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01 09:34

마치 탄광 속에 돌처럼 갇혀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세로로 쌓여있다. 잔혹하고 참혹한 장면인데 제목은 '사랑이 충만한 캐스피어'라니….
목탄 드로잉으로 검고 거칠게 그려진 그림들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잠식했다. 군중들이 궐기하는 듯한 소리가 뒤섞여 전시장은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깃발을 들고 따라나서야할 것만 같은 선동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어쩐지 신바람 나는 기분도 든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온 윌리엄 켄트리지(60)는 "요하네스버그에서 20년간 살면서 남아공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일기처럼 보여지게 됐다"면서 "남아공 사회가 부조리하고 상반된 모순이 강렬해서 개인적과 정치적인 것이 만나 반영이 됐다"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검은 목탄 드로잉은 강렬하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한때 흥했던 민중미술을 보는 것도 같다. 켄트리지는 "목탄이 나를 선택했다"며 "목탄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드로잉하다 잘못되면 슥 닦으면 없어진다. 목탄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생각의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윰직인다는 것이다. 불확실성, 임시성을 제일 잘 표현할수 있는 도구다." 처참하게 살해된 사람들의 얼굴이 쌓여있는 참혹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역설적인 제목의 '사랑이 충만한 캐스피어' 작품에 대해 작가는 태어나 자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인종분리정책이 실시되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에는 폭력과 유혈사태가 빈번했다. 흑백 갈등 하에서 광산 산업의 발달로 소수의 백인이 부를 독식한 상태였다. '캐스피어'는 남아프리카에서 반란군을 진압할 때 사용된 무장 장갑차를 말한다.
분쟁으로 인한 참변의 이미지는 켄트리지의 다른 작품 '광산'이나 '유배 중인 펠릭스', '주된 불만의 역사' 등 요하네스버그를 배경으로 한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켄트리지는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한 고발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의 작품은 사회와 개인, 역사와 미래, 기억과 망각, 예술과 정치라는 다양한 요소들간의 긴장과 갈등을 소재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은 공사판같기도 하고 정리가 안 된 것같다. 온통 검은색으로 지배된 전시장 곳곳은 가설극장 같거나, 거리의 전시장같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거대한 석고보드, 누런 갱지에 그려진 드로잉이 관객을 맞이한다.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또한 천장이 뻥 뚫린 공간에 들어서면 사방으로 움직이는 영상이 서라운드처럼 보여진다. '시간의 거부'라는 제목으로 "인간이 시간과 운명을 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파격적인 안무로 유명한 다다 마실로를 비롯한 남아프리카의 퍼포머들과 산업화 시대에 등장한 표준화된 시간의 개념, 시간의 상대성에 대한 작가의 사고를 담은 5채널 비디오가 필립 밀러의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영상 가운데에는 마치 심장박동처럼 거친 숨을 내뿜으며 작동하는 기계인 숨 쉬는 기계, 일명 '코끼리'가 설치됐다.
"지저분하다고? 솔직히 이렇게 사는것 아닌가?" 켄트리지는 "정리가 안 되어있지만 다양한 이미지간의 연결고리가 있어 그냥, 우후죽순 격으로 느끼고 감상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어지러운 전시장이 사람의 머릿속과 닮아서 좋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거쳐서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 처음부터 깔끔하게 정리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작은 사이즈의 드로잉부터 대형 비디오아트 설치작품까지 널브러지게 선보인 이번 전시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켄트리지의 드로잉과 영상 속에는 그가 태어나 살고 있는 요하네스버그와 주위 지역이 많이 등장한다. 현대적인 대도시의 풍경부터 교외의 황량한 자연 풍경, 휴가지인 해변의 모습 등이다. 단순히 자연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분쟁과 상처로 인해 황폐해진 심리를 담은 풍경으로 재현된다.
'더 달콤하게, 춤을' 영상 작품에서는 해골들과 부상당한 환자들, 여인들, 사제 등 사람들이 춤을 추며 행진한다. 욕조, 링거, 십자가, 타이프라이터, 지구, 십자가, 새장, 그리스 조각상, 꽃다발, 나뭇가지 등 서로 연관을 찾을 수 없는 사물들을 저마다 짊어지고 행진한다. 에볼라 바이러스, 생존을 위해 바다에 몸을 던지는 난민들의 행렬까지 갑작스러운 죽음의 공포는 페스트가 창궐하던 유럽이 아닌 지금 우리의 삶 바로 가까이에 있다. 죽음과 삶, 다시 말해 유한한 시간만큼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명징한 교훈을 준다.
