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09 09:34
'타티아나' 강수진(48)이 '오네긴'과 파드되(2인무)에서 새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착지할 때 그녀의 토슈즈 끝이 무대 위에 부딪히며 '따닥', 리듬을 만들어냈다. 자세의 우아함과 몸의 경쾌함이 파드되로 빚어낸 소리인데, 뭉클한 감정이 먼저 다가왔다.
토슈즈 안에 꽁꽁 감춰놓은 강수진의 발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 툰치 소크멘(52)이 피카소의 작품 같다며 찍어준 발 사진은 마치 고목을 촬영해놓은 것 같다. 빛나는 외모와 화려한 무대 위 모습과 달리 울퉁불퉁하고 피멍으로 가득하다. 남들보다 몇 배 노력한 증거다.
6~8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내한공연인 전막 발레 '오네긴'을 마치기 전 만난 강수진은 "내 꿈은 하루에 7시간을 한 번 쭉 자는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밤늦게까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습관이 있다.
"쪽잠인가? 20분 자다 일어나고 10분 자다 일어나고. 그래도 다행히 어제는 2시간은 잔 것 같다. 365일 시차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어디 한 곳에 오래 머물 때 새벽에 쭉 자면 행운이고. 차에서 긴 시간 이동할 때 그런 쪽잠들을 많이 잔다. 수면제를 먹을 순 없다. 통증 약을 제외하고는 몸을 위해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강수진은 2016년 남편의 생일인 7월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오네긴' 공연을 끝으로 실질적인 은퇴를 하게 된다. 그녀는 이 발레단의 종신 단원이다. 내년은 강수진이 1986년 19세 나이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 무용수로 입단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앞서 한국에서 3일 동안 공연한 '오네긴'을 끝으로 고국 현역 무대에서 먼저 은퇴했다. 30년 발레 인생을 정상의 기량에 있을 때 매듭지은 강수진에게 3일 내내 4층을 가득 메운 관객 7000명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첫날 공연의 커튼콜에서 웃음 지은 강수진은 둘째 날 공연에서 눈시울을 붉히더니, 셋째날 마지막 공연 커튼콜에서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특히 마지막 날 공연 커튼콜에서는 3막 무도회 장면에서 흘렀던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단원들은 물론 스태프 등 100여명이 한 명씩 차례로 그녀에게 장미 한 송이를 안겨주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천장에서 꽃잎들까지 떨어지며 '뜨거운 안녕'을 보냈다. 강수진은 "한국에서는 이번 세 번이 마지막"이라고 거듭 못박았다. 지난해 초 국립발레단 단장이 된 그녀는 "국립발레단에 왔을 때 처음에는 같이 무대에 오르려고 했는데 지금은 우리 발레단이 정말 잘한다. 이후에는 한국에서 나를 발레리나로 보는 일은 없을 거다. '은퇴는 은퇴'다. 말 그대로 이제 발레는 안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아쉬움은 전혀 없다. "늘 얘기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당연히 열심히 할 수 있는만큼 연습했다. 아프더라도! 나이가 이제 쉰이다. 국립발레단에 아름다운 무용수가 많다. 내 자신에 만족하고 늘 최선을 다해서 더도 덜도 후회가 없다. (후배들에게) 바통은 좋은 때에 물려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6년 '오네긴'에서 타티아나를 처음 연기했을 때부터 이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다. 20세기 최고의 드라마 발레로 통하는 '오네긴'은 자유 분방하고 오만한 남자 오네긴과 순진한 소녀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다.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이 원작이다. '녹턴' '사계'와 같은 차이콥스키 음악으로 발레에 서정성을 더했다.
드라마 발레의 창시자 존 크랑코가 3막6장의 발레로 재탄생시켰다. '카멜리아 레이디'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강수진 드라마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의 타티아나는 연기와 기술 면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강수진의 '오네긴'이 국내에 선보인 것은 2004년 이후 11년 만이었다.
"많은 작품들은 어느 순간 내려 놓아야 하는데 '오네긴'은 아니다. 마지막 작품으로 이 작품보다 좋은 건 없다. 발레리나마다 다르겠지만 내겐 이 작품이 은퇴작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이야기했듯 늦기 전에 은퇴를 하고 싶었다. "무대에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그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더 (발레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고, 나는 내 느낌이 중요하다. 특히 작품에 대한 존경이 너무너무 크다. 100% 최고의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압박 같은게 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관객들이 돈까지 내면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된다."
