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14 09:32

스무살 헨리는 어느덧 여든이 됐다. 그는 뇌수술을 받았다. 발작 뒤에 찾아오는 기억 상실 때문이다.
피아노 연주법을 잊었다. 죽은 아내도 하염없이 기다린다. 마지막에 그의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는 말, 기억보다 많은 걸 품고 있다.
연극 '인코그니토(Incognito)' 끝 장면은 환유(換喩)의 풍경이다. 흑백의 피아노 건반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닮았다. 같은 모양새지만, 음의 높낮이가 다르다. 연주하는 사람마다 소리가 다르다. 어떤 손가락은 가늘고, 어느 손가락은 굵고 뭉툭하다. 똑같은 피아노라도 투명하거나 묵직한 이유다.
환유는 어떤 하나의 사물 또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것과 연관이 깊은 다른 걸 이용하는 표현법이다. '인코그니토'는 수많은 환유들로 장관을 이룬다.
영국의 떠오르는 극작가 닉 페인(31)의 작품으로 이번에 국내 초연인 '인코그니토'는 수많은 조각들로 구성됐다.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뇌'를 빼낸 실존 인물 토머스 하비, 실제 뇌과학 분야에서 연구사례로 널리 알려진 기억상실증 환자 헨리 구스타프 몰래슨, 결혼생활이 파경을 맞은 후 동성연인을 만나려고 한 임상 신경심리학자 마샤.
세 개의 이야기를 큰 축으로 총 31개 장면으로 나뉜다. 기억의 3단계인 약호화 11개 장면, 저장 9개 장면, 인출 11개 장면이 나열되듯 이어진다. 그런데 1995년 미국, 1953년 영국, 2013년 영국 등으로 시공간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배역은 총 21명이 연기해야 할 분량. 그런데 이를 윤다경, 김대진, 장지아, 남윤호 등 단 4명의 배우가 1인 다역으로 연기한다.
'인코그니토'은 영어로 '자기 신분을 숨기고' '가명으로'라는 뜻이다. 각기 다른 장면들은 마치 서로가 서로의 환유가 된 것처럼 투영되고 반영된다. 뇌가 끊임없이 속임수를 쓴다는 마샤의 주장은, 헨리의 기억상실과 연결되고, 헨리의 뇌가 연구대상이 되듯, '우주의 비밀'을 숨겨놓은 듯한 아인슈타인의 '천재적인 뇌'도 집중조명 대상이 된다.
미국과 영국이 배경이고, 뇌과학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주요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와 감정의 출렁임은 지극이 일상적이다. 스크린 자막으로 설명되는 연도와 인물들의 이름을 자칫 놓치면 내용이 퍼즐처럼 뒤섞일 수도 있다.
페인은 시간과 공간의 장난꾸러기라 할만하다. 지난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별무리' 역시 사랑이 이뤄지는 과정을 천체물리학의 평행우주이론과 접목했다. 양봉업자 '롤런드'와 천체물리학자 '마리앤'의 로맨스를, 이들의 대화를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하면서 그렸다.
두 작품 결국 점층법이다. 구절이나 문장에서 환기하는 이미지나 관념의 범위 등이 진행될수록 확장되는 점층법처럼 초반의 자잘한 이야기들은 점차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야기들로 확장되고 막판에 결국 퍼즐로 완성된다.
우리의 인생, 특히 기억이 그렇다. 수많은 조각들로 돼 있고 게다가 '인코그니토'처럼 시간과 공간이 뒤섞여 있다. 어떤 건 지극히 일상적이다. 그럼에도 결국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지 않는가. 결국 '인코그니토'의 거대해보일 수 있는 이야기는 결국 각자 인생 또는 기억의 환유다. 그래서 공감이 든다.
대사량이 워낙 많아 종종 발음이 씹힐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함에도 윤다경, 김대진, 장지아, 남윤호 네 배우의 연기는 빼어나다. 특히 남윤호는 다른 역을 연기하다가, 목소리에 힘을 빼고 허리를 굽히면 진짜 헨리가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페르귄트' 등 고전 외에도 '크레이브', '히에론: 완전한 세상' 등 최근 지속적으로 현대 해외 작가들의 작품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호평 받은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대표가 연출했다.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번역 성수정. 3만원. 인터파크티켓·두산아트센터·코르코르디움. 02-889-3561
피아노 연주법을 잊었다. 죽은 아내도 하염없이 기다린다. 마지막에 그의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는 말, 기억보다 많은 걸 품고 있다.