켄트리지는 "이미지의 이동이 중요하다. 조각으로 시작했다가 책의 드로잉으로 넘어가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지다가 연극으로 선보인다"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은 100년 전 다다이스트들이 투쟁을 해서 얻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다이즘 덕분에 아트에 다양안 언어와 텍스트가 스며들기 시작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할 자유가 주어졌다. 다양한 소재로 바뀌는 내 전시도 혼자 할 수 없다. 영상 설치 등의 전문가와 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윌리엄 켄트리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아파르트헤이트 하의 인종차별과 폭력을 소재로 한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2000년 광주비엔날레, 2008년 서울 미디어시티, 페스티벌 봄 등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비트바테스트란드 대학에서 정치학과 아프리카학, 요하네스버그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미술을 공부했고,1980년대 초반 프랑스 자크르 로크 국제 연극학교에서 연극과 마임을 전공했다. 1980년대에는 TV영상시리즈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왔다.
2012년 정형민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기획한 이 전시는 3년여 만에 구현됐다. 서울관 제 2, 3, 4 전시실 및 복도공간을 모두 점령한 이번 전시는 서울관 개관 이후 최대규모다. 초기작 '프로젝션을 위한 드로잉' 연작부터 2015년 최근작 '더 달콤하게 춤을'까지 켄트리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영상, 드로잉, 설치, 판화 등 108점 이 소개된다.
음악, 역사, 미술, 공연이 어우러진 전시 제목은 '윌리엄 켄트리지-주변적 고찰'이다. 작가의 렉처 퍼포먼스 제목에서 따온 '주변적 고찰'은 한 주제에서 자유롭게 연상되거나 확장되어나가는 사고의 흐름을 뜻한다.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람객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예술가의 작업실이 머릿속을 확장한 곳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중국 베이징 울렌스 현대예술센터와 공동주최한다. 2016년 3월27일까지. 02-3701-9500
목탄 드로잉으로 검고 거칠게 그려진 그림들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잠식했다. 군중들이 궐기하는 듯한 소리가 뒤섞여 전시장은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깃발을 들고 따라나서야할 것만 같은 선동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어쩐지 신바람 나는 기분도 든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온 윌리엄 켄트리지(60)는 "요하네스버그에서 20년간 살면서 남아공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일기처럼 보여지게 됐다"면서 "남아공 사회가 부조리하고 상반된 모순이 강렬해서 개인적과 정치적인 것이 만나 반영이 됐다"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검은 목탄 드로잉은 강렬하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한때 흥했던 민중미술을 보는 것도 같다. 켄트리지는 "목탄이 나를 선택했다"며 "목탄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드로잉하다 잘못되면 슥 닦으면 없어진다. 목탄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생각의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윰직인다는 것이다. 불확실성, 임시성을 제일 잘 표현할수 있는 도구다." 처참하게 살해된 사람들의 얼굴이 쌓여있는 참혹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역설적인 제목의 '사랑이 충만한 캐스피어' 작품에 대해 작가는 태어나 자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인종분리정책이 실시되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에는 폭력과 유혈사태가 빈번했다. 흑백 갈등 하에서 광산 산업의 발달로 소수의 백인이 부를 독식한 상태였다. '캐스피어'는 남아프리카에서 반란군을 진압할 때 사용된 무장 장갑차를 말한다.
