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25 03:00 | 수정 : 2016.02.29 15:15
[달빛 안갯길]
日 실존 인물 쓰다 소기치 등장, 문제의식 갖춘 보기 드문 시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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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소기치(津田左右吉·1873~1961)라는 실존 인물이 연극 등장인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는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몸을 담았으며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사실이 아니라고 격하한 역사학자다. 연극 '달빛 안갯길'(신은수 작, 신동인 연출)에 나오는 쓰다(남명렬)는 신사적이고 정중한 풍모를 지녔지만, 사실은 조선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지닌 캐릭터다.
쓰다는 한국 사학계의 한 대가(大家)를 연상시키는 젊은 조선인 제자 이선규(정원조)와 함께 발굴 조사를 하러 영주 부석사로 간다. 마침 그곳엔 영친왕의 약혼녀였으나 강제로 파혼당한 민갑완(김유리)이 머물며 상하이행 탈출을 계획하고 있다. 발굴 작업 중 무량수전 앞에서 의상대사와 선묘의 전설에 나오는 석룡(石龍)이 발견되고, 천 년 넘게 잠들어 있던 선묘가 깨어나 민갑완과 만나게 된다.
하나씩 따져 보자면 '달빛 안갯길'은 허점이 많은 작품이다. 조선사편수회와 민갑완 망명 같은 '사실' 세계가 선묘의 환생이라는 '환상' 세계와 어울리는 모습은 좀 버겁고, 실제로 한사군의 위치 문제를 파고들었던 쓰다가 고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는 설정은 지나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견 거짓말처럼 보이는 신화와 전설이, 오히려 기록된 역사보다 더 큰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감동을 준다. 민갑완의 외삼촌 이기현(임형택)은 이성과 과학의 산물인 양 행세하는 식민사학에 대해 "그 천황이란 인간을 신이라며 목숨 바쳐 믿는 허무맹랑함은 뭔가?"라고 일갈한다. 마침내 '신화'의 가치를 깨닫게 된 이선규는 민갑완에게 "당신이 만난 선묘는 더 이상 안개 속 환상이 아니다"고 말하며 상하이로 떠나기를 권한다.
광복 전후 의친왕 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거울 속의 은하수'(2014)에 이은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작품이다. '팩션'이나 '퓨전' 대신 문제의식을 갖춘 보기 드문 시대극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2월 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공연 시간 120분, (02)765-1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