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드라마·감정선 채웠다, 뮤지컬 '바람과함께사라지다' 업그레이드

  • 뉴시스

입력 : 2015.11.23 10:08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10개월 만에 업그레이드돼 돌아왔다.

올해 초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했다. 당시 40일 동안 공연하며 7만5000명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다.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철의 소설이 원작으로, 비비엔 리·클라크 게이블 주연 영화(1939)의 유명세에 힘 입어 중년 관객에게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작품성에 대한 미디어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특히 이야기가 뚝뚝 끊기면서 감정의 흐름이 이어지는 걸 방해했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4시간 가량인데 비해 뮤지컬은 2시간30분(인터미션 20분 포함)이다. 맥락 없이 압축을 하다 보니 '레드 버틀러'가 '스칼릿 오하라'를 왜 그렇게 사랑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수차례 반복되는 키스신에 전율을 못 느끼는 게 당연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부각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부 '애슐리 윌크스'와 '멜라니 해밀턴'의 사랑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탓도 컸다.

재공연은 러닝타임이 10분 가량 늘어났을 뿐인데 상당 부분 드라마와 감정의 빈약함이 채워졌다.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한진섭 연출을 구원등판시킨 건 탁월했다. 그는 어린 시절 빼어난 외모와 부유한 가정 덕분에 항상 자신만만하게 살았던 스칼릿이 전쟁 등으로 인해 변화하게 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며, 그녀의 인생역정을 그리는데 주력한다. 예컨대, 자신이 사랑하는 애슐리가 부탁한 그의 아내 멜라니와 이들 부부의 자식을 데리고 미국 남북전쟁 당시 애틀랜타에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농장 '타라'로 가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초연 때는 이들에게 마차를 마련해준 버틀러가 뒤늦게 참전하러 떠난 뒤 스칼릿이 분노만 하는 게 다였다. 하지만 이번 재연에서는 버틀러가 만일에 대비하라며 건네준 총을, 스칼릿이 마차를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쏟 뒤 오열하는 장면이 더해지면서 철부지였던 그녀가 점차 변화할 수밖에 없음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전쟁이 끝난 뒤 버틀러와 스칼릿이 결혼해 평화로워지는가 싶을 때, 스칼릿과 멜라니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도는 부분도 초연처럼 단지 스케치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버틀러와 멜라니가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추가, 네 사람이 사랑에 얽히고설키는 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전 뮤지컬이 풍경화에 불과했다면, 이번에는 정물화가 된 셈이다.

인물들의 감정선에 방점을 찍으면서 스칼릿과 버틀러가 사랑의 강자와 약자로서 위치가 계속 바뀌는 과정도 자연스레 묘사되고, 이로 인해 긴박감도 생겼다. 스칼릿과 버틀러의 딸 '보니'는 초연에서 인형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실제 아역배우가 등장, 생생함도 더했다.

본래 프랑스 뮤지컬의 특성상 MR(녹음된 반주)을 쓴 초연과 달리 이번에 라이브 오케스트라를 더하면서 음악에도 역시 생동감을 얹었다. 버틀러와 딸 보니의 새 넘버도 추가, 이야기 맥락에도 힘을 실었다. 원작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 때문에 초연 당시 빈약한 부분도 그냥 넘겼는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서 유려함을 더한 셈이다.

이전 무대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우리나라 중심 공연장이라는 상징성은 있다. 하지만 오페라, 발레 등이 주로 공연하는 곳이라 뮤지컬 무대로는 최적의 장소가 아니다. 이번에는 뮤지컬 전용극장인 샤롯데시어터로 옮겨 105회 가량 공연한다. 인물들의 얼굴과 동선이 더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기할 만한 점은 중년 관객의 호응이다. 뮤지컬은 주로 20~30대 여성이 주 관객층인데, 원작의 브랜드 효과에 힘 입어 40~50대 남성·여성 관객의 비중이 높다. 송년회, 동창회가 몰리는 연말 시즌에 맞춰 이들의 단체 관람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커튼콜 마지막, 영화처럼 석양을 배경으로 한 키스신, 오프닝과 엔딩에 울려퍼지는 영화 주제곡인 '타라의 테마'가 향수를 자극한다.

20일 오후 8시 공연에서 남경주가 버틀러, 김지우가 스칼릿이었다. 노련한 남경주는 역시 능수능란한 캐릭터인 버틀러를 기막힌 완급 조절로 소화해낸다. 그간 영화, TV 드라마 등 매체 배우로 인식됐던 김지우는 대형 뮤지컬에서도 얼굴 표정이 보일 정도로 세세한 감정 표현과 뒤지지 않는 가창력을 선보이며 '뮤지컬배우' 김지우를 확연히 보여준다.

스칼릿 오하라 역에는 바다가 초연에 이어 합류하고 고전미의 김소현이 가세했다. 레드 버틀러는 남경주 외에 초연배우 김법래가 지키고 신성우·윤형렬이 합류했다. 애슐리 윌크스 손준호·정상윤·에녹, 멜라니 해밀턴 오진영·정단영, 유모 마마 최현선, 노예장 박송권·최수형이다. 뮤지컬계 스타 부부인 김소현·손준호가 함께 출연하는 점이 눈길을 끄나 두 사람이 한 무대에는 서지 않는다.

2016년 1월31일까지 잠실 샤롯데시어터. 프로듀서 박영석, 연출 한진섭, 작곡 제라르 프레스귀르빅, 음악감독 김성수, 안무 서병구. 5만~14만원. 쇼미디어그룹·클립서비스.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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