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07 03:00
빛의 제국
권태에 빠진 유부녀 장마리(문소리)는 어느 날 오후 러브호텔에서 대학생 두 명과 동시에 성관계를 가진다. 이제 큰 비밀을 지니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남편 김기영(지현준)은 그날 밤 더 기막힌 얘기를 털어놓는다. 자신은 사실 남파된 고정간첩이며, 10년 넘게 잊힌 존재였으나 오늘 아침 '모든 걸 버리고 24시간 내에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립극단과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가 공동 제작해 지난 주말 개막한 연극 '빛의 제국'(김영하 원작,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은 충격적인 줄거리가 담백한 연출에 뒤덮여 2시간 20분의 긴 사색으로 승화된 작품이다.
국립극단과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가 공동 제작해 지난 주말 개막한 연극 '빛의 제국'(김영하 원작,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은 충격적인 줄거리가 담백한 연출에 뒤덮여 2시간 20분의 긴 사색으로 승화된 작품이다.
무채색 톤의 무대는 과거와 현재, 가상과 실제가 혼재(混在)한다. 두 개의 대형 스크린은 왠지 낯선 풍경의 서울을 배경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배우들의 말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그 아래에선 같은 배우들이 대사를 읊는다. 그들은 종종 오태석 연극처럼 객석만 바라볼 뿐 서로 시선을 교환하지도 않은 채 절제된 연기를 펼친다.
독립영화와 낭독극이 결합된 듯한 모양새인데, 배우들은 수시로 등장인물이 아닌 현실의 인물로 돌아와 반공교육과 전쟁 공포 같은 분단과 관련된 경험을 이야기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화면보다 무대 위에서 더 빛을 발했다. 지현준은 하루 동안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강렬하고도 섬세한 연기를 보였으며, 문소리는 발성에 어려움을 드러냈지만 다채로운 표정 연기로 내면 갈등을 잘 표현했다.
프랑스의 중견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은 한·불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이 작품을 맡게 됐다. 작가 발레리 므레장과 함께 김영하 소설을 직접 각색한 그는 '분단'이란 역사적 상황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방인의 시선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는 좀처럼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과거' 또는 '기억'이 불쑥 튀어나와 일상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하지만 연극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이 각자 마음속에 지닌 비밀과 그것이 낳는 두려움에 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까지 마음을 닫았다"(마리) "배신에 관해서라면 당신이 더 나을 것도 없네"(기영) 같은 대사가 여운을 남긴다.
독립영화와 낭독극이 결합된 듯한 모양새인데, 배우들은 수시로 등장인물이 아닌 현실의 인물로 돌아와 반공교육과 전쟁 공포 같은 분단과 관련된 경험을 이야기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화면보다 무대 위에서 더 빛을 발했다. 지현준은 하루 동안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강렬하고도 섬세한 연기를 보였으며, 문소리는 발성에 어려움을 드러냈지만 다채로운 표정 연기로 내면 갈등을 잘 표현했다.
프랑스의 중견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은 한·불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이 작품을 맡게 됐다. 작가 발레리 므레장과 함께 김영하 소설을 직접 각색한 그는 '분단'이란 역사적 상황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방인의 시선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는 좀처럼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과거' 또는 '기억'이 불쑥 튀어나와 일상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하지만 연극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이 각자 마음속에 지닌 비밀과 그것이 낳는 두려움에 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까지 마음을 닫았다"(마리) "배신에 관해서라면 당신이 더 나을 것도 없네"(기영) 같은 대사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