선장으로서 국립발렌단 순항에 일조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하나의 모험이었다"며 웃었다. "행정을 한 번도 안 해 보다 작년에 시작했는데 사람은 뭐든 배우면 되더라. 발레리나로서 발레만 해온 인생은 아니었다. 세계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계산은 배우면 된다. 수학을 그렇게 못하진 않았다. (웃음) 계속 보다보면 그렇게 못 배울 것은 아니다. 당연히 직원들에게도 많이 배웠다. 모르면 직원들에게 물어본다. 직원들을 사랑한다. 사무실 가는 거 너무 행복하다. 스태프들과 이렇게 잘 맞을 줄 몰랐다."
하지만 단장 일은 "잠 못자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장직이 내게 1순위"이기 때문이다. "(단장직을) 예스한 순간부터 발레리나로서 24시간은 못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새벽에 원래 일찍 일어나지만 더 일찍 일어났다. 일찍 연습하고, 단원들과 함께하고, 코치하고, 나름대로 관리해야 하고. 사실 한꺼번에 할 일이 많다."
대신 불편한 것은 없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런 삶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무덤가면 계속 잘 거 아닌가. 그거 생각하면 도움된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다. 그런데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다"라며 웃었다.
발레리나로서 유례 없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감이 없다. "대중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쇼핑을 할 때도 알아보면 그저 감사하다. 빵집에서 빵을 하나 더 줄 때도 진짜 감사하다. 그래서 나중에 가면 3배로 한다. 살아가는데 감사하는 건 중요하다."
의도치 않게 여러 부분에서 최고·최초라는 수식이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거기에 대해 신경 안 쓴다"며 "30년간 프로 발레리나로서 살면서, 조그만 것에서 감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어제보다 오늘 연습이 잘 돼 기쁘고, 사람들이 꿈꾸는 공연장에서 추억이 생겨서 기쁘다. 하나하나 꼽기는 힘들지만 꾸준히 살아온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물론 힘들 때도 있다. 부상을 당했을 때다. 그러나 "모든 무용수가 거쳐야 할 삶이여서 불평하지는 않는다. 회복했을 때 더 강해지거든. 내 이름을 '강감사' 라고 해야 할 것 같다"며 연약해보이지만 단담함으로 무장해 '강철나비'로 통하는 그녀답게 이내 긍정했다.
내년 현역으로서 완전 은퇴한 뒤 "집중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장 역할"이라며 눈을 빛냈다. "후배들과 작업하며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게 너무너무 행복하다. '마지막' '마지막' 하지만 그렇게 마지막을 생각할 시간도 없고. 의미가 크지만 한편으로는 크지 않은 게, 또 다른 시작이 있으니까."
토슈즈 안에 꽁꽁 감춰놓은 강수진의 발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 툰치 소크멘(52)이 피카소의 작품 같다며 찍어준 발 사진은 마치 고목을 촬영해놓은 것 같다. 빛나는 외모와 화려한 무대 위 모습과 달리 울퉁불퉁하고 피멍으로 가득하다. 남들보다 몇 배 노력한 증거다.
6~8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내한공연인 전막 발레 '오네긴'을 마치기 전 만난 강수진은 "내 꿈은 하루에 7시간을 한 번 쭉 자는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밤늦게까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습관이 있다.
"쪽잠인가? 20분 자다 일어나고 10분 자다 일어나고. 그래도 다행히 어제는 2시간은 잔 것 같다. 365일 시차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어디 한 곳에 오래 머물 때 새벽에 쭉 자면 행운이고. 차에서 긴 시간 이동할 때 그런 쪽잠들을 많이 잔다. 수면제를 먹을 순 없다. 통증 약을 제외하고는 몸을 위해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강수진은 2016년 남편의 생일인 7월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오네긴' 공연을 끝으로 실질적인 은퇴를 하게 된다. 그녀는 이 발레단의 종신 단원이다. 내년은 강수진이 1986년 19세 나이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 무용수로 입단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앞서 한국에서 3일 동안 공연한 '오네긴'을 끝으로 고국 현역 무대에서 먼저 은퇴했다. 30년 발레 인생을 정상의 기량에 있을 때 매듭지은 강수진에게 3일 내내 4층을 가득 메운 관객 7000명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첫날 공연의 커튼콜에서 웃음 지은 강수진은 둘째 날 공연에서 눈시울을 붉히더니, 셋째날 마지막 공연 커튼콜에서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특히 마지막 날 공연 커튼콜에서는 3막 무도회 장면에서 흘렀던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단원들은 물론 스태프 등 100여명이 한 명씩 차례로 그녀에게 장미 한 송이를 안겨주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천장에서 꽃잎들까지 떨어지며 '뜨거운 안녕'을 보냈다. 강수진은 "한국에서는 이번 세 번이 마지막"이라고 거듭 못박았다. 지난해 초 국립발레단 단장이 된 그녀는 "국립발레단에 왔을 때 처음에는 같이 무대에 오르려고 했는데 지금은 우리 발레단이 정말 잘한다. 이후에는 한국에서 나를 발레리나로 보는 일은 없을 거다. '은퇴는 은퇴'다. 말 그대로 이제 발레는 안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아쉬움은 전혀 없다. "늘 얘기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당연히 열심히 할 수 있는만큼 연습했다. 아프더라도! 나이가 이제 쉰이다. 국립발레단에 아름다운 무용수가 많다. 내 자신에 만족하고 늘 최선을 다해서 더도 덜도 후회가 없다. (후배들에게) 바통은 좋은 때에 물려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6년 '오네긴'에서 타티아나를 처음 연기했을 때부터 이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다. 20세기 최고의 드라마 발레로 통하는 '오네긴'은 자유 분방하고 오만한 남자 오네긴과 순진한 소녀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다.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이 원작이다. '녹턴' '사계'와 같은 차이콥스키 음악으로 발레에 서정성을 더했다.
