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17 00:42
피아니스트 김선욱
"유럽 독주회 도중 가르침 받아 연주 보곤 연습법까지 알아채"
지난주 프랑크·브람스 음반 내

"아,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싫은 소릴 들었는데, 정말 '변태'같이 좋은 거예요."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자정 가까운 시각, 영국 런던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피아니스트 김선욱(28)은 나직한 목소리로 뜻밖의 단어를 툭 내뱉었다.
시작은 이랬다. 지난달 초, 런던·파리·베를린 등 유럽을 돌며 독주회를 가졌던 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은퇴한 82세 피아니스트 페렌츠 라도스(Rados)를 만났다. 1996년까지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 교수를 지내며 안드라스 시프 등 정통 헝가리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낸 라도스는 연주자들 사이에서 한 번은 꼭 만나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고 소문난 대가였다.
"독주회 다음 날 수다나 떨겠지 하고 갔어요. 근데 전날 제가 연주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악보를 챙겨왔더라고요. 그러고는 한 시간 반 동안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어찌나 날카로운지 '멘탈붕괴'가 올 정도였어요."
열여덟이던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은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또래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드물게 유럽에서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고 있다. 런던 심포니, 필하모니아, 런던 필하모닉 등 저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2014년부터 120년 전통의 본머스 심포니에서 상주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이름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훌쩍 성장한 그도 "스승 김대진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2008년 졸업한 이후로 누군가에게 정기적으로 레슨을 받은 적은 없다"며 아쉬워할 만큼 애정 어린 조언이 필요했다.
"자신의 연주를 온전히 책임지는 게 몸에 배잖아요? 그러면 남의 말 듣는 게 불편해져요. 라도스와 만난 초반엔 저도 기분이 상했어요. 근데 흘러가는 얘기로 '부점(음표나 쉼표를 원래 길이의 반만큼의 길이를 더 연주)' 연습을 줄이라 조언하는데 소름이 확 돋았어요.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 연습 방법을 제 연주만 보고 알아챘기 때문이죠." 김선욱은 "맨날 혼자 하다가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 참 좋았다"며 "그 뒤로 부점 연습을 대폭 줄였다. 이젠 베토벤을 만나도 내 연주 비판해달라고 부탁할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생애 첫 베토벤 소나타 독주 음반을 냈던 그는 넉 달 만에 프랑크의 '프렐류드와 코랄, 푸가'와 브람스 소나타 3번을 담은 두 번째 음반을 냈다. "함축적 묘사가 많은 베토벤이 곱씹어 봐야 할 철학서라면 브람스는 술술 잘 읽히는 수필이에요. 특히 소나타 3번은 브람스가 스무 살 초반에 쓴 작품이라 저 또한 지금 녹음해야만 할 것 같았어요. 말년의 곡에 비해 패기가 넘치고, 일부러 깊은 척도 해서 치는 맛이 있거든요."
이달 말 마크 엘더 경이 지휘하는 맨체스터 할레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2번을 녹음하는 김선욱은 "10년 전 콩쿠르 결선 때 같은 곡(1번)을 같이 연주한 이들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신나게 꾸역꾸역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