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장’ 미스터리, 단원 김홍도 그림인가

  • 뉴시스

입력 : 2016.02.22 09:40

【서울=뉴시스】신동립 ‘잡기노트’ <570>

‘단원 김홍도 인장 찍힌 그림 주장, 진위관심’(2월5일 뉴시스) 보도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많다. 문제의 그림과 낙관이 단원(檀園) 김홍도(1745 ~1806?)의 것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다.

‘其人 姓金氏 名弘道 字士能 號丹邱 古加耶縣人也’(그 사람의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홍도, 자는 사능, 호는 단구이며 옛 가야현 사람입니다)라고 새겨진 단원의 대형 인장(12×12㎝)은 그 존재가 문헌에만 기록돼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단구는 단원의 여러 호 중 하나)

그림(170×130㎝) 상단 한가운데에 바로 그 인장을 찍은 단원의 그림이라는 것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19년 전 중국 베이징 구완청(古玩城)에서 입수했는데, 이전까지는 지린성 자료관(檔案館)이 보관했다는 것이 현 국내 소장자의 말이다. 이 도장과 그림을 감정한 화가 황원철 명예교수(국립창원대 미술학)가 몇몇 의문점들에 답했다. 경남도립미술관장을 지낸 황 교수는 그림 속 단원의 인장은 단원의 것이 아니라고 봤다. 단원이 스스로 판 도장이 아니어서 ‘其人’(그 사람)이라는 3인칭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조선이 청나라에 예물로 보낸 작품인데, 그림을 그린 이가 누구인지 표기해야 하지만 사사로이 글로 쓸 수 없어 왕실이 인장으로 제작해 찍은 것”이라는 추정이다.

커다란 도장을 그림 위 한복판에 날인한 이유도 분석했다. “작가 자신의 인장이라면 대개 하단 모서리에 찍지만, 앞서 밝혔듯 그 인장은 조선왕실이 그림의 작가가 누구인지를 표기한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제3자의 그림 감상평이나, 누가 그린 그림이라는 문구를 그림의 여백에 표시했다. 이러한 화제(畫題)의 위치는 작품 상단이 주를 이룬다. 청 황실에 보내는 예품이기에 같은 이유, 즉 사사로이 글로써 표기할 수 없어 인장으로 화제를 대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림에 비해 인주의 색깔이 지나치게 선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림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보정하는 과정에서 채도를 높이다 보니 붉은색이 지나치게 도드라져 보일뿐 실물은 그렇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 도장은 ‘근역인수(槿域印藪)’에서만 볼 수 있다. 서예가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이 조선 초~근대 서화가들의 날인을 집대성한 책이다. 황 교수는 “단원의 인장은 조선왕실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규장각에 보관돼 있을 것이다. 위창이 규장각에서 이 인장을 영인하고 자신이 편찬한 근역인수에 수록했을 것이다. 이 인장이 지금 규장각에 없다면 다른 왕실유물들처럼 일제의 수탈로 일본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림 소장자는 “조선 정조대, 왕명으로 만들어 날인케한 어람지보(御覽之寶)다. 이 그림 외에는 어디에도 날인한 사실이 없다. 중국의 황제가 친견한 서화나 황제의 작품에는 어람지보나 어인 또는 황인이 반드시 작품 중앙 상단에 날인돼 있다. 청나라 서태후의 ‘龍(용)’자 작품 낙관의 위치도 중앙 상단이다. 따라서 친히 작품을 확인하고 보낸다는 의미로 정조대왕이 중국황제처럼 같은 위치에 날인한 것이다. 다만, 두루마리처럼 긴 작품에는 우측 상단에 날인한다”고 전했다.

문화부국장
  • Copyrights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