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20 11:41
영화배우 겸 연극배우 김민재(37)는 연기를 하는 듯 하지 않는 묘를 발휘한다. 어느 배역을 맡든 극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어느새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는 인물이 된다.
작년은 이 명제를 증명한 해였다. 드라마 '스파이'의 국정원 대북정보분석팀 팀장 '송중혁',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의 파출소 근무 '한 경사', 영화 '무뢰한'에서 '김혜경'(전도연)을 괴롭히는 무뢰한 '민영기', 영화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에게 당하는 관할 담당경찰관, 판타지 멜로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가구 디자이너 '우진 78'…. 출연한 작품마다 그 배역으로 살아가는 듯했다.
연극에서는 그의 사실적인 연기가 더욱 부각된다. 극단 차이무의 20년 기념 페스티벌의 마지막 공연인 '양덕원 이야기'(극작 민복기·연출 이상우)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가족들이 경기 양평 양덕원의 고향집에 모인다. 3시간 후면 아버지가 별세한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고향마을 양덕원에 내려온 장남 '관우'와 차남 '관모', 그리고 막내딸 '영이'.
김민재는 가족의 기대를 한껏 받고 어릴 때부터 홀로 서울로 올라가 살아온 장남 '관우'다. 엄마를 살뜰히 챙기고, 동생들을 아우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도 은근히 삶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내비치는 그의 연기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것이다.
시대 배경은 1990년 말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온기가 남아 있던 때다.
대구에서 자란 김민재는 "시골의 감성이 남아 있다"며 웃었다. "외발 썰매를 타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개울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옛날 얘기하면서 싱글벙글이다. 동생들과 추억을 이야기하는 관우, 딱 그 모습이다. 고향마을 양덕원에 내려온 관우와 차남, 그리고 막내딸은 하루가 지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자 서울로 돌아간다. 이후 아버지가 다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집에 모인 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아버지는 석 달이 가깝도록 살아있다. 자식들은 이 과정에서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한다.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재산 분배 등 현실적인 고민에도 맞닥뜨리게 된다. 삶의 고민과 가족에 대한 상반된 감정으로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티격태격하는 세 남매의 모습은 현실적이다.
김민재는 "무대에 설 때 대단한 연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관우가 머지 않는 내 이야기 같더라. 내 자식들이 그런 순간에 맞딱드릴 때가 올 것 같고. 모든 사람이 다르지 않게 산다. 소금을 수입해서 장사하는 관우도 마찬가지고, 요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같다."
'양덕원 이야기' 연출을 맡은 이상우 예술감독과 민복기 대표가 이끄는 차이무와는 이번이 첫 작업이다. 번역극이 대다수이던 창단 당시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정서를 표현해 주목 받았다. 이상우 감독과는 영화 '황금연못'에서 작업한 적이 있는 김민재는 20대에 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03년 6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위크숍에서 발표한 윤영선의 '미생자'에 출연하면서 처음 그를 봤다. 그런데 김민재는 한예종에 적을 두고 있지 않았다. 문턱이 높다는 한예종에 8수 끝에 2006년에야 입학했다.
"이번에 관우 역으로 같이 하자고 해서 참 감사했다. 2003년 선생님과 작업 당시 당시 극장에서 먹고 자고 했었는데 오래 하지 못했다. 나는 계속 선생님과 선배들과 작업하고 싶었는데 선배들이 어느날 나오지 말라는 거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선생님이 배려를 해준 거더라."
김민재는 2004년 '양덕원 이야기' 첫 회 공연을 봤다. 약 11년 만에 다시 출연하게 됐으니 이처럼 인연의 끈은 길게 이어진다.
글도 쓰고 연출도 공부한 김민재는 "서른을 갓 넘겼을 때는 몰랐는데 작업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은 내가 좋아한 연기의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더라"고 털어놓았다. "괜히 남과 비교를 하고,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나랑 상관 없는 잘못된 문화에 휩쓸기기도 하고, 사람 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상우 선생님을 뵙고, 차이무와 작업하고, 연극에 출연하면서 힐링이 되는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양덕원 이야기'가 선물이 됐다"며 눈을 빛냈다. "난 같은 연기라도 매번 다르게 하려고 한다. 약속을 지켜서 하는 걸 중시하는 배우들 입장에서는 피곤한 일이지. 하하. 근데 차이무 역시 마찬가지다. 다들 감싸주는 연기를 한다. 보이지 않는 기운들로 서로 서로를 품는 거지."
'차원 이동 무대선(船)'이라는 뜻을 지닌 '차이무'는 '관객을 태우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뭔가 달라지겠다는 마음부터 시작을 해야 새로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김민재는 민준호 대표가 이끄는 극단 공연배달서비스간다 소속이다. 한예종 출신들이 주축이 된 이 극단은 자유롭게 뭉쳤다 흩어졌다 하는 집단인데 재기발랄함과 연극에 대한 애정으로 대학로에서 마니아층을 구축하고 있다. '유도소년', '뜨거운 여름', 김민재가 출연하기도 한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등이 대표작이다. 역시 화려되지는 않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데워주는 따듯한 작품들이다.
