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11 13:53

베이스 연광철(50)은 듬직한 성품이다. 묵직한 저음의 무게와 닮았다.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에 손을 내젓고 소탈한 모습을 보인다. 어렵기로 소문난 바그너 오페라에 정통해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 통한다.
1996년부터 매년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바그너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지만, 자신의 여러 레퍼토리 중 하나로 생각하며 묵묵히 감당할 뿐이다.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이는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고래잡이 어선의 선장 '달란트'를 연기하는 연광철은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1974년 번안오페라 '방황하는 화란인'으로 국내 무대에 처음으로 바그너를 소개한 국립오페라단이 40여년만에 제대로 이 작품을 공연하는 무대에 연광철을 주역으로 앞세운 것은 천만다행이다. 연광철의 달란트는 딸을 약혼자인 사냥꾼이 아닌, 황금보화가 가득한 선장에게 소개한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을 둔 아빠의 마음이 자연스레 투영될 수밖에 없다. 그는 "사랑이냐, 능력이냐의 고민인데 아버지로서 딸을 생각할 때는 사냥꾼과 결혼하기보다는 부자인 선장이랑 결혼하는 것이 낫다. 본래 작품이 1800년대가 배경이라고도 하지만 충분히 현실에도 투영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미소 지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국립오페라단이 2013년 국내 초연해 호평 받은 '파르지팔' 등으로 유명한 바그너의 이름을 최초로 널리 알리게 해준 작품이다. 그가 직접 극본까지 썼다. 평생 죽지 못하고 바다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에 처한 네덜란드 선장의 이야기다. 영원히 변치 않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인을 만나야만 비로소 저주에서 벗어나 자유을 얻을 수 있다는 북유럽의 전설을 소재로 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폰 슈나벨레봅스키씨의 회상'이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이번 무대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원작은 1700년대 노르웨이의 어느 항구가 배경이나 산업화 초기, 고래잡이배가 주요 무대다. "경제적인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루는 만큼 현대적인 연출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고 여겼다.
이미 바그너는 유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해석됐다. "우리도 춘향전을 모던하게 해석하지 않나. 서양에서는 이미 이 작품을 많이 봐와서 모던한 연출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든가, 호주라든가, 미국에서는 전통적이 방식으로 해석을 많이 하고 있다. 받아들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현대적인 시도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관객들을 위해서는 전통적인 것을 선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비교적 쉽게 즐길 수 있는 바그너 작품이다. "바그너도 (우수에 찬 아름다운 선율의 곡들을 주로 만든) 벨리리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파르지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같은 다른 바그너의 작품처럼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귀에 남는 선율도 있고, 어렵게 다가가지는 않을 거 같다. 오케스트라 역시 (바그너의 또 다른 작품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가 주고 받고 하는 장면이 많은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오케스트라가 성악가의 노래를 반주하는 부분이 많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대표적인 베이스로 통하는 그는 올해와 지난해도 현지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발퀴레'의 훈딩 등으로 호평 받았다. 이처럼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면모가 강한 연광철이지만 스스로를 '촌놈'이라고 부른다. 충북 충주의 구석진 촌에서 자랐다. 12세 때까지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피아노 소리도 고등학교 진학해서야 들었다. 충북 청주공업고등학교 출신인 그는 음악 선생님이 없어 음악 시간에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들어야만 했다. 건축 기능 자격증 2급 시험에 떨어진 뒤 독학으로 3개월 동안 음악을 공부해 청주대 음대에 들어갔다. 부친이 소를 판 돈으로, 당시 막 한국과 수교가 이뤄져 다른 유럽 국가보다 물가가 쌌던 불가리아의 소피아 국립예술학교로 유학을 갔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즉 '금수저' 없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연광철은 하지만 정작 본인은 "지방에서 자라서, 지방대라서 핸디캡이 없었다"며 웃었다. "음악하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즐거웠던 그는 슬럼프도 없었다고 잘라말했다. 그러나 "한국사람으로 태어나서 서양음악을 택한 것을 한 때 원망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서양 음악을 하면 잘 못해도 된다. 다 모르니까.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서양 사람 앞에서 노래를 하려니 어려움이 있었다. 동양사람인데 서양사람 역을 맡아 노래를 해야 하니까. 더구나 베이스여서 왕이나 대제사장 역을 맡아야 하는데 체구도 작고 그러니, 갭이 생기는 거지. 그래서 연출가 중에서는 저를 안 좋아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미지가 안 나오니까. 대신 지휘자들은 저를 좋아했다. 결국 음악밖에 없었다. (웃음)"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만큼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위한 조언을 청했다. "관객들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만 있기 때문"이다. "수준이 되지 않은 오페라단이 생기는 것은 관객들이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정확한 지적도 내놓았다.
