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 민간극단들 품다…어떻게

  • 뉴시스

입력 : 2016.02.01 09:54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는 국립극단과 함께 한국의 연극을 주도하는 국공립극장의 두 바퀴 중 하나다. 지난해 4월 명동예술극장과 통합한 국립극단은 안정적인 프로덕션으로 고급 연극을 선보이고 있다.

2009년 재개관 이후 창작 초연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남산예술센터는 신구 가릴 것 없이 탄탄한 연출·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으로 신선함에 목마른 연극계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민간 극단과 활발한 협업이 특징이다.

올해 라인업만 해도 내로라하는 극단과 공동 작업이 수두룩하다. 연극사의 한 축인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을 비롯해 지난해 연극상을 휩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극작가 겸 연출 고선웅, 평단의 호평을 받은 '햇빛샤워'의 극작가 겸 연출 장우재, '세월호'를 다뤄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비포 애프터'의 이경성 연출 등이 포함됐다.

2009년 남산예술센터가 재단장했을 때 '가정방문'으로 고선웅 연출과 호흡을 맞춘 고연옥이 고 연출과 다시 의기투합한다. 윤한솔 연출같이 개성 강한 연출가와 김민정 연출, 구자혜 연출, 적극 연출, 김수정 연출 등 대학로의 떠오르는 창작진도 힘을 싣는다. 정은영 연출은 본래 미술 작가다.

지난해 9월 부임한 우연(45)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에 대한 기대감도 한몫했다. 그간 조선희 대표가 이끄는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본부 극장운영팀이 운영을 해왔는데 산하 독립 부서가 되면서 우 극장장이 이를 맡게 됐다. 극장의 특수성을 인정한 셈이다.

연극계에서 경력을 시작한 우 극장장은 서울세계무용축제 기획실장, 서울예술단 기획PD,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장, LIG문화재단 기획실장 등을 지내면서 실력을 쌓았다. 그녀에 대한 기대감으로 쟁쟁한 창작진이 모여들었다. 올해 프로그램을 보고 벌써부터 긍정적인 변화가 느껴진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우 극장장은 그럼에도 "천천히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기획위원 등으로 남산예술센터의 일을 해왔던 터라 낯설지는 않다. "남산예술센터는 제작극장으로서 이미 자리를 잡았다. 창작 초연, 한국 창작극 중심으로 기본 정체성 설정이 잘 돼 있다. 그 부분에서 존중감을 가지고 있다. 입사 즉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싶지 않다. 시스템 문제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개별로 전문성을 더해야 한다. 나는 조직이 활기를 띨 수 있도록 윤활유 같은 역을 해야한다. 폼을 안 내고 내부적으로 착실히 하고 싶다." 외부의 민간 극단과 연대하고 협업하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우리 극장은 외부 단체들과 공동 협업 구조다. 국립극단과는 분업이 잘 돼 있다. 국립극단은 잘 만들어진 한국 대표 연극을 맡는다. 외롭거나 리스크가 있거나 논쟁적일 수 있는…, 이런 작품들도 수용될 수 있는 공공 극장도 있어야 한다. 공동 제작이지만, 단체들 판단에 비중을 둔다."

연극계가 우 극장장에게 거는 기대가 높은 이유는 연극판에만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용, 전통음악, 다원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잡식성 예술가'여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는 판단들이다.

"변화는 기운에 따라야 한다. 기본적으로 텍스트 중심의 연극에 대한 제작방식을 존중한다. '이제부터 바로 달라질 거야'는 가당치도 않다. 그러한 기본 토대 위에서, 계단을 밟듯이 벽돌 쌓듯이 가야 한다. '방향성' '정체성'이 선언을 한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 역시 평생을 두고 쌓아가는 것 아닌가. 큰 변화라기보다는 있는 자산들이 잘 쓰여지게 만들고 싶다."

최근 남산예술센터의 '2016 시즌 프로그램' 소개는 정치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지난해 연극계에 불어닥친 '검열 논란'의 중심인 박근형 연출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라인업에 든 탓이다.

"공모를 통해 들어온 작품 중에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최고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이다. 나와 제작 PD들이 심사에 관여할 수 없었지만 올리고 싶을 만큼 희곡이 좋았다. 민간 극장이 스스로 하기에는 작품 규모도 꽤 크다. 최대 30명이 나오는 작품이니. 박 연출은 주로 '콩가루 가족사'를 다룬 작품을 했는데 이번 작품에 여러가지 중첩되는 사회적 이슈도 있고, 새로운 면모도 나온다. 희곡 자체로 가치가 있다.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세계무용축제,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 몸 담으면서 구축한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있음에도 "성과 내기에 급급한, 무조건적인 해외 네트워킹은 지양하겠다"는 자세다. "여기 환경이 중요하다. 해외에 나가서 공연한다고 해서 우리 창작 여건이 달라진다거나 큰 변수를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건 국제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다. 세계 시민으로서 세계 사회를 같이 보는 것이다. 여기서 '마카다미아'(구자혜 연출의 데피니틀리-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을 해도 독일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지. 제일 중요한 건 작품의 가치를 정확히 전달하면서, 원래의 상태로 갈 수 있느냐다. 해외 시장이라고 다 똑같은 해외 시장이 아니다. 유통에만 목숨거는 건 무의미하다. 지적인 연대가 가능한 사람끼리 다 된다.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이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올해 10월 '페스티벌 도쿄'에 초청됐으며 '변칙 판타지'(가제·정은영 작·연출, 10월 개막)는 올해 요코하마 공연예술미팅(TPAM)에서 프레 프로덕션 단계를 지원받아 리서치를 하고 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을 마치고 2017년부터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무대로 진출할 예정이다.

우 극장장의 남산예술센터가 주목 받는 이유 중에는 '쿨'함도 있다. 그녀는 구자혜 연출이 '커머셜, 데피니틀리-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에서 남산예술센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 기대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래 2015 혜화동1번지에서 실험적으로 선보인 작품인데 구 연출은 현실과 공간을 꼬아서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우 극장장은 "현대사회가 너무나 다원화돼서 기승전결 구조로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며 "극장 구조를 뒤짚는 연극형식을 선보이거나, 과거를 호출하는 개념으로 동시대성이 폭팔할 수 있다"고 짚었다.

안미영 팀장, 도재형 PD, 김민영 PD, 조유림 PD 등 남산예술센터 PD들 역시 우 극장장을 향한 기대치가 높다. 극장과 협업의 다리를 놓아주는 민간 극단을 "우리 극단"이라고 칭할 만큼 애정이 많은 이들이다.

안 팀장은 "민간 극단 입장에서는 극장과 진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한데 그간 극장장이 부재해서 예술적인 동력이 부족하고 피로도가 쌓이는 상황이었다"며 "전문가인 우 극장장이 오면서 좋은 창작진이 모여들고 있다. 2017년 프로그램 논의도 벌써부터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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