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보, 시의적절하다…셰익스피어 '헨리 4세'와 권력욕

  • 뉴시스

입력 : 2016.03.10 09:45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인 서울시극단이 2002년 국내 초연한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파트1 & 파트2-왕자와 폴스타프'를 14년 만에 다시 선보인다. 당시의 객원연출가 김광보(52)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이 이번에도 연출한다.

김 예술감독이 2010년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 시절 공연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세 번째다. 연극 '줄리어스 시저', 뮤지컬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 이후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출했지만 '헨리 4세'가 그의 첫 셰익스피어이기도 했다.

김 예술감독은 9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연습동 서울시극단 연습실에서 "권력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다룬 작품을 지금 다시 공연하는 것이 시의절적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영국 왕 헨리 4세는 리처드 2세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실존 인물이다. 사극의 교과서로 통하는 '헨리 4세 파트1& 파트2-왕자와 폴스타프'는 헨리 4세의 정치사를 다룬다.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후 겪게 되는 사회의 혼란과 정권의 정통성 문제 등을 그린다.

김 예술감독은 "권력의 구조라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라고 생각한다"며 "권력을 차지한 자는 지키기 위해 권모술수와 음모를 꾸미고, 그것을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번쯤 생각볼만한 내용이 아닐까 여겼다"고 전했다. 원작대로 하면 러닝타임이 5시간이 훌쩍 넘는데, 이를 약 2시간30분으로 줄였다. 대학로에서 다방면의 작업에 참여하는 오세혁 작가가 각색했다. 처음에는 말을 다듬는 정도의 윤색을 맡았다는 오 작가는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대사를 넣고 장면을 넣었는데 김 연출이 잘했다고 칭찬해줘서 신분이 상승했다"며 "연출님이 본래 만든 구성에 지금 시대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왕위를 탈취한 헨리 4세가 그것을 가리기 위해 또 정당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그럼에도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정당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은 홋스퍼다. 왕의 가족으로 태어났으면 충분히 왕이 될 만한 능력과 재주가 많은 젊은이인데, 그럼에도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 시대 재능 많은 젊은이들이 어떻게 사라져 가는지와 맞닿아있더라." 영국 프로 축구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FC'의 홋스퍼는 이 인물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극에서 헨리 4세의 아들 '헨리 왕자'는 권력을 향한 야심을 감춘 채 허풍쟁이 궤변가 '폴스타프'와 어울려 밑바닥 인생을 체험하면서 온갖 기행과 방탕을 일삼는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는 햄릿이 있고, 희극에는 샤일록이 있으며, 사극에는 폴스타프'가 있다는 말처럼 폴스타프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뚱뚱하고 늙은 술고래에 난봉꾼이지만 권력의 위선을 통렬히 조롱하는 쾌감이 있다. 헨리 왕자가 즉위한 뒤 버림받는 드라마틱한 면모도 갖췄다.

서울시극단 단원 이창직(55)이 폴스타프를 연기한다. 초연 배우인 그는 김 감독의 러브콜로 부산시립극단에서도 이 역을 연기했다. 김 연출은 이번에 이 작품을 다시 연출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창직 때문이라고도 했다.
"먼저 우스개로 이만한 풍채를 가진 배우가 없다"며 웃었다. 하지만 "폴스타프의 풍자적인 면모는 이창직의 일상이다. 풍자성을 일상에서 활용하는 천상 배우"라고 소개했다.

이창직은 "시민 권력을 대표하는 특유의 기지와 말재간, 풍자적인 인물이다. 허풍쟁이지만 재치있고, 호색하지만 사랑스러운 인물을 이 시대에 맞게 어떻게 표현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폴스타프를 처음 연기했을 때는 우리나이로 마흔 두살, 지금은 쉰여섯살이다. 부산에서 이 역을 연기했을 때는 쉰살이었다. "폴스타프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틀에서 보여지더라"며 "욕심이 과하지만 80세 때 폴스타프를 하면 어떠할까 생각한다. 예전보다 한 발 더 물러나서 연기를 하게 됐다. 여유로워졌다. 젊었을 때는 혈기에 최선을 다해가면서 했는데, 최선을 다하니까 관객들이 오히려 못 알아듣더라. 최선을 덜 하니까 알아듣더라. 하하."

김 감독은 "결국 배우는 연륜"이라며 "연습과정에서 40대 말 폴스타프 때보다 훨씬 더 깊이가 느껴진다"고 칭찬했다.

초연에서는 헨리 왕자를 연기한 강신구(47)가 이번에는 그의 아버지인 헨리4세를 연기한다. "아버지가 되니 헨리 4세의 고뇌가 더 느껴진다. 아버지 역이 힘들다." 이번 헨리 왕자는 객원 배우로, 연극 '레드'와 '올드 위키드송'으로 대학로에서 눈도장을 받은 박정복이 연기한다. 김 감독, 서울시극단과 첫 작업인 박정복은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였는데 연출이 김광보 감독님인 걸 알고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역시 셰익스피어 정치물인 명동예술극장(현 국립극단과 통합)의 '줄리어스 시저'(2014)로 호평을 받은 김 예술감독은 셰익스피어는 '보물 단지'라고 정의했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꺼내놓으면 어느 시대든 동시대성를 지닌다. '줄리어스 시저'도 마찬가지고 '햄릿'도 그렇다. 인간들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투쟁 등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의미가 있다."

올해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서울시극단의 2016년 시즌 첫 번째 공연이자 이를 기념하는 작품이다. 앞서 서울시극단은 '쉽게 보는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첫 번째 가족음악극의 하나로 지난 1월 '템페스트'를 선보였다. 하반기에는 김은성 작가가 '햄릿'을 바탕으로 한 창작극 '함익'(9월30일~10월16일·세종M시어터)도 공연한다.

김 예술감독은 그러나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의식하고 처음부터 올해 셰익스피어 관련 작품을 3편을 올린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쉽게 보는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김석만 전 단장 때부터 해온 '어린이 셰익스피어극'이다. '헨리 4세'는 부임하고 나서 두 번째 작품(첫번째는 '나는 형제다')으로 하려고 했다. 그리고 김은성 작가와 장우재 작가에게 (서울시극단 창작) 작품을 의뢰했는데, 김은성 작가가 먼저 '햄릿'을 현재의 버전으로 바꾼 '함익'으로 쓰고 싶다고 해서 우연치 않게 셰익스피어 시리즈로 꾸미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김 감독이 서울시극단으로 오면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단원들의 구성이다. 서울시극단의 정단원 숫자가 한정적이라 작품을 올릴 때마다 외부 배우를 데리고 와야 했다. 이번 '헨리 4세'에는 배우가 총 28명이 참여하는데 객원배우 박정복과 정단원 등 6명, 시즌단원 15명, 연수단원 7명으로 이뤄졌다.

김 감독은 "내가 부임하고 난 뒤 우연치 않게 좋은 기회가 있었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청년 일자리' 사업을 변형, 시즌 단원 제도로 활용했다.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님이 많이 도와줬다"고 알렸다.

'헨리4세 파트1&파트2-왕자와 폴스타프'에는 쟁쟁한 스태프들이 참여한다. 박동우 미술감독, 뮤지컬 '신과 함께 - 저승편'에서 역동적인 효과를 보여준 정재진 무대 겸 영상 디자이너,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의 이동진 조명 디자이너 등이 힘을 싣는다. 29일부터 4월14일까지 세종M시어터. 2만~5만원. 세종문화티켓.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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