국립오페라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립오페라단에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합창단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그의 스케줄은 2018년까지 이미 빼곡하다. 뉴욕, 런던, 빈, 파리, 뉴욕 등지를 오가야 한다. 런던 로열오페라, 빈 국립극장, 파리오페라, 레알마드리드 극장 등 내로라하는 오페라단이 그를 기다린다. "짐 가방 두 개는 풀지 않고 가지고 다닌다."
그럼에도 한국 무대에는 꾸준히 오른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2~3년 전부터 스케줄이 차 있는 그에게 1년도 안 남은 일정을 부탁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고국에서 노래하려고 한다. 이번 연말에는 고향 시민들을 위해 충주에서 독창회도 열고 은사가 있는 요양병원에서 노래도 한다. "고국에서 조금이나마 많은 분들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18·20·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지휘 랄프 바이커트, 연출 스티브 로리스, 무대 베누아 두가딘, 의상 수 월밍턴. 달란트 연광철·김일훈, 젠타 마누에라 울, 홀렌더 유카 라질라이넨. 러닝타임 160분(인터미션 없음). 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라, 합창 국립합창단. 1만~15만원. 국립오페라단. 02-580-1330
1996년부터 매년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바그너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지만, 자신의 여러 레퍼토리 중 하나로 생각하며 묵묵히 감당할 뿐이다.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이는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고래잡이 어선의 선장 '달란트'를 연기하는 연광철은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1974년 번안오페라 '방황하는 화란인'으로 국내 무대에 처음으로 바그너를 소개한 국립오페라단이 40여년만에 제대로 이 작품을 공연하는 무대에 연광철을 주역으로 앞세운 것은 천만다행이다. 연광철의 달란트는 딸을 약혼자인 사냥꾼이 아닌, 황금보화가 가득한 선장에게 소개한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을 둔 아빠의 마음이 자연스레 투영될 수밖에 없다. 그는 "사랑이냐, 능력이냐의 고민인데 아버지로서 딸을 생각할 때는 사냥꾼과 결혼하기보다는 부자인 선장이랑 결혼하는 것이 낫다. 본래 작품이 1800년대가 배경이라고도 하지만 충분히 현실에도 투영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미소 지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국립오페라단이 2013년 국내 초연해 호평 받은 '파르지팔' 등으로 유명한 바그너의 이름을 최초로 널리 알리게 해준 작품이다. 그가 직접 극본까지 썼다. 평생 죽지 못하고 바다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에 처한 네덜란드 선장의 이야기다. 영원히 변치 않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인을 만나야만 비로소 저주에서 벗어나 자유을 얻을 수 있다는 북유럽의 전설을 소재로 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폰 슈나벨레봅스키씨의 회상'이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이번 무대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원작은 1700년대 노르웨이의 어느 항구가 배경이나 산업화 초기, 고래잡이배가 주요 무대다. "경제적인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루는 만큼 현대적인 연출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고 여겼다.