"'양덕원 이야기' 같은 작품에 출연하면 스스로도 미묘하게 변하는 걸 느낀다. 힘든 부분들이 절로 치유되는 거다." 보는 이들도 훈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31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2관. 엄마 박지아·이지현, 지씨 강신일·정석용, 관우 박원상·김민재, 관모 김두진, 영이 김미수. 러닝타임 80분. 3만원. 극단 차이무·인터파크 티켓. 1544-1555
작년은 이 명제를 증명한 해였다. 드라마 '스파이'의 국정원 대북정보분석팀 팀장 '송중혁',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의 파출소 근무 '한 경사', 영화 '무뢰한'에서 '김혜경'(전도연)을 괴롭히는 무뢰한 '민영기', 영화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에게 당하는 관할 담당경찰관, 판타지 멜로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가구 디자이너 '우진 78'…. 출연한 작품마다 그 배역으로 살아가는 듯했다.
연극에서는 그의 사실적인 연기가 더욱 부각된다. 극단 차이무의 20년 기념 페스티벌의 마지막 공연인 '양덕원 이야기'(극작 민복기·연출 이상우)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가족들이 경기 양평 양덕원의 고향집에 모인다. 3시간 후면 아버지가 별세한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고향마을 양덕원에 내려온 장남 '관우'와 차남 '관모', 그리고 막내딸 '영이'.
김민재는 가족의 기대를 한껏 받고 어릴 때부터 홀로 서울로 올라가 살아온 장남 '관우'다. 엄마를 살뜰히 챙기고, 동생들을 아우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도 은근히 삶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내비치는 그의 연기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것이다.
시대 배경은 1990년 말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온기가 남아 있던 때다.
대구에서 자란 김민재는 "시골의 감성이 남아 있다"며 웃었다. "외발 썰매를 타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개울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옛날 얘기하면서 싱글벙글이다. 동생들과 추억을 이야기하는 관우, 딱 그 모습이다. 고향마을 양덕원에 내려온 관우와 차남, 그리고 막내딸은 하루가 지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자 서울로 돌아간다. 이후 아버지가 다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집에 모인 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아버지는 석 달이 가깝도록 살아있다. 자식들은 이 과정에서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한다.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재산 분배 등 현실적인 고민에도 맞닥뜨리게 된다. 삶의 고민과 가족에 대한 상반된 감정으로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티격태격하는 세 남매의 모습은 현실적이다.
김민재는 "무대에 설 때 대단한 연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관우가 머지 않는 내 이야기 같더라. 내 자식들이 그런 순간에 맞딱드릴 때가 올 것 같고. 모든 사람이 다르지 않게 산다. 소금을 수입해서 장사하는 관우도 마찬가지고, 요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같다."
'양덕원 이야기' 연출을 맡은 이상우 예술감독과 민복기 대표가 이끄는 차이무와는 이번이 첫 작업이다. 번역극이 대다수이던 창단 당시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정서를 표현해 주목 받았다. 이상우 감독과는 영화 '황금연못'에서 작업한 적이 있는 김민재는 20대에 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03년 6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위크숍에서 발표한 윤영선의 '미생자'에 출연하면서 처음 그를 봤다. 그런데 김민재는 한예종에 적을 두고 있지 않았다. 문턱이 높다는 한예종에 8수 끝에 2006년에야 입학했다.
"이번에 관우 역으로 같이 하자고 해서 참 감사했다. 2003년 선생님과 작업 당시 당시 극장에서 먹고 자고 했었는데 오래 하지 못했다. 나는 계속 선생님과 선배들과 작업하고 싶었는데 선배들이 어느날 나오지 말라는 거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선생님이 배려를 해준 거더라."
김민재는 2004년 '양덕원 이야기' 첫 회 공연을 봤다. 약 11년 만에 다시 출연하게 됐으니 이처럼 인연의 끈은 길게 이어진다.
글도 쓰고 연출도 공부한 김민재는 "서른을 갓 넘겼을 때는 몰랐는데 작업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은 내가 좋아한 연기의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더라"고 털어놓았다. "괜히 남과 비교를 하고,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나랑 상관 없는 잘못된 문화에 휩쓸기기도 하고, 사람 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상우 선생님을 뵙고, 차이무와 작업하고, 연극에 출연하면서 힐링이 되는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양덕원 이야기'가 선물이 됐다"며 눈을 빛냈다. "난 같은 연기라도 매번 다르게 하려고 한다. 약속을 지켜서 하는 걸 중시하는 배우들 입장에서는 피곤한 일이지. 하하. 근데 차이무 역시 마찬가지다. 다들 감싸주는 연기를 한다. 보이지 않는 기운들로 서로 서로를 품는 거지."
'차원 이동 무대선(船)'이라는 뜻을 지닌 '차이무'는 '관객을 태우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뭔가 달라지겠다는 마음부터 시작을 해야 새로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김민재는 민준호 대표가 이끄는 극단 공연배달서비스간다 소속이다. 한예종 출신들이 주축이 된 이 극단은 자유롭게 뭉쳤다 흩어졌다 하는 집단인데 재기발랄함과 연극에 대한 애정으로 대학로에서 마니아층을 구축하고 있다. '유도소년', '뜨거운 여름', 김민재가 출연하기도 한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등이 대표작이다. 역시 화려되지는 않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데워주는 따듯한 작품들이다.
"'양덕원 이야기' 같은 작품에 출연하면 스스로도 미묘하게 변하는 걸 느낀다. 힘든 부분들이 절로 치유되는 거다." 보는 이들도 훈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31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2관. 엄마 박지아·이지현, 지씨 강신일·정석용, 관우 박원상·김민재, 관모 김두진, 영이 김미수. 러닝타임 80분. 3만원. 극단 차이무·인터파크 티켓. 1544-1555
- Copyrights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