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07 09:31
주목할 만한 창작뮤지컬이 나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판인 연말에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재기발랄한 상상력, 탄탄한 배우들의 호연으로 무장했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즐기다보면 한국사회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만든다.
◇시간을 보내지 말고, 살아내자 '명동로망스'
9급 공무원 '선호'는 매일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그러던 그가 과거로 간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1956년의 명동으로 떨어진다. 당시를 살아가던, 실존인물들을 만난다. 화가 이중섭(1916~1956), 시인 박인환(1926~1956), 작가 전혜린(1934~1965)
유명인들을 만났다는 설렘도 잠시다. 현실적인 고민 앞에 주저 앉는 예술가들 앞에서 무력한 자신이 고통스럽다. 이중섭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고, 박인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에 하늘만 쳐다본다. 전혜린의 문학적 고민은 부르주아의 장난으로 취급 받는다.
무엇보다 짧은 생을 불 같이, 치열하게 살아간 이들이다. '라테 아트'도 보여주며 이들과 친분을 쌓은 선호는 예술가들의 죽음을 막으려 하지만 부질 없다. 2015년 서울로 돌아온 선호는 한번에 크게 변하진 않을 테다. 하지만 그가 보내는 시간 안에는 이전보다 좀 더 다양하고 선명한 무늬가 새겨질 것이다. '명동로망스'는 선호의 성장담을 판타지 속에서도 과장되지 않게, 덤덤하게 그리며 현실 감각을 잃지 않게 한다.
'생명수' '시발송' 등 최슬기가 작곡한 넘버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귀에 감긴다. 덤덤하게 이북사투리를 쓰며 이중섭의 고뇌를 애절하게 그린 박호산의 이중섭이 눈에 밟힌다. 2016년 1월3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프로듀서 장재용·오득영, 연출 김민정, 음악감독 구소영, 극본·작사 조민형, 선호 배두훈·고상호. 러닝타임 100분. 전석 5만원. 프로스랩. 02-391-8223 ◇재기발랄함 속에 숨겨놓은 영리한 풍자 '지구 멸망 30일 전'
올해 '제9회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DIMF) 창작 뮤지컬상을 받은 작품. B급 유머와 풍자, 사랑스러움 등을 껴안는 재기발랄함으로 똘똘 뭉쳤다.
세기말 판타지 뮤지컬을 표방하는데, 시작은 현재의 결혼 풍속도를 그린다. 사랑보다 조건이 우선인 시대, 지구 최후의 순간이 통보된다. 유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30일 전.
결혼정보회사 직원 미스터 큐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 단 하나의 사과나무를 심듯, 자존심 회복을 위해 떨어진 결혼률을 올리기 위해 애를 쓴다. 결혼 커플은 점점 늘어나는데 재형은 혜원의 아버지이자 조폭 출신 엔터테인먼트 사장 오형두에게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오형두와 재형의 아버지는 원수지간. 재형의 형은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 혹여나 자식이 생기면, 가정을 이끌어가기 팍팍하기 때문이다.
출산율 하락, 애를 낳아 키우기 팍팍한 환경 등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판타지로 자연스레 풀어낸다. 본연의 섹시한 끼와 달리 발라드 가수로 활동해야만 하는 주소연 등을 통해 연예사업, 나아가 사회의 뒤틀린 구조도 짚는다.
그런데 전혀 무겁지 않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절대 안 돼"라는 아버지의 눈에 바로 흙을 뿌리는 혜원 등 대놓고 시도하는 B급 유머의 천연덕스러움 등 유쾌함으로 질주한다.
'뮤직 인 마이 하트' '카페인'의 성재준 연출은 이런 유쾌함을 엔진으로 삼고, 막판에 잇따른 두 번의 반전을 날개로 달아 재미·풍자·뜻하지 않는 감동까지 아우르는 묘를 발휘한다.
재형과 혜원 사이에서 엿볼 수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주로,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얽히는 합창곡이자 상징적인 장면으로 자리매김한 '원 데이 모어'의 패러디 등은 공연 팬의 보는 재미도 충족시킨다.
'전화해줘'의 청순함은 물론 섹시함과 순정녀 양면을 오가는 주소연 역의 하현지가 발군이다. 3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2관. 러닝타임 90분. 작곡 박성일, 안무 정도영, 출연 정민 황의정, 주민진 등 제작 심포니나인, PR 마케팅컴퍼니 아침. 4만4000~5만5000원. 인터파크티켓. 1544-1555
◇즐기다보면 현실과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까지 '상자 속 흡혈귀'
루마니아에서 온 생계형 흡혈귀들을 다뤘다는 점에서 MBC TV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성매매 등 현실에 더 밀착한 이야기와 막판, 존재 자체에 대한 외로움으로까지 이야기가 승화된다.
