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장진, 그가 돌아왔다…잘빠진 코믹연극 '꽃의비밀'

  • 뉴시스

입력 : 2015.12.04 09:47

연극연출가 장진(44)의 재기발랄함은 코믹 소동극에서 극대화된다. 직접 극본도 쓰는 극작가여서 서사와 이를 밀고 나가는 힘의 강약 조절이 탁월하다. 그가 끌어낸 배우들의 호흡이 씨줄, 극의 리듬이 날줄로 직조된 코미디는 쫀쫀하다. 특히 잘 빠진 그의 코미디는 인간애를 아무렇지 않게, 슬쩍 얹는 아기자기함도 있다. 이런 세밀함은 특히 소극장에 안성맞춤이다.

13년 만에 대학로에서 선보인 신작 코미디 연극 '꽃의 비밀' 얘기다. 대극장 뮤지컬(디셈버), 국민적 이벤트(인천 아시안게임 개·폐막식)에서 느끼지 못한 장진식 세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장진이 2002년 연극 '웰컴 투 동막골' 이후 처음 내놓은 극본의 배경은 이탈리아다. '골 때리는' 아줌마 네 명이 남편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해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탈리아이니 '축구에 환장하는' 남편들이 나오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유벤투스 팬들인 남편 넷은 밀란과의 경기를 보기 위해 다른 도시 축구장으로 가던 도중 교통사고가 난다. 토리노 공대를 수석 졸업한 지나가 자신의 남편을 죽이기 위해 브레이크를 터뜨렸기 때문이다. 근데 남편 넷은 다음 날 보험 가입을 위한 최종 건강검진을 받기로 돼 있었다. 맏언니 격인 소피아는 슬퍼하는 것도 잠시, 남편들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장을 제안한다.

남편들이 죽기 전 보험에 가입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아내들이 남편을 대신 연기하는 셈이다. 관건은 마지막 메디컬 테스트. 남자 흉내를 내는 이들과 남장을 했어도 미모를 가릴 수 없는 모니카에게 반해 자신의 정체성을 의삼하게 되는, 조금은 어수룩한 보험공단 의사 카를로 그리고 섹시한 간호사 산드라가 얽히고설키면서 시끌벅적한 소동극이 벌어진다.

연극 '서툰 사람들' '택시 드리벌' '리턴 투 햄릿'에서 보여준 장진식 순발력 있는 대사와 엇박자 유머 등 코믹한 설정이 돋보인다. 이탈리아가 배경인데 '몇 유로면 얼마지?'라는 대사가, 한국 배우와 한국 창작연극이라는 사실과 맞물리며 웃음을 안기는 식이다.

특히 영화든 연극이든 장진의 작품에 인장처럼 박혀 있는, 마무리에서 서서히 퍼지는 소박한 감동도 여전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기저에 일부러 의식을 하지 않는 사회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사회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공감이라고 해야 할까. 공대를 수석 졸업한 엘리트 지나도, 졸업 작품에서 남자 무솔리니를 연기해 외모가 빛이 바랐지만 한때 화려한 외모를 자랑했던 미녀 모니카도 지금은 평범한 주부다. 그리고 밝힐 수는 없지만 소피아, 연극에서 코믹한 요소를 가장 많이 지닌 자스민도 남편으로 인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막무가내로 생각 없이 사는 남편들에게 치여 사는 그들의 아픈 사연이 자연스레 드러날 때,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성숙한 장진식 통찰이라고 해야 할까. 소피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보험에 가입하려고 했던 이유도, 여자 혼자 힘으로는 살아가기 벅찬 사회구조 때문이었다. 밝힐 수 없는 마지막 반전이 다행이면서 뼈아픈 이유다.

장진은 '꽃의 비밀' 다음 공연에는 여장을 한 남자배우들이 남장을 연기하는 것도 구상 중이다. 자연스레 드러나는 문제의식을 어떻게 비틀어질 지 기대를 모은다.

장진은 '킬러들의 수다'와 '아는 여자'를 통해 다소 말투가 느린 원빈과 이나영의 독특한 리듬 연기 패턴을 발견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숨겨진 매력을 끄집어내는 일가견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이른바 '티켓 배우'는 없다. 하지만 역할에 맞는 최적의 배우들로 꾸렸다. 개막 이틀째인 2일에는 소피아 김연재, 자스민 한예주, 모니카 김나연, 지나 오소연, 카를로 이창용, 산드라 차재이가 나섰다.

발군은 한예주. 주당으로 한없이 망가지는 역인데, 초반이라 다소 헐거울 수 있는 배우들 호흡을 스스로 몸을 던져 차지게 만든다. 김나연은 반짝반짝 빛나는 외모로 남장에도 남심을 훔치고,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하는 오소연은 연극 문법에도 잘 적응한다. 김연재는 맏언니 역으로 중심축을 든든히 잡는다. 또 다른 주역은 역시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한 이창용. 이탈리아 축구감독으로 잠시 나서 유려한 말투와 화법을 뽐내기도 하는 그는 '범생이' 의사를 얄밉지 않고, 귀엽게 표현하다. 글래머 차재이는 몸매를 자랑하기보다 막판 마음씨를 써, 남심이 아닌 여심을 훔친다.

한동안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날리던 장진은 이번 연극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우기를 바랐다. 그런데, 대학로에 진짜 장진이 돌아왔다.

소피아 추귀정, 자스민 조연진, 모니카 한수연, 지나 심영은, 카를로 김대령도 나온다. 장진이 이끄는 문화창작집단 수다가 배우 조재현의 수현재컴퍼니와 처음 손잡고 선보이는 연극이다. 2016년 1월31일까지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러닝타임 100분(인터미션 없음), 4만~5만원. 수현재컴퍼니. 02-766-6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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