립 글래스 앙상블' 6명이 리듬을 부여하고 소프라노·메조 소프라노·테너·바리톤 등 4명의 성악가가 영화 속 배우의 대사 대신 그들의 입 모양에 맞춰 만들어진 가사로 노래를 부른다. 마치 음악이 팝업창처럼 입체성을 띤다.

영화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여겨진 음악은 그렇게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지휘자 마이클 리스만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스크린을 보며 영상의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 흐름에 맞춰 음악을 조율한다. 결국 글래스의 음악은 '미녀와 야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된다.

기표(단어의 소리)와 기의(의미되는 내용)의 관계가 새롭게 정의되고 원작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메시지는 다시 환기된다. '미녀와 야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익히 아는 그 내용이다. 마법에 걸려 야수가 된 왕자, 그를 사랑하게 되는 미녀의 이야기다. 겉의 화려함보다 내면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익숙한 메시지다. 글래스의 필름오페라는 이를 새삼 깨닫게 한다. 70년 전 만들어진 영화를 바탕으로 22년 초연한 작품이 지금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다.

원작의 영상과 새로운 음악이 겹쳐질 때 만들어지는 새로운 질감은 관객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상상력도 자극한다. 멜로디컬하지 않으면서도 점층적이고 점강적인 리듬의 향연인 글래스의 음악에 빠져들 때 쯤 왕자로 변한 야수와 미녀는 왕국으로 가기 위해 하늘로 치솟고 영상과 음악의 새로운 조합은 시(詩)로 승화한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미녀 '벨'이 야수의 장갑을 끼고 공간을 이동할 때의 특수효과 등이 다소 엉성해 보일 수 있다. 세련된 음악의 조합은 이를 귀여운 소품으로 여기게 만든다.

글래스는 전날 필름 오페라 작업이 굉장히 흥미롭고 쉽다고 했다. 전자는 맞지만 후자는 틀렸다. 무조건적인 조합은 붙어 있는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엉성함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 안에 숨어 있는 맥락을 끄집어내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내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23일 LG아트센터 무대에 한 차례 더 오른다. 통영 국제음악제 기간인 25, 26일 통영국제음악당 무대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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