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의 자유인] "대중음악이 된장찌개라면, 현대음악은 딤섬 같은 別味"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6.02.24 03:00 | 수정 : 2016.03.04 14:44

- 음악학자 이희경 박사
리게티·강석희 평전 내고 20세기 현대음악사 정리한 책도
"亞현대음악에 세계적 관심 높아… 한국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음악학자 이희경(52) 박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교양 수업 '서양음악의 이해' 첫 시간에 언제나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 같은 비틀스(The Beatles)의 히트곡을 틀어준다. 원곡뿐 아니라 베를린 필 첼로 주자 12명의 연주곡과 보사노바와 재즈 스타일까지 다양한 버전을 비교 감상하도록 한다. '대중음악과 현대음악은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으며, 같은 곡이라도 편곡이나 연주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수업 준비를 위해 비틀스의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초등학생 때부터 곁에서 듣던 그의 대학생 아들은 비틀스의 노래라면 화음까지 따라 부를 정도다. 이씨는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는 현대음악에서 얻은 착상을 통해서 다양한 음색의 실험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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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자 이희경 박사의 전공은 현대음악이지만, 그의 집 마루를 차지한 건반에는 바흐의‘골드베르크 변주곡’악보가 놓여 있었다. 한밤에는 옆집까지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헤드폰을 쓰고 연주한다. /오종찬 기자
이씨는 동유럽 작곡가 리게티(1923~2006)와 한국의 강석희(82) 서울대 명예교수 등 국내외 현대음악 작곡가에 대한 평전과 인터뷰집을 의욕적으로 펴내고 있는 음악학자다.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인 진은숙의 작품 해설과 인터뷰를 담은 독일어 책 '진은숙, 미래의 악보를 그리다'를 우리말로 옮겼고, 최근에는 현대음악사를 정리한 '메트로폴리스의 소리들'(휴머니스트)을 펴냈다. 대체로 클래식 음악책에서는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 같은 20세기 작곡가들이 마지막에 나오지만, 그의 책에서는 거꾸로 맨 처음에 등장한다. 이씨의 책 마지막은 탄둔(중국)과 진은숙처럼 지금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곡가들의 차지다. 이씨는 "대중음악이든 클래식이든 내게 음악은 언제나 당대(當代·contemporary)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학·사회학·인류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음악을 이론적으로 풀이하는 음악학은 유럽에서 19세기부터 독립적인 분야로 대접받았다. 이씨는 "음악학은 '왜 음악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가' '어떤 연주는 왜 다른 연주보다 빼어난가' 같은 질문에 대해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당장 학문 이름부터 낯설다. 하지만 그는 "음악학자라고 소개하면 '그럼 연주는 안 해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며 웃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7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이씨는 서울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하지만 완전무결한 테크닉을 강조하는 엄격한 교육 풍토에서 이씨는 좀처럼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연습은 하루에 3시간 이상 해본 적이 없었고, 실기 점수도 88점이 최고 점수였죠." 서울대 작곡과에 이론 전공(음악학)이 생긴다는 소식에 이씨는 음악을 '연주'하는 대신에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1983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뒤부터 조금씩 사회의식에 눈 떴다. 1987년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간 뒤에는 문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연극·영화·탈춤·그림 등에 관심 있는 예술인들이 조직한 민중문화운동연합과 그 후신(後身)인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에서 3년간 활동했다. 시인 김정환, '그날이 오면'의 작곡가 문승현, 미학자 진중권 등도 그때 만났다. 학교보다는 집회 현장을 다니다 보니, 석사과정은 6년 만에야 마쳤다. 1995년 독일 베를린 예술대로 유학을 떠나 2000년 리게티 음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음악은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비인기 종목'으로 홀대받기 일쑤다. 하지만 이씨는 "대중음악이 매일 즐기는 된장찌개라면, 현대음악은 딤섬처럼 가끔 맛보는 별미(別味)"라고 비유했다. 2차 대전 직후 극한적 실험으로 치달았던 아방가르드 음악 때문에 현대음악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청중도 많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1980년대부터는 현대음악의 극단적인 성격에서 탈피해 강한 개성이나 대중성을 드러내는 작품도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21세기 들어서 아시아 현대음악에 대한 세계 음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중국·일본에 비해서 세계 시장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국의 현대음악은 저평가된 기대주"라고 말했다.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인 '아르스 노바' 등을 통해서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관객 저변이 넓어진다면, 향후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는 "하드코어 록(hardcore rock)이나 프리재즈(free jazz) 마니아도 있는 마당에 현대음악 애호가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