이미 바그너는 유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해석됐다. "우리도 춘향전을 모던하게 해석하지 않나. 서양에서는 이미 이 작품을 많이 봐와서 모던한 연출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든가, 호주라든가, 미국에서는 전통적이 방식으로 해석을 많이 하고 있다. 받아들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현대적인 시도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관객들을 위해서는 전통적인 것을 선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비교적 쉽게 즐길 수 있는 바그너 작품이다. "바그너도 (우수에 찬 아름다운 선율의 곡들을 주로 만든) 벨리리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파르지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같은 다른 바그너의 작품처럼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귀에 남는 선율도 있고, 어렵게 다가가지는 않을 거 같다. 오케스트라 역시 (바그너의 또 다른 작품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가 주고 받고 하는 장면이 많은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오케스트라가 성악가의 노래를 반주하는 부분이 많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대표적인 베이스로 통하는 그는 올해와 지난해도 현지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발퀴레'의 훈딩 등으로 호평 받았다. 이처럼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면모가 강한 연광철이지만 스스로를 '촌놈'이라고 부른다. 충북 충주의 구석진 촌에서 자랐다. 12세 때까지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피아노 소리도 고등학교 진학해서야 들었다. 충북 청주공업고등학교 출신인 그는 음악 선생님이 없어 음악 시간에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들어야만 했다. 건축 기능 자격증 2급 시험에 떨어진 뒤 독학으로 3개월 동안 음악을 공부해 청주대 음대에 들어갔다. 부친이 소를 판 돈으로, 당시 막 한국과 수교가 이뤄져 다른 유럽 국가보다 물가가 쌌던 불가리아의 소피아 국립예술학교로 유학을 갔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즉 '금수저' 없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연광철은 하지만 정작 본인은 "지방에서 자라서, 지방대라서 핸디캡이 없었다"며 웃었다. "음악하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즐거웠던 그는 슬럼프도 없었다고 잘라말했다. 그러나 "한국사람으로 태어나서 서양음악을 택한 것을 한 때 원망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서양 음악을 하면 잘 못해도 된다. 다 모르니까.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서양 사람 앞에서 노래를 하려니 어려움이 있었다. 동양사람인데 서양사람 역을 맡아 노래를 해야 하니까. 더구나 베이스여서 왕이나 대제사장 역을 맡아야 하는데 체구도 작고 그러니, 갭이 생기는 거지. 그래서 연출가 중에서는 저를 안 좋아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미지가 안 나오니까. 대신 지휘자들은 저를 좋아했다. 결국 음악밖에 없었다. (웃음)"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만큼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위한 조언을 청했다. "관객들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만 있기 때문"이다. "수준이 되지 않은 오페라단이 생기는 것은 관객들이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정확한 지적도 내놓았다.
국립오페라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립오페라단에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합창단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그의 스케줄은 2018년까지 이미 빼곡하다. 뉴욕, 런던, 빈, 파리, 뉴욕 등지를 오가야 한다. 런던 로열오페라, 빈 국립극장, 파리오페라, 레알마드리드 극장 등 내로라하는 오페라단이 그를 기다린다. "짐 가방 두 개는 풀지 않고 가지고 다닌다."
그럼에도 한국 무대에는 꾸준히 오른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2~3년 전부터 스케줄이 차 있는 그에게 1년도 안 남은 일정을 부탁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고국에서 노래하려고 한다. 이번 연말에는 고향 시민들을 위해 충주에서 독창회도 열고 은사가 있는 요양병원에서 노래도 한다. "고국에서 조금이나마 많은 분들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18·20·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지휘 랄프 바이커트, 연출 스티브 로리스, 무대 베누아 두가딘, 의상 수 월밍턴. 달란트 연광철·김일훈, 젠타 마누에라 울, 홀렌더 유카 라질라이넨. 러닝타임 160분(인터미션 없음). 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라, 합창 국립합창단. 1만~15만원. 국립오페라단. 02-580-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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