드라마 발레의 창시자 존 크랑코가 3막6장의 발레로 재탄생시켰다. '카멜리아 레이디'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강수진 드라마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의 타티아나는 연기와 기술 면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강수진의 '오네긴'이 국내에 선보인 것은 2004년 이후 11년 만이었다.
"많은 작품들은 어느 순간 내려 놓아야 하는데 '오네긴'은 아니다. 마지막 작품으로 이 작품보다 좋은 건 없다. 발레리나마다 다르겠지만 내겐 이 작품이 은퇴작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이야기했듯 늦기 전에 은퇴를 하고 싶었다. "무대에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그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더 (발레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고, 나는 내 느낌이 중요하다. 특히 작품에 대한 존경이 너무너무 크다. 100% 최고의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압박 같은게 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관객들이 돈까지 내면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된다."
선장으로서 국립발렌단 순항에 일조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하나의 모험이었다"며 웃었다. "행정을 한 번도 안 해 보다 작년에 시작했는데 사람은 뭐든 배우면 되더라. 발레리나로서 발레만 해온 인생은 아니었다. 세계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계산은 배우면 된다. 수학을 그렇게 못하진 않았다. (웃음) 계속 보다보면 그렇게 못 배울 것은 아니다. 당연히 직원들에게도 많이 배웠다. 모르면 직원들에게 물어본다. 직원들을 사랑한다. 사무실 가는 거 너무 행복하다. 스태프들과 이렇게 잘 맞을 줄 몰랐다."
하지만 단장 일은 "잠 못자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장직이 내게 1순위"이기 때문이다. "(단장직을) 예스한 순간부터 발레리나로서 24시간은 못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새벽에 원래 일찍 일어나지만 더 일찍 일어났다. 일찍 연습하고, 단원들과 함께하고, 코치하고, 나름대로 관리해야 하고. 사실 한꺼번에 할 일이 많다."
대신 불편한 것은 없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런 삶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무덤가면 계속 잘 거 아닌가. 그거 생각하면 도움된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다. 그런데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다"라며 웃었다.
발레리나로서 유례 없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감이 없다. "대중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쇼핑을 할 때도 알아보면 그저 감사하다. 빵집에서 빵을 하나 더 줄 때도 진짜 감사하다. 그래서 나중에 가면 3배로 한다. 살아가는데 감사하는 건 중요하다."
의도치 않게 여러 부분에서 최고·최초라는 수식이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거기에 대해 신경 안 쓴다"며 "30년간 프로 발레리나로서 살면서, 조그만 것에서 감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어제보다 오늘 연습이 잘 돼 기쁘고, 사람들이 꿈꾸는 공연장에서 추억이 생겨서 기쁘다. 하나하나 꼽기는 힘들지만 꾸준히 살아온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물론 힘들 때도 있다. 부상을 당했을 때다. 그러나 "모든 무용수가 거쳐야 할 삶이여서 불평하지는 않는다. 회복했을 때 더 강해지거든. 내 이름을 '강감사' 라고 해야 할 것 같다"며 연약해보이지만 단담함으로 무장해 '강철나비'로 통하는 그녀답게 이내 긍정했다.
내년 현역으로서 완전 은퇴한 뒤 "집중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장 역할"이라며 눈을 빛냈다. "후배들과 작업하며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게 너무너무 행복하다. '마지막' '마지막' 하지만 그렇게 마지막을 생각할 시간도 없고. 의미가 크지만 한편으로는 크지 않은 게, 또 다른 시작이 있으니까."
- Copyrights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