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四季', 프라하·런던·뮌헨의 공감 이끌다

  • 런던·뮌헨=김경은 기자

입력 : 2015.11.12 00:36

美 CNN "최고의 앙상블" 극찬한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
유럽 4개 도시서 초청 연주회

바이올린 활이 현에 닿는 순간 활 끝에서 연둣빛 풀 냄새가 피어올랐다. 이어 새처럼, 바람처럼 비올라와 첼로, 더블베이스가 저마다의 활 놀림으로 생명의 속삭임에 끼어들었다. 10일 오후 8시(현지 시각) 독일 뮌헨의 옛 바이에른 왕궁 안에 자리한 클래식 공연장 헤라클레스홀. 미 CNN으로부터 '최고의 앙상블'이라 극찬 받은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이하 세종)는 대한민국 평창의 황홀한 사계(四季)를 현대 음악으로 그려낸 '평창의 사계'를 연주해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날 공연은 세종이 유럽 4개 도시의 권위 있는 공연장들로부터 초청받아 마련한 유럽 투어 연주회 가운데 하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강효(70) 미 예일대 교수의 제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44)이 협연자로 함께해 무대가 더욱 빛났다. 이들은 '평창…'과 더불어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2번', 비발디의 '사계'를 들고 현지 시각으로 지난 8일 체코 프라하의 루돌피눔 드보르작홀에서 유럽 투어 연주회를 시작했다. 첫날 이미 전 석 매진과 기립 박수를 기록하고 다음 날인 9일엔 정상급 연주자들이 즐겨 서는 런던의 실내악 성지(聖地) 위그모어홀을 밟았다.

10일 저녁(현지 시각) 독일 뮌헨의 헤라클레스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세종솔로이스츠가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10일 저녁(현지 시각) 독일 뮌헨의 헤라클레스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세종솔로이스츠가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1995년 뉴욕에서 활동 중인 20·30대 현악 연주자들을 끌어모아 세종을 창단한 강 교수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우리 역사에서 음악적으로 크나큰 성취를 이룬 세종대왕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아름다운 음악도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창단 이듬해인 1996년 미국 뉴욕 연주회를 시작으로 14개국, 120개 도시에서 500회 가깝게 연주회를 열면서 눈부신 성장을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악장 데이비드 첸을 비롯해 뉴욕 필 악장 프랑크 황, 몬트리올 심포니 악장 앤드루 완 등 미국과 캐나다 유수의 오케스트라 악장만 8명을 배출했다. 강 교수는 "투어를 할 때면 20년간 함께한 연륜 있는 연주자는 물론이고, 졸업을 앞둔 젊은 연주자 2~3명도 꼭 같이 넣는다"고 했다.

'평창의 사계'는 강 교수가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이던 지난 2004년 현대음악 작곡가인 강석희 전 서울대 교수에게 위촉해 만들었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별로 3악장씩 작곡한 비발디 작품 '사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 계절에 2악장씩 전체 8악장으로 구성했다. 원래는 바이올린 독주(獨奏)와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지는 곡. 이번 투어를 위해 독주자 없이 단원들끼리 연주할 수 있는 버전을 새로 만들었다.

연주자가 14명이면 서로 다른 멜로디 14개가 어우러지고 맞물려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같은 바이올린 연주자라도 각자 다른 악보, 전용 보면대를 들고 무대에 오른다. 강 교수는 "14명의 솔로 파트를 한데 묶어서 하나의 합주로 만드는 건데 기교도 까다롭지만 서로 맞지 않으면 듣기 괴로운 곡이 된다"고 했다. 뮌헨 시민 카렌(56)씨는 "곡을 듣는 순간 눈앞에 평창의 자연이 그림처럼 쏟아졌다.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샤함과 함께한 비발디의 '사계'는 이번 순회 공연의 백미.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대화하며 화사하고 풍성하게 자연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이들에게 유럽 관객은 아낌없이 '브라보'를 외쳤다. 잠깐 눈 붙인 단원들은 이튿날 새벽 마지막 순회 공연지인 마드리드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