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대신 청각… 공연, 귀로 보세요"

  • 권승준 기자

입력 : 2015.12.04 01:35

[장애인 위한 공연 제작 '스튜디오뮤지컬' 고은영 대표]

시각장애인도 즐길 수 있게 라디오드라마로 각색한 공연
팟캐스트 형태로 무료 공유, 오프라인서 낭독극도 열어
"망하지 않고 오래할 수 있길"

이 공연을 보는 데는 돈도, 공연장도, 심지어 시각(視覺)도 필요 없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 제작전문기업 '스튜디오뮤지컬'의 작품을 즐기는 데 필요한 건 청각뿐이다. 배리어프리란 남녀노소, 장애인까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공연·예술 문화. 일종의 스타트업인 이 회사를 차린 건 고은령(35) 전 KBS 아나운서다. 5년 전 회사를 그만둔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하다가 '비싼 티켓 값 부담 없이 공연을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2년 전 회사를 차렸다.

"뮤지컬이나 연극은 소수의 골수팬이 지탱하는 산업이죠. 티켓 값뿐 아니라 공연장 여건 등 진입 장벽이 높아요. 그걸 조금이라도 낮춰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시각 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공연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스튜디오뮤지컬’을 운영하는 고은령(왼쪽) 전 KBS 아나운서와 최수련씨.
시각 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공연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스튜디오뮤지컬’을 운영하는 고은령(왼쪽) 전 KBS 아나운서와 최수련씨. /김연정 객원기자

스튜디오뮤지컬이 만드는 배리어프리 작품은 뮤지컬이나 연극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사나 노래를 제외한 공연의 시각 요소를 설명으로 대체한다. 남녀 주인공이 키스하는 대목을 해설자가 "두 사람, 마침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눈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고 대표는 "처음엔 한예종 동기들과 재미로 시작한 건데 호응이 너무 좋아서 아예 사업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공연에서 시각 요소를 없애버리면서 생기는 장점이 있어요. 노래나 배우의 목소리가 주는 감흥, 작품이 전달하려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지요." 작품을 제작할 땐 대부분 원작에 출연한 배우를 섭외한다. '원작을 망쳤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다. 뮤지컬 '그날들' '빨래' 같은 히트작뿐 아니라 최근엔 자체 창작극까지 만들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배우들이나 제작사는 작품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취지에 공감해서 무보수로 도와주는 경우도 많아요(웃음)."

이렇게 만든 작품을 무료로 즐길 수 있도록 팟캐스트(인터넷 라디오 방송) 같은 형태로 인터넷에 공유한다. 작품당 조회 수가 기본 1만~2만회이고, 연극 '유도소년' 같은 경우는 조회 수 20만회를 넘기는 대박을 기록했다. 고 대표는 "평소 뮤지컬이나 연극을 멀게 느끼는 사람도 우리 걸 듣고 '실제 공연을 보고 싶어졌다'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최근엔 오프라인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낭독(朗讀)극 형식의 뮤지컬 공연도 열고 있다. 뮤지컬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이들의 작품을 많이 듣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공익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시각장애인까지 배우로 섭외해 제작한 창작뮤지컬 '가족로망스'로 전국 순회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고 대표와 최씨는 "그저 망하지 않고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만 되는 게 꿈"이라며 활짝 웃었다. 공연 문의 (02)6052-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