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29 03:00 | 수정 : 2016.02.29 16:02
[배우 하정우 호림미술관 개인전]
하와이에서 그린 60여점 전시… 종이쇼핑백 도화지 삼아 스케치
지난해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 전시회에서 그가 말했다. 당분간 이 '화가'의 그림은 보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호림미술관에 60여점의 작품을 들고 그가 나타났다. 배우 하정우(38·본명 김성훈).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Nespresso)와 컬래버레이션(협업)해 마련한 하정우 개인전이었다. 지난해 10~11월 미국 하와이에서 지내면서 그린 스케치 가운데 50여점과 연말에 작업한 10여점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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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되지 않았다. 도처에 널려 있는 종이 쇼핑백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장을 보기 위해 수퍼마켓에 자주 갔는데 늘 종이 쇼핑백에 물건을 담아주더라고요. 집에 쌓여가는데 그게 눈에 밟히는 거예요. '저거 참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다 쇼핑백에 적혀 있는 '리사이클(recycle·재활용)'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하정우는 쇼핑백을 뜯어 오렸다. 그 쇼핑백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근처 공원에서 본 앵무새·독수리·올빼미 같은 새들과 알록달록한 꽃들부터 담았다. 하지만 하정우의 핵심 피사체는 사람이었다.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들도 그렸지만 스케치한 사람들의 절반은 제 지인들, 친구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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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과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한 스케치 옆에 문득 떠오른 문구를 적어놓기도 했다. 야윈 남자를 그려놓고 '사랑의 선물을 주세요(Give a gift of love)'라 쓴다든지,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그리고 '나는 사랑에 빠진 게 아니다. 이건 스쳐 지나가는 바보 같은 순간일 뿐이다'라 적기도 했다. 쇼핑백에 적혀 있는 '쇼핑백을 재활용하세요(please recycle this bag)'나 '손잡이를 위로 잡아당기세요(pull handles up)' 같은 문구를 살리기도 했다. 하정우는 "그림 도구를 따로 챙겨 가지 않아 파스텔을 사용했다"며 "낙서하듯 끼적이다 보니 어느새 69점이나 그렸더라"고 했다.
그림은 하정우가 연기와 더불어 자신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이다. 그는 201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매년 꾸준히 그림을 소개해 왔다. 그림값도 중견 화가 수준으로 최고 1800만원에 이른다. 하정우는 "값어치를 인정받아 기분이 좋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 'What Else'에서 캔버스에 작업한 10여점에는 대부분 하와이 현지 사람들이 담겨 있다. 구릿빛 피부와 원색 옷이 화려하게 표현됐다. "그동안 주로 아크릴 물감을 썼는데 이번엔 다양한 색감과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오일 페인팅 작업을 선택했어요."
대표작은 머리 위에 10개의 꽃송이 뭉치를 잔뜩 단 한 남자 얼굴이다. 제목은 '아임 레디 포 마이 클로즈업(I'm ready for my close-up)'. '작가 김성훈'과 배우 하정우는 분리될 수 없는 듯했다. "영화 촬영할 때 클로즈업 샷이 상당히 중요해요. 그래서 처음엔 클로즈업 장면부터 찍는 경우가 많아요. 2016년의 처음을 잘 시작하고픈 마음에서 이렇게 이름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