연극 '인코그니토(Incognito)' 끝 장면은 환유(換喩)의 풍경이다. 흑백의 피아노 건반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닮았다. 같은 모양새지만, 음의 높낮이가 다르다. 연주하는 사람마다 소리가 다르다. 어떤 손가락은 가늘고, 어느 손가락은 굵고 뭉툭하다. 똑같은 피아노라도 투명하거나 묵직한 이유다.
환유는 어떤 하나의 사물 또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것과 연관이 깊은 다른 걸 이용하는 표현법이다. '인코그니토'는 수많은 환유들로 장관을 이룬다.
영국의 떠오르는 극작가 닉 페인(31)의 작품으로 이번에 국내 초연인 '인코그니토'는 수많은 조각들로 구성됐다.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뇌'를 빼낸 실존 인물 토머스 하비, 실제 뇌과학 분야에서 연구사례로 널리 알려진 기억상실증 환자 헨리 구스타프 몰래슨, 결혼생활이 파경을 맞은 후 동성연인을 만나려고 한 임상 신경심리학자 마샤.
세 개의 이야기를 큰 축으로 총 31개 장면으로 나뉜다. 기억의 3단계인 약호화 11개 장면, 저장 9개 장면, 인출 11개 장면이 나열되듯 이어진다. 그런데 1995년 미국, 1953년 영국, 2013년 영국 등으로 시공간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배역은 총 21명이 연기해야 할 분량. 그런데 이를 윤다경, 김대진, 장지아, 남윤호 등 단 4명의 배우가 1인 다역으로 연기한다.
'인코그니토'은 영어로 '자기 신분을 숨기고' '가명으로'라는 뜻이다. 각기 다른 장면들은 마치 서로가 서로의 환유가 된 것처럼 투영되고 반영된다. 뇌가 끊임없이 속임수를 쓴다는 마샤의 주장은, 헨리의 기억상실과 연결되고, 헨리의 뇌가 연구대상이 되듯, '우주의 비밀'을 숨겨놓은 듯한 아인슈타인의 '천재적인 뇌'도 집중조명 대상이 된다.
미국과 영국이 배경이고, 뇌과학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주요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와 감정의 출렁임은 지극이 일상적이다. 스크린 자막으로 설명되는 연도와 인물들의 이름을 자칫 놓치면 내용이 퍼즐처럼 뒤섞일 수도 있다.
페인은 시간과 공간의 장난꾸러기라 할만하다. 지난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별무리' 역시 사랑이 이뤄지는 과정을 천체물리학의 평행우주이론과 접목했다. 양봉업자 '롤런드'와 천체물리학자 '마리앤'의 로맨스를, 이들의 대화를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하면서 그렸다.
두 작품 결국 점층법이다. 구절이나 문장에서 환기하는 이미지나 관념의 범위 등이 진행될수록 확장되는 점층법처럼 초반의 자잘한 이야기들은 점차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야기들로 확장되고 막판에 결국 퍼즐로 완성된다.
우리의 인생, 특히 기억이 그렇다. 수많은 조각들로 돼 있고 게다가 '인코그니토'처럼 시간과 공간이 뒤섞여 있다. 어떤 건 지극히 일상적이다. 그럼에도 결국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지 않는가. 결국 '인코그니토'의 거대해보일 수 있는 이야기는 결국 각자 인생 또는 기억의 환유다. 그래서 공감이 든다.
대사량이 워낙 많아 종종 발음이 씹힐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함에도 윤다경, 김대진, 장지아, 남윤호 네 배우의 연기는 빼어나다. 특히 남윤호는 다른 역을 연기하다가, 목소리에 힘을 빼고 허리를 굽히면 진짜 헨리가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페르귄트' 등 고전 외에도 '크레이브', '히에론: 완전한 세상' 등 최근 지속적으로 현대 해외 작가들의 작품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호평 받은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대표가 연출했다.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번역 성수정. 3만원. 인터파크티켓·두산아트센터·코르코르디움. 02-889-3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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