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나비' 강수진은 국립발레단을 어떻게 단련했는가

  • 뉴시스

입력 : 2016.03.16 17:53

한국 발레의 대명사 격인 강수진(49)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겸 단장이 "혼, 필링, 터치, 스킨십이 없어지면 로봇이 된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16 시즌 국립발레단 프로그램' 간담회에서 강 단장은 "이세돌씨 인터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한 번의 승리가 계속 승리할 때 칭찬을 받은 것보다 더 기쁘다는 말. 가면 갈수록 컴퓨터화되는 세상에서, 그렇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술"이라고 밝혔다.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를 누르는 시대에 "음악이나 무용, 발레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영화 같은 모습이 다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미래가 보이기에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겠나. 22, 23세기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되도록이면 인간의 느낌이 남았으면 한다. 사랑하면서 배려하면서 사는 생활에 예술이라는 분야가 중요하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하면 암울한 미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 서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강 감독의 이런 마음에 힘 입어 국립발레단은 2년 간 무럭무럭 자라났다. 2014년 강 단장이 온 뒤로 대내외적으로 성과가 하나둘씩 쌓였다. 드라마 발레의 거장 존 크랑코의 '말광량이 길들이기'를 선보이며 대중성을 확보했다. 객석 점유율 88.46%, 관객만족도는 89.58%에 달했다. 육군 본부와 협력해 육군 25사단 GDP 장병들을 대상으로 7개월 간 진행한 발레교실 역시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KNB 무브먼트 시리즈가 주목 받았다. 국립발레단에서 처음 시도하는 단원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다. 총 12명의 안무가가 9개 작품을 발표했다. 강효형의 '요동치다'는 강 감독처럼 국제적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전직 단원 중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감독들의 모임이 주최하는 갈라 공연 '넥스트 제너레이션'에 초청됐다. 7월16일 독일에서 열린다. 국립발레단 단원 출신인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단원인 박슬기, 이영철을 위해 만든 '여행자들'도 공연한다.

강 감독은 "KNB는 단원들이 안무가로 성장하기 위해 발판"이라며 "단원들이 안무가로 성장했을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국립발레단만의 레퍼토리가 구축될 거라 믿는다"며 눈을 빛냈다. "단원들의 작품이 경비 전액을 지원받아 초청받는 것이 이번에 처음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튿날인 17일에는 강 감독을 비롯한 세계적인 발레단의 예술감독들이 세미나도 연다.

지난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오네긴'으로 한국에서 현역 무대를 마감한 강 감독은 갈라 쇼와 세미나가 열리는 그달, 남편 툰치 소크멘(53)의 생일이기도 한 22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오네긴' 공연을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2016년은 강수진이 1986년 19세 나이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이 발레단의 종신 단원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현역무대)은 독일에서 딱 한 번이다. 발레리나 인생은 그걸로 마감한다. 한 번 남았지만 책임이 있으니 잘 관리하고 있다."

행정은 여전히 배워나가야 할 점이 많지만 "할수록 공부인 것 같다"고 여겼다. 하지만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인간 관계가 중요하다"는 마음이다. "행정도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팀 워크를 잘 만들어야 하더라. 발레단 발전의 큰 이유이다. 2년이 지나면서 첫 해보다는 내 나름대로 발전을 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립발레단은 올해 '라 바야데르'(안무 유리 그리가로비치 3월30일~4월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로 시즌을 개막한다. 2013년 예술의전당 25주년 기념공연으로 예술의전당과 국립발레단이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당시 '발레계의 블록버스터'로 불리며 92%의 티켓 판매율을 기록했다. 2014년 강수진 예술감독 부임 첫해 첫번째 공연 작품이기도 하다. 국립발레단 단원들의 기량이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는데 한 몫을 한 공연으로 국립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강 감독은 "단원들의 기량이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의 발전은 있다고 본다"며 "한 번 했다고 끝내는것이 아니라 다시 훑어보면서 기량을 보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신작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세레나데' 등 2편이다. 11월 3~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는 요정, 공주가 나와 춤을 추는 전통 클래식 기법이 잘 녹아있다. 2004년 루돌프 누레예프 버전을 공연한 지 12년 만에 새로운 프로덕션 버전으로 다듬는다. 안무가 마르시아 하이데(79) 버전으로 선보인다. 1976년부터 1996년까지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 발레리나인 강 단장과 인연도 있는 셈이다.

지난해 한국 발레계에 신선함을 불어넣은 '봄의 제전'과 함께 공연될 신작 '세레나데'는 4월29일~5월1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신고전주의 창시자로 평가 받고 있는 조지 발란신이 안무한 작품으로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사용한다.

"'세레나데'는 큰 규모의 작품은 아니지만 관객들이 보기에 아름답다. 그리고 여성 무용수들의 테크닉이 나아지는데 좋은 작품이다. '봄의 제전'으로 남자무용수들이 성장했는데 여자 무용수 역시 수준이 높다. 스페셜한 작품이 필요하다고 봤다."

큰 발레단 안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레퍼토리화가 안 돼 아쉬웠다는 강 단장은 "다른 클래식보다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음악으로 치면 모차르트 같다. 아카데믹한 형식이라 자그마한 실수를 하면 다 보인다. 클래식컬한 작품 중에서도 가장 힘든 작품이다."

클래식, 네오 클래식, 드라마, 모던, 컨템포러리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고 있는 강 단장은 "발레를 잘 모르는 관객들이 와서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며 "이것저것 설명하기보다는 여러 작품의 스타일을 보여주면 선택권이 풍부해질 것이라 기대했다"고 전했다.

2년 간 단원 한명한명이 나아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고맙기만 하다. "실수는 당연히 하는 것이니 문제가 아니다.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내가 생각한 목표와 잘 맞아서 감사하다. 성장을 지켜보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3년 임기 중 2년이 지났다. "예술감독으로 정말 하고싶은 일, 뭐든지 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감사하다. 남은 1년 동안 그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서 하는 일만 남았다."

강 단장 취임 이후 내실 뿐 아니라 대외적인 이미지도 탄탄해졌다. 국립발레단이 대중에게 더 다가왔다는 평이 나온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 후에 누가 오더라도 다음 세대를 만드는 거다. 대중화 이미지를 쌓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 나 이상으로 발레의 대명사가 나와 한국 발레단을 이끌어갔으면 하는 것이 내 진심이다. 발레단에 새로움을 던졌을 때, '빅뱅'이 나온 뒤 전체적으로 많은 K팝이 탄생한 것처럼 (발레계)에 도움이 될 거라 본다."

강 단장이 워낙 유명한 인사라 어쩔 수 없이 본인이 먼저 조명된다는 시선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다음 세대가 너무 잘하고 있다. 지영씨부터 은원씨, 리회씨, 슬기씨 외에 막내 이은서까지도. 다음 세대가 어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책임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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