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죽음덕분에 편히 살고있는 우리, 박근형 연극 '모든군인은불쌍하다'

  • 뉴시스

입력 : 2016.02.05 09:59

2015년 한국, 1945년 일본 오키나와, 2004년 이라크 팔루자,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이다.

젊은 탈영병, 일제 말기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가 된 조선인, 이라크에서 미군 식품업체에 배달하다가 납치된 평범한 선교사, 서해에서 선박 침몰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사연도 저마다 다르다.

"저 살고 싶어요." 그런데 모두 한 목소리를 낸다.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53) 대표가 쓰고 연출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군대와 전쟁, 국가와 거대담론 아래 가려졌던 이 외침을 무대 위로 호출한다. 과거 역사의 잔재로 기억하기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동력으로 삼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군인의 모습, 반복되는 불행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로 귀결된다.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지만 전개 과정은 가라앉은 분위기가 아니다. 속도감 있는 장면 전환과 배우들의 움직임이 역동적이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상황에 함께 등장하는 다양한 음악, 자막과 영상 등 다큐멘터리 요소는 현실과 연극적 환상을 넘나드는 장치다.

박 연출은 1999년 연극 '청춘예찬'으로 그해 연극계의 모든 상을 휩쓸며 평단과 관객에게 이름을 알렸다. '선착장에서', '경숙이, 경숙아버지', '너무 놀라지 마라' 등으로 호평 받아왔다. 대체로 현대 소시민의 일상과 아픔을 무겁지 않게 묘사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박 연출은 "국가 간 거래, 전쟁, 시스템 속에서 자의 또는 타의적으로 강요받는 군인들의 죽음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의 서사 위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며, 죽음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기억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박 연출은 지난해 9월 연극계에 불었던 '검열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당시 도종환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창작산실 연극 부문 선정과정에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빼달라는 식으로 심의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2013년 박정희 대통령을 풍자한 연극 '개구리'로 연극계 안팎에 논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열린 '2016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간담회에서 "연극을 많이 해왔고 앞으로도 하지만, 이 작품(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을 같이 연습한 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며 "다행히 남산예술센터에서 기회를 줘서 배우들에게 빚진 것을 갚게 됐다"고 말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의 올해 시즌을 여는 작품이다.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이 작품에 대해 "여러가지 중첩되는 사회적 이슈도 있고, 새로운 면모도 나온다. 희곡 자체로 가치가 있다.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다"라고 봤다.

연극 '겨울이야기' '맨 끝줄 소년'으로 재조명된 박윤희,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차이메리카'의 성노진, TV와 영화를 오가는 골목길의 간판 고수희를 비롯해 오순태, 강지은, 서동갑, 권태건, 이원재, 김동원, 신사랑 등이 나온다.

'천개의 눈' '햇빛샤워' 등 남산예술센터에 오른 작품의 무대를 미학적으로 빛낸 무대 디자이너 박상봉, '즐거운 복희'로 제2회 서울연극인대상 스태프부문을 수상한 조명 디자이너 김창기가 합류했다.

'2016년 페스티벌 도쿄'에 초청받아 10월 일본 도쿄에서도 공연한다. 3월 10~27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1만8000~3만원. 02-758-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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