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젊은 지휘자 최수열, 정명훈 떠난 서울시향 잘 지켰다

  • 뉴시스

입력 : 2016.01.18 09:47

말러 교향곡 6번의 나무 망치 소리가 이처럼 비장하게 들린 기억은 없다. 4악장에서 나무판을 세 번 둔탁하게 내려칠 때 '턱'하고 심장이 주저앉았다. 하염없이 침잠했다. 그러나 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두움 속에서도 이를 발판 삼아 딛고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벼려졌다.

'비극적'이라는 부제를 단 이 곡에서 말러의 개인적인 비극을 담은 세 번의 망치 소리는 서울시향의 결연한 의지이기도 했다.

정명훈(63) 전 예술감독이 지휘하기로 했던 말러 교향곡 6번을 약 80분 간 이끌어간 최수열(37) 부지휘자와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은 1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자신들의 사운드가 여전히 견고함을 증명했다.

말러 교향곡은 서울시향을 대표하는 레퍼토리로 꼽힌다. 서울시향은 2010년부터 2011년 정 전 감독과 함께 말러 사이클을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국내 음악계에 '말러 신드롬'을 일으킨 바 있다. 말러 교향곡 6번은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재계약을 앞두고 11번째 음원 확보를 위해 오랜 시간 준비를 해온 프로젝트다.

이날 공연 프로그램은 전날 밤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서울시향의 두 번째 정기연주회와 같다. 하루 전 수준 높은 사운드를 들려줬음에도 초반에는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최 부지휘자와 서울시향 단원들은 이날 달라져 있었다. 처음부터 제 기량을 뽐냈다. 한층 여유롭고 부드러운 태도로 자신들이 평소 들려준 말러 사운드를 연주해냈다.

이날 공연은 서울시향의 본격적인 시험무대였다. 지난 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정 전 감독 없이 처음 벌인 올해 첫 정기 공연에서는, 긴박하게 투입된 거장 크리스토퍼 에센바흐의 노련미가 서울시향의 탄탄한 사운드를 포착했다. 말러 교향곡 6번은 서울시향이 정 전 감독을 대신해 섭외한 해외 지휘자들이 프로그램 변경을 요청했을 정도로 이끌어가기가 만만치 않은 곡이다.

서울시향은 그러나 올해 청중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고수했고, 이 곡에 대한 이해도와 서울시향의 어려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 부지휘자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최 부지휘자의 진정한 홀로서기 무대이기도 한 셈이다.

최 부지휘자와 서울시향 단원들의 기량이 빛난 때는, 연주시간만 30분에 달하는 제4악장이었다. 현악기들은 폭풍우에 휩싸인듯 격정적인 음색을 빚어냈고, 관악기들은 그 혼란스러움에서도 광명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었다. 특히 트럼펫 객원수석 다비드 게리에의 튀지 않으면서도 부각되는 소리는 중심을 잡았다. 사운드의 향연에 등대 역을 기꺼이 떠맡았다.

워낙 다채로운 구성으로 이뤄진 악장이어서 이런 성향들이 맞부딪히며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최 부지휘자는 정 전 감독이 다져놓은 사운드에 젊음과 부드러움을 얹었다.

전체 연주가 끝나고 최 부지휘자가 지휘봉을 든 손을 내릴 때까지 이어지는 침묵의 여백, 단원들과 청중은 서울시향 사운드에 대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만족감을 내비쳤다.

앞서 연주한 행진곡 풍의 제1악장은 쫓기는듯 했으나 긴박하지는 않았다. 빠르고 격렬한 스케르초의 2악장에서는 난도에도 불구, 긴장과 이완의 조율이 알맞았다. 목가적인 우수가 깃든 3악장은 처절함의 4악장을 위한 준비곡으로서 농도가 짙지도 묽지도 않았다.

최 부지휘자는 연주를 끝내고 "보통 연주 때 작품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이번 공연은 서울시향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중 하나였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큰 책임감과 소속감으로 공연에 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공연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어제 공연이 에너지와 집중력이 높았던 공연이었다면 오늘 무대는 두번째 연주인만큼 나와 단원들 모두 큰 방향성 안에서 완급조절을 하며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말러 6번은 넘어야 할 큰산에 비유될만큼 지휘자나 악단에게 쉽지 않은 작품임에도 단원, 스태프들과 함께 잘 넘긴 것 같다"며 흡족스러워했다. 연주 후 객석의 기립박수가 이를 입증했다.

말러 교향곡 6번을 들려준 2부에 앞서 1부에서는 모차르트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들려줬다.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김다솔의 사려 깊은 연주가 돋보였다. 전날 공연의 청중수는 매진에 가까운 2132명이었다. 이날 같은 프로그램이었음에도 1867명이 객석을 지켰다.

서울시향은 최 부지휘자와 함께 다져진 사운드를 유지하기 위해 당분간 다방면으로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조만간 대표이사 자문기구인 '지휘자 발굴 위원회'를 구성해 정 전 감독의 후임을 논의할 예정이다. 루세브를 비롯해 올해와 내년 상반기까지 계약된, 정 전 감독과 인연으로 합류한 단원들과도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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