불멸의 존재이자 루마니아의 로열 패밀리였던 뱀파이어 '소냐' 가족. 백작인 가장이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한 뒤 엄마 '소냐'와 아들 '바냐', 딸 '아냐'는 생계를 위해 한국의 유원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들이나, 인간이 살아가기 빡빡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거꾸로 인간들에게 고혈을 빨아 먹힌다.
비인간적인 무거운 이야기인데 중후반까지는 유쾌한 리듬으로 이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이후의 비극성과 비장미가 더욱 도드라진다.
유원지의 부부는 빚에 시달리다 결국 놀이공원을 사채업자에게 빼앗기고, 흡혈귀 가족 중 가장 현실적이고 인내심이 강한 아냐는 편의점의 팍팍한 시급 대신 크게 돈을 벌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비극에 발을 들이게 된다. 소냐는 그런 딸을 구하려다 함께 비극을 맞는다.
인간을 사랑하는 다정다감한 몽상가 바냐는 결국 홀로 남지만, 이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자신이 그어놓은 경계의 선을 넘고 만다.
단순히 소극장 뮤지컬의 재기발랄함을 넘어 많은 메지시를 던진다. 이번이 초연인데, 아직 이음새가 덜컹거리는 부분이 있지만 이 극장에서 주로 통용되는 로맨틱 사랑 이야기를 넘어 다양함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한 부분이 있다.
고전에 대한 오마주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름에서 추정할 수 있듯, 주인공들 이름은 체홉 작품에서 따왔다. '바냐 아저씨'의 소냐와 바냐, '벚꽃동산'의 아냐가 그것이다. 인간성 상실에 대해 고민하는 바냐와 무기력한 모습에 TV 중독인 소냐는 '바냐 아저씨' 인물들의 2015년 대한민국 재림이다. 아냐는 '벚꽃동산'에서도 엄마를 위해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아기자기한 '드림월드', 비장한 '어디에서 어디로' 등 작곡가 겸 음악감독 김혜영의 장르도 양한 넘버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 아코디언을 비롯해 현악 편성 등 악기 구성도 다채롭다.
31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 대본 김나정, 연출 이용균, 안무 김명제, 제작감독 변숙희, 출연 진아라, 문혜원, 김도빈, 이지호. 러닝타임 100분. 4만4000~5만5000원. 네버더레스. 02-744-5442
◇시간을 보내지 말고, 살아내자 '명동로망스'
9급 공무원 '선호'는 매일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그러던 그가 과거로 간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1956년의 명동으로 떨어진다. 당시를 살아가던, 실존인물들을 만난다. 화가 이중섭(1916~1956), 시인 박인환(1926~1956), 작가 전혜린(1934~1965)
유명인들을 만났다는 설렘도 잠시다. 현실적인 고민 앞에 주저 앉는 예술가들 앞에서 무력한 자신이 고통스럽다. 이중섭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고, 박인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에 하늘만 쳐다본다. 전혜린의 문학적 고민은 부르주아의 장난으로 취급 받는다.
무엇보다 짧은 생을 불 같이, 치열하게 살아간 이들이다. '라테 아트'도 보여주며 이들과 친분을 쌓은 선호는 예술가들의 죽음을 막으려 하지만 부질 없다. 2015년 서울로 돌아온 선호는 한번에 크게 변하진 않을 테다. 하지만 그가 보내는 시간 안에는 이전보다 좀 더 다양하고 선명한 무늬가 새겨질 것이다. '명동로망스'는 선호의 성장담을 판타지 속에서도 과장되지 않게, 덤덤하게 그리며 현실 감각을 잃지 않게 한다.
'생명수' '시발송' 등 최슬기가 작곡한 넘버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귀에 감긴다. 덤덤하게 이북사투리를 쓰며 이중섭의 고뇌를 애절하게 그린 박호산의 이중섭이 눈에 밟힌다. 2016년 1월3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프로듀서 장재용·오득영, 연출 김민정, 음악감독 구소영, 극본·작사 조민형, 선호 배두훈·고상호. 러닝타임 100분. 전석 5만원. 프로스랩. 02-391-8223 ◇재기발랄함 속에 숨겨놓은 영리한 풍자 '지구 멸망 30일 전'
올해 '제9회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DIMF) 창작 뮤지컬상을 받은 작품. B급 유머와 풍자, 사랑스러움 등을 껴안는 재기발랄함으로 똘똘 뭉쳤다.
세기말 판타지 뮤지컬을 표방하는데, 시작은 현재의 결혼 풍속도를 그린다. 사랑보다 조건이 우선인 시대, 지구 최후의 순간이 통보된다. 유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30일 전.