분쟁으로 인한 참변의 이미지는 켄트리지의 다른 작품 '광산'이나 '유배 중인 펠릭스', '주된 불만의 역사' 등 요하네스버그를 배경으로 한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켄트리지는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한 고발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의 작품은 사회와 개인, 역사와 미래, 기억과 망각, 예술과 정치라는 다양한 요소들간의 긴장과 갈등을 소재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은 공사판같기도 하고 정리가 안 된 것같다. 온통 검은색으로 지배된 전시장 곳곳은 가설극장 같거나, 거리의 전시장같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거대한 석고보드, 누런 갱지에 그려진 드로잉이 관객을 맞이한다.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또한 천장이 뻥 뚫린 공간에 들어서면 사방으로 움직이는 영상이 서라운드처럼 보여진다. '시간의 거부'라는 제목으로 "인간이 시간과 운명을 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파격적인 안무로 유명한 다다 마실로를 비롯한 남아프리카의 퍼포머들과 산업화 시대에 등장한 표준화된 시간의 개념, 시간의 상대성에 대한 작가의 사고를 담은 5채널 비디오가 필립 밀러의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영상 가운데에는 마치 심장박동처럼 거친 숨을 내뿜으며 작동하는 기계인 숨 쉬는 기계, 일명 '코끼리'가 설치됐다.
"지저분하다고? 솔직히 이렇게 사는것 아닌가?" 켄트리지는 "정리가 안 되어있지만 다양한 이미지간의 연결고리가 있어 그냥, 우후죽순 격으로 느끼고 감상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어지러운 전시장이 사람의 머릿속과 닮아서 좋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거쳐서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 처음부터 깔끔하게 정리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작은 사이즈의 드로잉부터 대형 비디오아트 설치작품까지 널브러지게 선보인 이번 전시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켄트리지의 드로잉과 영상 속에는 그가 태어나 살고 있는 요하네스버그와 주위 지역이 많이 등장한다. 현대적인 대도시의 풍경부터 교외의 황량한 자연 풍경, 휴가지인 해변의 모습 등이다. 단순히 자연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분쟁과 상처로 인해 황폐해진 심리를 담은 풍경으로 재현된다.
'더 달콤하게, 춤을' 영상 작품에서는 해골들과 부상당한 환자들, 여인들, 사제 등 사람들이 춤을 추며 행진한다. 욕조, 링거, 십자가, 타이프라이터, 지구, 십자가, 새장, 그리스 조각상, 꽃다발, 나뭇가지 등 서로 연관을 찾을 수 없는 사물들을 저마다 짊어지고 행진한다. 에볼라 바이러스, 생존을 위해 바다에 몸을 던지는 난민들의 행렬까지 갑작스러운 죽음의 공포는 페스트가 창궐하던 유럽이 아닌 지금 우리의 삶 바로 가까이에 있다. 죽음과 삶, 다시 말해 유한한 시간만큼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명징한 교훈을 준다.
켄트리지는 "이미지의 이동이 중요하다. 조각으로 시작했다가 책의 드로잉으로 넘어가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지다가 연극으로 선보인다"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은 100년 전 다다이스트들이 투쟁을 해서 얻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다이즘 덕분에 아트에 다양안 언어와 텍스트가 스며들기 시작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할 자유가 주어졌다. 다양한 소재로 바뀌는 내 전시도 혼자 할 수 없다. 영상 설치 등의 전문가와 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윌리엄 켄트리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아파르트헤이트 하의 인종차별과 폭력을 소재로 한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2000년 광주비엔날레, 2008년 서울 미디어시티, 페스티벌 봄 등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비트바테스트란드 대학에서 정치학과 아프리카학, 요하네스버그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미술을 공부했고,1980년대 초반 프랑스 자크르 로크 국제 연극학교에서 연극과 마임을 전공했다. 1980년대에는 TV영상시리즈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왔다.
2012년 정형민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기획한 이 전시는 3년여 만에 구현됐다. 서울관 제 2, 3, 4 전시실 및 복도공간을 모두 점령한 이번 전시는 서울관 개관 이후 최대규모다. 초기작 '프로젝션을 위한 드로잉' 연작부터 2015년 최근작 '더 달콤하게 춤을'까지 켄트리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영상, 드로잉, 설치, 판화 등 108점 이 소개된다.
음악, 역사, 미술, 공연이 어우러진 전시 제목은 '윌리엄 켄트리지-주변적 고찰'이다. 작가의 렉처 퍼포먼스 제목에서 따온 '주변적 고찰'은 한 주제에서 자유롭게 연상되거나 확장되어나가는 사고의 흐름을 뜻한다.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람객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예술가의 작업실이 머릿속을 확장한 곳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중국 베이징 울렌스 현대예술센터와 공동주최한다. 2016년 3월27일까지. 02-370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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