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좌절, 다 내려놓고 다시 무대 서요"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6.03.03 03:00 | 수정 : 2016.03.03 07:48

연기 인생 40년 윤석화 '마스터 클래스'로 연극 복귀
"흥행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더 단단한 연극인 될 겁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소녀 윤석화는 방송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CM송 가수가 됐다. 청아한 목소리로 '오란씨'와 '부라보콘'을 부르는 모습을 본 녹음실 옆방 극단 사람들이 "연극 한번 해 보라"고 권했다. 1975년, 그녀가 '꿀맛'에 출연하면서 일세를 풍미한 '한국 대표 여배우'의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쉬울 것 같아요?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게? '하!' 이게 내 대답입니다." 지난 주말 대학로에서 만난 윤석화는 연기 인생 40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마스터 클래스'(테런스 맥널리 작, 임영웅 연출)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강렬한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극중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는 환갑 나이를 맞은 윤석화의 실제 모습과 고스란히 겹쳤다.

연기 인생 40주년 기념 연극‘마스터 클래스’에 출연하는 윤석화는“이 작품은‘내가 지금껏 왜 이 가시밭길을 걸어왔나?’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했다.
연기 인생 40주년 기념 연극‘마스터 클래스’에 출연하는 윤석화는“이 작품은‘내가 지금껏 왜 이 가시밭길을 걸어왔나?’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자신만만하고 도도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대사를 잇던 윤석화가 갑자기 "아이고 다리야…"라며 허리를 숙였다. "엄청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두 시간 동안 무대를 종횡무진해야 하거든요. 다 못 외운 대사가 꿈에 나와서 잠을 설쳐요. 도대체 18년 전에는 이걸 어떻게 한 거야."

윤석화는 무대 복귀작으로 숱한 히트작 대신 '마스터 클래스'를 선택했다. 최고의 디바였던 칼라스가 좌절을 딛고 일어나는 모습을 담은 이 연극에서 주연을 맡아 1998년 이해랑연극상을 받았다.

"'내가 왜 연극을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 작품에 들어 있어요." 그녀는 돌연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극중 대사를 읊었다. "세상은 우리 없어도 돌아갈 거예요. 하지만 우린 이 세상을 예술이 없는 세상에 비해 훨씬 풍요롭고 현명한 세상으로 만들어 왔어요…."

윤석화의 지난 40년을 10년씩 넷으로 나누면 그대로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겹친다. 20대엔 '신의 아그네스'로 순식간에 유명해졌고, 30대엔 '하나를 위한 이중주' '딸에게 보내는 편지'등에 출연하며 인기의 절정을 누렸다. '명성황후''덕혜옹주' '나, 김수임' 등 역사 인물에 빙의된 듯했던 40대는 원숙기였다. 그리고 그다음 50대는 허위 학력 파문과 의혹으로 추락을 겪은 시련의 시기였다.

"지난 잘못에 대해선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세상에 거저 얻는 것은 없고 다 치를 만큼 치러야 얻는 것이더군요." 극중 마리아 칼라스처럼, 이미 성공과 좌절을 다 겪었다. 지휘자 구자범이 반주자 역을 맡고 배해선·이유라 등이 출연하는 이번 연극에 대해서 "흥행 같은 생각은 이미 다 내려놨다"고 했다. "뭔가 여기서 방점을 찍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이 작품을 계기로 다시 저 자신을 단련시킬 겁니다. 좀 더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연극을 하는 길…. 은퇴 선언은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