결혼정보회사 직원 미스터 큐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 단 하나의 사과나무를 심듯, 자존심 회복을 위해 떨어진 결혼률을 올리기 위해 애를 쓴다. 결혼 커플은 점점 늘어나는데 재형은 혜원의 아버지이자 조폭 출신 엔터테인먼트 사장 오형두에게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오형두와 재형의 아버지는 원수지간. 재형의 형은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 혹여나 자식이 생기면, 가정을 이끌어가기 팍팍하기 때문이다.
출산율 하락, 애를 낳아 키우기 팍팍한 환경 등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판타지로 자연스레 풀어낸다. 본연의 섹시한 끼와 달리 발라드 가수로 활동해야만 하는 주소연 등을 통해 연예사업, 나아가 사회의 뒤틀린 구조도 짚는다.
그런데 전혀 무겁지 않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절대 안 돼"라는 아버지의 눈에 바로 흙을 뿌리는 혜원 등 대놓고 시도하는 B급 유머의 천연덕스러움 등 유쾌함으로 질주한다.
'뮤직 인 마이 하트' '카페인'의 성재준 연출은 이런 유쾌함을 엔진으로 삼고, 막판에 잇따른 두 번의 반전을 날개로 달아 재미·풍자·뜻하지 않는 감동까지 아우르는 묘를 발휘한다.
재형과 혜원 사이에서 엿볼 수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주로,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얽히는 합창곡이자 상징적인 장면으로 자리매김한 '원 데이 모어'의 패러디 등은 공연 팬의 보는 재미도 충족시킨다.
'전화해줘'의 청순함은 물론 섹시함과 순정녀 양면을 오가는 주소연 역의 하현지가 발군이다. 3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2관. 러닝타임 90분. 작곡 박성일, 안무 정도영, 출연 정민 황의정, 주민진 등 제작 심포니나인, PR 마케팅컴퍼니 아침. 4만4000~5만5000원. 인터파크티켓. 1544-1555
◇즐기다보면 현실과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까지 '상자 속 흡혈귀'
루마니아에서 온 생계형 흡혈귀들을 다뤘다는 점에서 MBC TV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성매매 등 현실에 더 밀착한 이야기와 막판, 존재 자체에 대한 외로움으로까지 이야기가 승화된다.
불멸의 존재이자 루마니아의 로열 패밀리였던 뱀파이어 '소냐' 가족. 백작인 가장이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한 뒤 엄마 '소냐'와 아들 '바냐', 딸 '아냐'는 생계를 위해 한국의 유원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들이나, 인간이 살아가기 빡빡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거꾸로 인간들에게 고혈을 빨아 먹힌다.
비인간적인 무거운 이야기인데 중후반까지는 유쾌한 리듬으로 이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이후의 비극성과 비장미가 더욱 도드라진다.
유원지의 부부는 빚에 시달리다 결국 놀이공원을 사채업자에게 빼앗기고, 흡혈귀 가족 중 가장 현실적이고 인내심이 강한 아냐는 편의점의 팍팍한 시급 대신 크게 돈을 벌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비극에 발을 들이게 된다. 소냐는 그런 딸을 구하려다 함께 비극을 맞는다.
인간을 사랑하는 다정다감한 몽상가 바냐는 결국 홀로 남지만, 이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자신이 그어놓은 경계의 선을 넘고 만다.
단순히 소극장 뮤지컬의 재기발랄함을 넘어 많은 메지시를 던진다. 이번이 초연인데, 아직 이음새가 덜컹거리는 부분이 있지만 이 극장에서 주로 통용되는 로맨틱 사랑 이야기를 넘어 다양함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한 부분이 있다.
고전에 대한 오마주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름에서 추정할 수 있듯, 주인공들 이름은 체홉 작품에서 따왔다. '바냐 아저씨'의 소냐와 바냐, '벚꽃동산'의 아냐가 그것이다. 인간성 상실에 대해 고민하는 바냐와 무기력한 모습에 TV 중독인 소냐는 '바냐 아저씨' 인물들의 2015년 대한민국 재림이다. 아냐는 '벚꽃동산'에서도 엄마를 위해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아기자기한 '드림월드', 비장한 '어디에서 어디로' 등 작곡가 겸 음악감독 김혜영의 장르도 양한 넘버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 아코디언을 비롯해 현악 편성 등 악기 구성도 다채롭다.
31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 대본 김나정, 연출 이용균, 안무 김명제, 제작감독 변숙희, 출연 진아라, 문혜원, 김도빈, 이지호. 러닝타임 100분. 4만4000~5만5000원. 네버더레스. 02-744-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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